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과 고흐가 활동한 남프랑스의 대자연은 그림 같아

고대와 중세, 근현대가 상존하는 역사의 현장, 프랑스

파리는 예전에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니스와 모나코 등 프랑스 남부지역을 여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낯선 곳을 간다는 건 설레고 기대된다. 이 또한, 체력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것이지, 다리가 떨릴 때는 곤란하다는 생각에 용기 내 집을 나섰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인천과 파리를 거쳐 비행기를 3번 갈아타고 27시간 만에 꿈에도 그리던 남프랑스의 진주 니스 공항에 도착했다.

코발트색 지중해 물빛과 적갈색 지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 니스 시가지를 들뜬 가슴으로 조망하며 모나코로 향했다.

휴양과 도박의 도시, 세금 제로, 은막의 여왕 그레이스 케리가 왕비였던 나라로 기억하며 평소 갈망했던 곳이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쯤 되겠지, 하지만 국토 면적이 여의도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영토가 워낙 협소해 암벽을 뚫고 겹겹이 층을 지어 공간을 마련하고, 바다를 매립 건물을 세우는 등 효율적인 도시 조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따가운 햇빛을 받고 잘 자란 화초와 수목 사이로 지중해를 지켜보며 우뚝 선 모나코성당에서 한때, 세계인의 연인으로 추앙받던 한 여인(그레이스 케리)의 묘비명 앞에서 인생무상을 실감했다.

이어 방문한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에선 표현주의 화가 샤갈(Marc Chagall, 1887-1985, 러시아 출신)이 활동하며 정붙이고 살다가 잠이 든 동네라는 것을 그의 그림 <나의 마을>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3일째 아침, 니스 해안가를 걸으며 아득한 수평선 저 너머에 있을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을 상상하며, 고대 로마제국을 꿈꾸었다.

현대 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이 태어나고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돌아와 말년을 보낸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는 중세와 근현대가 조화를 이룬 정겹고 매력 있는 도시이다.

얼마 전, 한 달 살기하고 돌아온 한 지인이 그토록 자랑하고 권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왕권이 교권을 능가했던 시절, 교황청이 아비뇽(Avignon)으로 옮겨간 적이 있다(1309-1377). 서양사 시간에 배운 아비뇽 유수(幽囚),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다니. 아쉽게도 지금은 빈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예가 프랑스 교황청이었음을 말해 줄 뿐이다.

그나마 론강을 가르는 허물어지고 반만 남은 생 베네제(Sant Benzet Bridge, 12C 건립) 돌다리가 이방인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아비뇽으로 가는 길목인 발랑솔(Valensole)에서 끝없이 펼쳐진 보랏빛 라벤더 향에 취해 시선과 후각을 뺏기고 고대 문명의 흔적을 찾아 차를 달렸다.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제국의 상징이다. 이를 닮은 원형경기장을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를(Aries)에서 만나다니. 그 시대의 목욕탕과 또 다른 건물 잔해까지 살펴보고,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 된 자신의 생가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린, 론강이 굽이 흐르는

뷰 포인터에서 그림 대신 사진을 찍었다.

고흐와 고갱이 그토록 사랑한 도시, 아를을 뒤로하고 슬픈 역사가 묻어있는 고대와 중세 건축이 혼재된 난공불락의 요새, 카르카손(Carcassonne)의 콩탈성(Chateau Comtal)에서 십자군 원정이 예루살렘을 수복하기 위한 이슬람과의 전쟁일 뿐만 아니라, 이단(異端)을 척결하는데도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여정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프랑스 르네상스의 꽃, 고성(古城)들이 즐비한 중서부 내륙을 찾았다.

영국과 마주한 노르망디 영유권을 놓고 두 나라가 치열하게 싸운 100년 전쟁(1340-1453) 당시에 증, 개축된 쉬농소 성과 앙부아즈성이 이를 대변해 줬다.

특히, 앙부아즈성은 르네상스의 상징 같은 화가 겸 건축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개축에 나서고 말년을 보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북대서양 건너 영국을 동경하며, 끝없이 펼쳐진 생말로 바닷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학창시절에 읽은 책 가운데, 진한 커피 향에 취해 노르망디를 갈구하며 집필한 프루스트(Marcel Proust, 1913-1927)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잠시 소환해 보기도 했다.

귀국을 하루 앞두고,

서둘러 아침을 열고, 오베르 주교가 천사의 계시를 받고 건립했다(A.D.708년)는 바다 위에 우뚝 솟아오른 몽셍미셀(Le Relais Saint Michil) 수도원의 비경에 탄복하고 파리로 입성, 센강의 잔물결 너머로 루브르와 에펠탑, 이집트에서 옮겨온 룩소르 오벨리스크를 스치듯 바라보고,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마무리에 한창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끝으로 여정을 마쳤다.

공항으로 가면서, 언제 또다시 오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르세 미술관에 들러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밀레의 <만종>과 <이삭 줍는 사람들> 앞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콩코르드 광장에서 개선문에 이르는 5리 길을 천천히 걸으며 숨 가쁘게 달려온 열흘간의 일정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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