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1,300리 누각과 정자 이야기(7회)

춘양목의 고장, 봉화군 누정-Ⅴ

대명산구곡(大明山九曲), 기헌고택(起軒古宅)과 경체정(景棣亭)

오종식 창녕군 문화관광해설사

○ 장자의 물아일체

장자의 물아일체(物我一體)는 자연과 나는 하나라는 사상이다.

〈알쓸신잡〉에서 정재승 교수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까?’

이 말은 이순신 장군이 내쉰 대기 중에 퍼진 공기가 얼마큼 우리 폐 속에 들어올까 하는 질문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매번 숨을 들이쉴 때마다 이순신 장군의 숨결 일부를 마시고 있다. 한때 역사적 인물의 폐 속에서 춤추던 분자들이 그토록 먼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폐 속에서 춤추고 있다니!

우리가 머금은 한 모금의 공기에는 역사적 인물이 죽어가며 내쉰 마지막 숨뿐 아니라, 지구와 인류의 역사가 도래한 이래 나타난 온갖 종류의 기체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어디 공기뿐이겠는가….

저 유명한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 우리는 한때 별이었다고 말한다. 별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모든 원소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우리 인체를 구성하는 25개의 화학원소 들도 돌고 돈다. 공룡 등 동물, 곤충, 식물, 암석 등으로 돌고 돈다.

공룡이 먹는 음식에 포함된 원소들이 공룡 몸속에 들어갔다 다시 흩어져 물에 녹아 뿌리를 통해 식물의 열매에 들어간다. 우리가 그 열매를 먹는다.

정녕 물아일체 아니겠는가…. 자연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대명산구곡(大明山九曲)

이 구곡은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에서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까지 물길이다.

조선 후기 법전면 출신 학자 해은 강필효(海隱 姜必孝, 1764~1848)가 구곡을 정하고 노닐었다. 대명산구곡의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에 대한 대명의리(大明義理)를 내세웠다.

1곡 마고(麻姑)→2곡 갈천(葛川)→3곡 조대(釣臺)→4곡 백룡담(白龍潭)→5곡 청량산(淸凉山)→6곡 광평(廣平)→7곡 고산(孤山)→8곡 월명담(月明潭)→9곡 만우(萬隅)

전체 길이는 23km다. 천천히 걸으며 답사하면 좋지만, 거리가 멀어 차로 이동하며 답사해도 좋다. 4곡 백룡담을 외에는 주변에 작은 주차 공간이 있다.

낙동강 상류 200km 구간은 강물이 높은 산을 골짝 골짝을 깎아 깊고 좁은 물길을 만들었다. 이런 지형을 고산 협곡이라 한다. 경치가 좋은 것은 덤이다. 강물 소리도 제법 요란하다.

대명산구곡 9곡 저마다 특징이 있고 경치가 아름답다. 봄은 연둣빛 파스텔화가 녹색 뭉게구름 되어 피어오른다. 가을이면 나무들이 온갖 색으로 고해상도 지오 그래픽(Geographic)화면을 만든다.

• 7곡 고산정(孤山亭)

고산정의 여름과 가을

그중 제7곡 가송협 고산정이 단연 으뜸이다.

고산정은 정유재란 때 안동을 지키는 의병장으로 활약한 성성재 금난수(惺惺齋 琴蘭秀, 1530∼1599) 선생이 1564년(명종 19)에 지은 정자다. 금난수는 퇴계의 제자이며 고산정은 퇴계가 자주 찾던 곳이다.

고산정은 안동 도산구곡과 겹친다. 정자 주변은 청량산 남쪽 끝자락에 외병산과 내병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낙동강 상류 가송협(佳松峽) 건너에 소나무 숲과 독산(獨山)이 홀로 우뚝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루고, 독산 아래 강물이 잠시 쉬어가는 월영담(月影潭)이 소(沼)를 이룬다.

