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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1,300리 누각과 정자 이야기(20회)체화정과 만대루, 백일홍이 아름다운 정자
비사벌뉴스 | 승인 2024.02.25 15:51

형제간의 화목과 우애의 체화정
글, 사진 오종식 창녕군 문화관광해설사

체화정과 백일홍

○ 안동 체화정(華亭)
안동시청~체화정까지는 거리 약 14km, 승용차로 30분 거리다. 체화정↔경북 북부청사(1km), 체화정↔서애 류성룡 묘소(5km). (다음 지도 길 찾기)
보물 체화정은 조선 영조 37년(1761)에 진사 이민적(李敏迪:1663-1744)이 세운 정자로 학문을 닦던 곳이다. 1971년에 고쳤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2칸, 2층 누각형 팔작 지와 지붕이다. 사방에 마루를 둘렀고 축담이 높아 난간을 세웠다. 
정자 앞면에 탁트인 툇마루고, 그 안쪽에 온돌방과 마루방이다. 온돌방 앞쪽에 '눈꼽째기창'으로 부르는 작은 창이 있어 방에서 정원을 수 있다.
정자 앞 연못은 체화지라 하는데 방장(方丈)·봉래(蓬萊)·영주(瀛州)의 신선들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을 둔 인공연못이다.
체화정 연못은 벌써 정원의 대표적 사상인 신선 사상과 음양론, 천원지방 설 등의 영향을 받아 네모난 못과 세 개의 둥근 섬을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민적이 형(옥봉 이민정)과 함께 살며 소로 아끼며 사랑하며 살던 곳이다. 
그 후 순조 때 정려(旌閭)를 받은 조카 이한오 선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했다. 정려는 나라에서 아름답고 좋은 일을 본보기로 삼기 위하여 효자·충신·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旌門)을 세워주던 것을 말한다.
체화정 정자 이름과 유래를 쓴 사람은 이상진(李象辰, 1710∼1774)이다.
‘체화華)’란 형제끼리 아끼고 사랑하며 잘 지내는 것으로『시경(詩經)』 소아(小雅) 편 '상체지화(常之華)'에서 따왔다.
올망졸망 열린 열매같이 형제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또 형제가 많아 집안이 번성하는 의미도 있다. 
체화정 현판은 사도세자 스승 유정원 친필이고, '담락제'는 조선 제일의 화가 단원 김홍도 글씨다. 담락제는 형제간 우애가 돈독해야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다는 의미라 한다.
체화정을 지은 때가 태평성대를 누리던 영조시대다. 벼슬에 뜻이 없던 이민적이 진사(進士)로 만족하며 형과 어울려 놀면서 풍류에 더 몰두하지 않았나 하는 여담도 재미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정자가 924번 국도 옆에 있고 주차할 공간이 없어 매우 위험하다.

체화정의 가을 풍경

○ 백일홍이 아름다운 정자
담양 명옥헌, 달성 하목정, 합천 호연정, 창녕 광산서당과 경모당의 백일홍은 사진작가에 인기가 높은 곳이다.
백일홍은 모를 심을 때 피기 시작하여 벼를 수확할 때 진다. 전통 농경사회 조선 시대에 옛 선비들은 계절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꽃이었다.
백일홍은 나무껍질이 없어 안과 겉이 같다는 의미의 언행일치, 여성의 나체를 연상했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계절의 변화가 가장 와닿는다.
정원에는 배롱나무, 황매화, 석류, 매실, 소나무, 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연못에는 마름 등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 옛 풍산현 5일장(3일, 8일)
체화정에서 1km쯤 내려가면 풍산장터가 나오고 거기서부터가 풍산읍내다. 
풍산장(매월 3일, 8일)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경에 시작해서 옛 안동시장과 더불어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지금은 조용한 시골장이다. 
시장을 중심으로 풍산읍이 형성돼있다. 그래도 돼지국밥집, 한우갈비식당, 횟집과 치킨집 분식집 등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만대루와 백일홍

