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양목의 고장, 봉화군 누정-Ⅳ

청하동천(靑霞洞天)과 석천정사(石泉精舍) 그리고 청암정(靑巖亭)

오종식창녕군문화관광해설사

○ 석천계곡의 청하동천(靑霞洞天)

봉화는 수 많은 선비들이 남긴 8개 구곡과 22개 동천이 있다.

유곡리 앞 가계천은 백두대간 산허리에서 발원하여 내성천으로 흘러드는 계곡형 작은 하천이다.

석천정사와 청암정 지도

석천계곡 옆 바위에 알아보기 어려운 초서체로 ‘청하동천(靑霞洞天)’이란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닭실마을의 충재 권벌 선생의 5대손 권두옹이 쓴 글씨로 ‘푸른 노을이 서리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동천(洞天)은 도교(道敎)에서 신선이 사는 성스러운 마을이다.

원래 동천은 자연 동굴이다. 한쪽 모퉁이 위가 뚫려있어 빛이 들어와야 하고, 마실 물이 있어야 된다. 이런 환경에서 신선들이 도를 닦고 살림 사는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와서 당쟁 등으로 권력에 패배한 선비들이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자연 속에 묻혀 스스로 힐링하는 공간이 됐다.

우리 선조들은 경치 아름다운 곳에 동천을 정하고 운영했다. 인격을 다듬고 학문을 토론하고 선비를 키웠다.

천하동천은 석천정사(수명루)와 청암정을 품고 있다. 석천정사와 청암정은 국가 명승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정자다.

석천정사 레이아웃

○ 청하동천과 도깨비

청하동천과 석천정 명문

청하(靑霞)는 푸른 노을 또는 뜻이 매우 고상함을 말한다. 즉 청하동천은 푸른 노을이 서리는 고상한 신선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아름다운 석천계곡에는 밤마다 도깨비들이 찾아와 시끄럼게 놀았다.

이 때문에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던 선비들이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에 권두옹이 바위에 청하동천이란 글자를 새기고 붉은 칠을 해 글의 힘으로 도깨비를 쫓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과연 도깨비가 어려운 초서체 글자를 알았을까...

이 전설의 숨은 뜻을 나름대로 추측해본다.

석천계곡의 경치가 워낙 아름답다 보니 밤낮으로 사람들이 찾아와 놀았다. 삼계서원과 석천정사에서 성리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시끄러워 공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알아보기 어려운 휘갈겨쓴 초서체 붉은 글씨로 청하동천을 바위에 새겨 신선이 사는 마을로 둔갑시켜 백성들이 오지 못하게 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석천정사

○ 석천정사(石泉精舍)

마음 정(精), 집 사(舍)는 정신이 머물러 있는 곳, 즉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인도 불교 최초의 절이 죽림정사(竹林精舍)로 신앙에 따라 수행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종교적인 건물이서 시작되었다.

권동보(1517~1591)는 권벌의 큰 아들로 초계군수로 근무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조상의 뜻을 이어받아 세웠다.

명종 2년인 1547년에 ‘양재역벽서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아버지 권벌이 평안북도 삭주로 유배돼 1년 만에 죽자, 벼슬을 내 던지고 20년 동안 세상을 멀리하며 숨어 지냈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직됐지만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석천정사를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지냈다.

석청정사는 울창한 소나무와 느티나무 숲에 싸여 있다. 소나무와 느티나무는 개울의 어깨부분 모래와 바위가 많은 곳을 좋아한다. 다른 나무들이 살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식물들의 경쟁이 심하지 않다.

정자는 계곡 언덕에 원래 지형을 최대로 살려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어졌다. 계곡 옆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마루는 완전히 개방된 형태가 아니라 송판(널빤지)으로 만든 문을 만들어 필요에 따라 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해 자연과 소통할 수 있게 했다.

문을 열면 계곡 풍경이 그대로 들어온다. 경치를 빌려오는 차경기법이다.

넓은 마루에는 100여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 크기다. 학문을 익히고 단체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석천정사 현판은 앞문을 열어야 볼 수 있다.

석천정사 정면에는 장구파복(杖屨播馥)-수명루(水明樓)-계산함위(溪山含輝) 3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장구파복은 지팡이와 짚신 즉 선현의 자취가 후대에 향기를 퍼트린다는 뜻이다.

수명루는 맑은 물처럼 행실과 덕행을 후대에 퍼트린다는 의미다.

계산함휘는 시내와 산이 빛을 머금는다는 뜻이다.

석천정사 글씨는 조선 중기 송재 송일중, 장구파복 수명루 계산함위 는 철종 때 경상도 관찰사와 공조판서를 지낸 송벽의 글씨다.

뒤편 바위에 석천정(石泉亭)이란 명문이 있어 처음 정자로 세웠다가 후손이 다시 건물을 세우고 온돌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 청암정(靑巖亭)

청암정

청암정은 거북바위 위에 세운 암정(巖亭)으로 권벌이 1526년(중종 21년)에 세웠다.

봉화읍 유곡(酉谷)마을은 전체 모양이 ‘황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고 하여 닭실마을로 부른다.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이곳을 경주 양동마을, 안동의 내앞마을, 안동(옛 풍산현)의 하회마을와 함께 삼남(三南, 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4대 길지(吉地, 사람 살기 좋은 땅)라 했다.

닭실은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모여 사는 마을이다.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의 종가(宗家, 한 성씨에서 맏아들로만 이어 온 큰집)가 있다.

선생은 기묘사화(己卯士禍, 1519년 11월) 때 고향으로 내려와 다시 돌아가 일을 맡을 때 까지 13년 동안 닭실에서 글 읽는 서재 ‘충재’와 ‘청암정’을 짓고 선비들을 가르쳤다.
청암정은 거북이처럼 생긴 큰 너럭바위 위에 丁 자형 건물이다.

이 거북바위에 전설이 전해온다. 경북 북부 봉화군은 겨울이면 매우 추운 곳이다. 청암정 8개 방 중 에 2개는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온돌방에 불을 넣으면 거북이 등에 불을 지피는 셈이 된다. 불을 넣을 때 마다 살아있는 거북이처럼 '뜨거워서 죽겠다!' 하며 자꾸 울어 결국 불을 뗄 수 없었다고 한다.

청암정 현판은 권벌의 친필, 선생과 교류한 학자들인 퇴계 이황, 번암 채제공 등 당시 수많은 선비들과 어울렸다.

처마에 걸려있는 많은 한시(漢詩) 편액은 정자의 품격을 가늠한다. 어떤 학자가 글을 남기느냐 따라 정자의 품격이 올라간다.

청암정 옆 충재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안동 권씨 충정공파 집안의 유물들을 전시한 곳이다. ‘충재일기’와 ‘근사록’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집안의 고서적, 고문서들을 전시한다.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상세히 안내해준 권벌 후손인 권율 전 봉화군문화관광해설사님께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2022년 4월에 80세가 넘는 연세에 상세히 안내해 주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후 10월경에 전화를 하니 서울에 있는 아들이 받으면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고 한다. 지금쯤 봉화에 계실지 궁금하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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