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대학생인데요. 타고난 적성을 알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토요일에 찾아가도 될까요?”
“사주 적성검사는 굳이 오시지 말고 그냥 전화 신청하시면 댁으로 결과를 우송해드립니다.”
“그래도 꼭 찾아뵙고 상담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라고 그랬더니 기골이 장대하고 인물이 훤칠한 청년이 약속한 날에 나타났다.
“4수 끝에 올해 A대 영어영문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길이 저에게 맞는 길인지 어떤지 궁금합니다. 고교 때부터 몇 번 설문지형 적성검사(서양식 적성검사)를 해봐도 할 때마다 결과가 다르고 애매모호해서 사주 적성검사를 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문과의 길로 간 그의 1순위 적성은 언론, 국제통상, 운송 유통, 관광·레저 관련 분야이고 2순위 적성은 언론, 교육， 학술, 어학, 경영 상담 분야인 것으로 나왔다. 사주 적성검사서를 만들어 주곤 설명을 덧붙였다.
“현재 전공 중인 영어영문학과는 2순위이지만 콜링에 해당합니다. 어학을 전공하여 언론, 국제통상 계통으로 진출하든가 교육자나 연구자의 길로 가면 좋을 것입니다. 학생은 의협심과 반항심이 강하므로 언론계가 맞는 것이고, 또한 자유 독립형이므로 교육자 연구자 언론인이 적업입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는 저에게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라셨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걱정이 큽니다. 올해 수능을 또 쳐볼까 하는데 어떨까요?”
참 무던한 성격의 그는 목하 명문대학 입학에 목을 매고 있었다. 올해는 공부해본들 실력도 늘지 않고 건강(근골격계 질환, 대장 질환, 우울증 등)악화의 우려가 있으니 대입시 도전은 삼가는 게 좋다고 조언해주면서 그에게서 두 가지가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첫째 문제는 손자의 성격과 소질을 도외시한 할아버지의 사랑과 기대이다. 손자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독립심과 자립심이 강렬한 존재이므로 지나친 사랑과 관심은 해악이 되는 것을 모른 채 할아버지는 도를 넘는 사랑을 쏟았고, 손자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른 채 할아버지는 분을 넘는 기대를 하여 손자에게 부담을 주었다.
둘째 문제는 그 자신이 때를 모른 채 4수를 했다는 점이다. 의지가 강하고 고집이 세서 4수까지 감행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성과가 없는 줄도 모른 채 4수룰 한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진작 좋은 때가 오는가, 오지 않는가를 보고 도전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다행히도 2012년부터 4년 동안은 좋은 시기가 온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본 다음 입시전략, 입대전략을 면밀히 짜서 대처했다면 청춘 4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탄식이 나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맹목적으로 손자를 사랑하기에 앞서 손자의 사주적성검사를 먼저 해서 그 성격과 소질을 미리 파악하는 게 진정한 손자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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