○ 병산서원 만대루(晩對樓)
한국서원 건축의 백미
체화정에서 병산서원까지 약 12km, 승용차로 22분 거리다. 병산서원으로 가는 길 중간에 안동 한지전시체험장과 소산마을, 삼구정, 청원루가 있다.(다음 지도 길찾기)
병산서원은 1717년경에 세웠다. 만대루(晩對樓)의 현판에 "만대(晩對)"란 이름은 두보(杜甫)의 오언율시(五言律詩)인 <백제성루(白帝城樓)>의 "···푸른 병풍 같은 절벽은 저녁놀에 (늦게) 대할 만하고, 백제성 산골짜기는 깊이 들어 노닐기 좋아라(翠宜對, 白谷會深游)···"란 구절에서 따왔다. 
앞면 9칸 옆면 2칸 원기둥으로 된 2층 만대루는 경관을 이용하는 전통 조경 기법,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건축의 기본에 충실한 성리학적 건축관을 잘 살린 우리나라 서원 누각의 대표작이다.
병산서원에 가고 싶다면 붉은 백일홍꽃 필 때가 가장 좋다. 만대루 마루에 올라앉으면 기둥 사이의 일곱 칸이 일곱 폭 산수화가 된다. 
푸른 낙동강과 흰 모래밭 그리고 병풍처럼 펼쳐진 산이 진경산수화로 변한다. 삼박자가 고루 갖춘 경이로운 풍경이다.
만대루 기둥과 기둥 사이가 한 폭의 병풍 같다. 한국서원 건축의 백미다.
사방이 트인 만대루는 2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인데 요즘은 올라갈 수 없어 아쉽다. 2019년 한국의 서원(9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만대루에는 큰 북이 걸려 있는데 서원의 세 가지 금기인 여자, 사당패, 술을 들여왔을 때 북을 쳤다고 한다. 그때도 혈기왕성한 선비들의 일탈이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 미인도와 취화선을 촬영했던 곳이다. 

만대루에서 본 병산과 낙동강

○ 또 다른 시각에서 자연을 보다.
식물사회학적 눈으로 좀 더 회상도를 높여 보자. 
병산 자락이 강물의 힘에 깎여나가 퇴적암 절벽 하식애(河蝕崖)를 만들었다. 수직 절벽은 기름지지 못하고 메말라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극한지대다.
그곳에 돌단풍, 기린초 등과 굴참나무가 잘 자란다. 가장 뜨겁고 메마른 땅에 굴참나무 자연림 만들어진다. 굴참나무가 굵어져 비바람에 쓰러지면 다시 처음부터 굴참나무가 자라 100년 후에도 같은 모습의 숲을 이룬다.

극한지대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극한지대에 뿌리 내린 굴참나무는 다른 식물과 자리다툼,  햇볕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견뎌내던지 적응하면 어떤 의미에선 블루오션이다.

만대루 앞 병산과 낙동강 초여름 풍경

○ 모래밭
낙동강 상류는 물이 깊지 않다. 그래서 물은 모래밭에 넓게 퍼져 흘러 여름철 온도가 올라간다.  고기(흰수마자, 모래무지, 기름종개 등)들이 모래 속에 몸을 숨긴다.
또 추운 겨울 물이 차가워지면 물속 모래에 몸을 숨겨 겨울은 난다.
일반적으로 온도는 100m 오르면, 0.65℃씩 내려간다. 1,000m를 오르면 6.5℃가 내려간다.  
늦봄과 이른 여름철 모래밭 표면 온도와 모래밭 30cm 아래는 약 13℃ 차이가 난다.

산을 예로 들면 평지의 기온과 2,000m 산 위의 기온 차다. 모래의 위력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수치다.

모래의 급격한 온도변화에 적응하는 생물들은 독특한 생태환경을 이루며 살고 있다. 따라서 모래는 그들 생물의 중요한 서식지요. 러브호텔이라 할 수 있다.(출처 : 식물사회학 김종원교수)

모래는 물을 깨끗이 걸러주고, 아름다운 모래샛강은 시와 소설등 문학의 재료가 된다. 사람들의 정서를 맑게 해준다. 자연의 보석과 같다.
강변 모래톱을 걷고 싶다면 한가지 조심할 게 있다. 3~4월 모래밭에 흰목물떼새, 꼬마물떼새  둥지에 알이 있으니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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