정자는 안동 팔경의 하나인 가송협 절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가송협은 청량산과 낙동강이 만나 세월에 씻기고 깎여 다듬어진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협곡, 진정한 한국형 협곡이다.

우람한 청량산과 검붉은 빛의 높은 절벽, U자형 협곡, 푸른 강과 깊은 소 그리고 소나무 숲.

고산정에 처음 갔을 때의 그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월명담

○ 기헌고택(起軒古宅) 옛 추억 속에 젖어보고 싶다면

기헌고택

기헌고택이 있는 법전리는 진주강씨 집성촌이다. 조선 후기 헌종 때 세웠다. 'ㅁ' 자형으로 전면 6칸과 측면 2칸 모두를 사랑채 공간으로 구성했고, 건물 본채는 안채와 사랑채, 좌우 연결채로 돼 있다.

마을 중앙 기헌고택은 한옥 숙박 체험을 하며 경북 문화재자료다. 1845년 기헌 강두환 선생이 지어 살던 집으로, 조선 후기 생활상을 담은 건축물이다. 느리게 살고 싶다면 기헌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추억에 젖어보라. 마음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 경체정(景棣亭)

현판 추사 김정희와 김병국 글씨

경체정은 경북 유형문화재 봉화군 법전면 경체정길 10에 있다.

경체정 전경

강윤(姜潤), 강완(姜浣), 강한(姜瀚) 3형제를 기리기 위해 후손인 강태중(姜泰重)이 1854년에 건립한 정자다.

‘경체(景棣)'는 시경(詩經)의 소아(小雅) 편에 나오는 '상체지화(常棣之華)'에서 따온 말로 '형제간 우애가 깊어 집안이 번성한다'라는 의미다. 안동 체화정(棣華亭), 문경 경체정(景棣亭)이 있는데 모두 棣字(체자)를 중간에 넣어 형제간의 우애를 표시했다.

정자 주위에 담장을 둘렀고 앞에 작은 연못을 두었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아담한 팔 작 기와집이다. 경체정이 있는 마을은 '급제 공원'이 있을 정도로 학문이 높은 학자들을 배출한 곳이다.

경체정 현판

2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오른쪽 예서체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고 왼쪽 해서체 현판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의 글씨다.

둥근 기둥에는 후손들이 시구(詩句)를 적은 주련(柱聯)을 붙였고 내부에도 10여 개의 시판(詩板)을 걸어두었다. 정자 뒤편 암벽에 정자 이름이 새겨졌다.

강 씨 삼 형제는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화친에 반대해 봉화로 은거한 강흡(姜洽) 후손으로 집안이 3대째 벼슬을 하지 않아 가세가 기울었다. 강 씨 삼 형제가 급제 후 법전 강씨 문중을 경북 북부지역의 명문가로 다시 번창시켰다. 강 윤은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정조 때 예조 좌랑과 승지를 지냈으며, 강완은 첨지 중추부사를, 강 한은 가의대부를 지냈다. 정자 앞 설명문에 이런 글이 눈에 띈다.

“영남지방에서 참판은 귀해서 한양의 정승과 같은데, 영남에서는 2 가문만이 양대 참판을 배출했다. 안동권씨 닭실마을 권벌 가문의 공조참판 권재대와 병조참판 권영하 부자( 父子)가 참판을 지냈다. 진주강씨 법전 문중의 병조참판 강태증과 예조참판 강건이 부자( 父子) 참판이다.”

정자는 는 멀리서 전체를 보고 가까이 가서 느끼는 것이다. 하천 건너편 테크로드에서 보면 하천과 정자와 뒷산 숲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

경체정 주변은 송월재 종택과 해은 고택 등 급제 정원이 있어 옛 선비들의 자취를 볼 수 있다. 기헌고택과 경체정을 둘러봤다면 춘양면(옛 춘양현)에 있는 전통시장 ‘억지춘양시장’에 들러 국밥 한 그릇 먹고 오는 것도 추억거리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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