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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1,300리 누각과 정자 이야기(12회)예천군 수락대(水落臺)와 수락대구곡(水落臺九曲)-석관천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비사벌뉴스 | 승인 2023.09.09 18:18

오종식 창녕군 문화관광해설사

수락대(水落臺)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을 극복한 명재상(名宰相) 서애 유성룡과 깊은 정자다.

수락대는 석관천 계곡 언덕 위에 서 있는 계정(溪亭, 계곡의 정자)이다.

건물 왼쪽과 오른쪽에 청룡과 백호 모양의 바위가 감싸고 있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일제강점기(1915년)에 석관천에 바짝 붙여 지었으나, 1976년 큰 홍수로 부서져 2001년에 조금 높은 산자락으로 옮겨 지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둥근 기둥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석관천 흰색 화강암 바위와 그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는 그때 그 모습이나 다름없다.

물의 흐름과 세월에 깎인 바위는 부드러운 곡선이다. U자 모양, 둥근 돌개구멍, 등 온갖 모양이다.

건물 주변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으나, 마루에 흙모래와 박쥐 똥, 새똥이 묻어 앉기는 어렵다. 느티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 백일홍 등 어린나무들이 건물 주변에 서 있다.

하천 건너 참나무류와 소나무 숲이 보기 좋다.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 선생은 임진왜란을 극복한 데 큰 힘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602년 봄 제자 권기 등과 영주 단산을 유람했다. 안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석관천 바위에 올라 지팡이를 놓고 신발을 벗어 쉬어가던 곳이다. (杖屨之所)

석관천은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 화강암 바위 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 푸른 소나무와 참나무가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낸다.

선생은 “찬 물방울이 흩어져 떨어지는 것이 맑은 날에 눈이 흩날리는 것 같다.”라고 노래했다.

그 후 수많은 선비가 찾았고 지역 선비들이 유성룡 선생을 추모하며 수락대 바위에 ‘서애선생장구지소(西厓先生杖屨之所)’를 새겼다.

60년 후 1661년 김응조, 홍여하 등 25명이 “수락대 선유회 시사(詩社)”를 만들었다. 3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 선비들이 이어오고 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1915년 감천 유림 6개 문중과 류성룡 선생 후손이 성금을 모아 정자를 짓고 수락대라 이름 붙였다.

1976년 홍수로 떠내려가고 2001년에 조금 높은 산자락으로 옮겨 지었다.

석관천 물가 바위에는 신선이 노니는 경치 좋은 곳을 뜻하는 수락동천(水落洞天)이 새겨져 지나는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수락대를 보호하기 위해 담장을 쌓았는데 석관천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는데 시야를 가리는 게 아쉽다. 담장 안쪽에 높이가 낮았으면 좋을 듯하다.

근처에 예천박물관과 예천 천문우주센터가 있다.

수락대에서 150여 미터 하류로 내려가면 물레방아 출렁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수락대 건너편 하천으로 좁은 산책길을 걸으며 건너편 수락대를 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여기서 봐야 제대로 보는 거다.

수락대에서 약 7km 거리에 퇴계 이황(李滉)이 풍기 군수 때 고향 예안(안동)을 오고 가면서 바위에 쉬어갔다는 도암대(陶巖臺)가 있다.

그리고 3km 떨어진 곳에는 석송령(石松靈)이 있다. 600년된 이 나무는 사람처럼 이름과 성이 있는데 성이 석씨고, 이름은 송령이다. 이 나무는 1,191평의 땅을 가지고 있다.

○ 석관천(石串千)과 수락대구곡

석관천은 내성천 지류다. 규모는 작지만, 화강암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하천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물소리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수락대는 수락대구곡 중 제8곡이다.

석관천의 물에 깎인 희고 푸른 화강암이 좋고 아름다운 물소리와 개울 건너 소나무와 잘 어울린다.

실제로 수락대 앞에서 바라보는 석관천에는 옥구슬 같은 맑은 물이 흐르고 모양도 다양한 바위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수락대 앞에서 바라보는 석관천 물가 크고 평편한 바위에는 수락동천이라는 네 글자가 암각 된 것을 볼 수 있다. 석관천의 산천과 기암이 '신선이 노닐던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옛 '예천 충효관'은 제1종 전문 박물관인 '예천박물관'으로 승격되며 지역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관리와 전시 · 보존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 수락대구곡(水落臺九曲)

석관천은 영주시 봉현면 천부산에서 발원해 예천군 감천면, 보문면 끝자락을 지나 내성천(乃城川)과 만난다.

석관(石串)이란 이름은 돌을 꿰뚫고 굽이치며 흐른다는 뚯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수락대구곡은 예천 출신인 송상천(1766∼1804)과 안동 출신의 유학자인 권방(1740∼1808)이 정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은 모두 수락대 경치를 사랑했다.

송상천은 벼슬에 관심이 없어 성리학을 공부하며 20세에 이미 문장과 글씨로 알려졌던 선비다. 젊은 시절 석관천 수락대에 왔다. 신선이 살만큼 수려한 경치에 반한다. 그는 39세로 일찍 죽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송상천은 죽기 2년 전(1802년)에 이곳에 요양을 와서 마지막 삶을 보냈다.

조선 후기 안동 출신 유학자 권방은 문과에 급제하며 벼슬을 시작했다. 사헌부감찰을 거쳐 병조 좌랑에 임명되었으나 그만 두었다.

그리고 1766년 석관천의 수락대 근처에서 몇십년을 살다 1796년 고향으로 갔다.

송상천은 요양을 위해 수락대에 왔다 구곡 시를 지어 권방에게 보냈다. 권방은 구곡 시를 읽고 “마치 수락대 암벽에 앉아 그와 함께 산수를 품평하고 시를 읊조리는 듯하였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아홉 굽이 중 몇 가지가 자신이 정한 것과는 이름과 위치가 달라 구곡을 다시 정리했다.

권방은 송상천의 의견을 참고해 수락대구곡을 완성하고 「수락대어가구곡시」를 지었다.

羅峙蓉峯倂地靈(나치용봉병지령) / 糚成洞府一溪淸(장성동부일계청)

櫂歌今作漁家傲(도가금작어가오) / 水淥山蒼款乃聲(수록산창관내성)

늘어선 산과 봉우리 신령한 땅의 정기 받아/수락대 동천을 둘러싸 한 줄기 시냇물 맑네

지금 지은 어부가를 어부들 흥겹게 부르니/파란 물과 푸르른 산에 어부가가 들리누나

수락대 구곡은 다음과 같다.

제1곡 관어대(觀魚臺)-제2곡 청간정(聽澗亭)-제3곡 강남곡(江南曲)-제4곡 남산수(南山陲)-제5곡 홍교(虹橋)-제6곡 석문오(石門塢)-제7곡 석출대(石出臺)-제8곡 수락대(水落臺)-제9곡 등영곡(登瀛谷)

​제8곡 수락대를 노래한 시(詩)다.

八曲臺巖正面開(팔곡대암정면개) / 晴雷飛雪共旋洄(청뢰비설공선회)

前賢芳躅今誰繼(전현방촉금수계) / 時有閒雲自去來(시유한운자거래)

팔곡이라 수락대 바위 정면에 열려 있는데/마른벼락에 흩날리는 눈보라 함께 몰아치네

전현이 남긴 발자취 지금 누가 이어가는지/때때로 한가한 구름만 스스로 떠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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