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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과 우포늪을 묶어 생태역사문화공간 창출이 필요하다글, 사진 이인식위원
비사벌뉴스 | 승인 2023.03.20 12:12

2005년 화왕산성 연지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을 때, 필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산지 습지로 우포늪과 함께 향후 생태적 조사를 겸한다면 2008년 람사르협약총회를 우간다에서 유치한 시점이어서 국제적인 관심을 더욱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발굴은 문화재적 발굴 중심이어서 그렇게 진행되고 말았다. 그러나 향후 우포늪과 용지가 어떻게 산지 습지와 내륙습지 간 생태적 가치 연계를 할 것인가를 전문가들이 고민하면 좋겠다. 그러나 문화재적 측면에서 내부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유물과 동물의 머리뼈 등이 출토되는 것은 이곳이 창녕의 진산으로, 연지가 창녕 조씨 득성과 관련된 龍池(龍潭)로 불리워지는 것과 관련, 신성한 공간으로서 제사와 관련된 장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창녕 화왕산 정상부의 남동쪽 계곡부에 위치하는 통일신라시대 蓮池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내부에서 토기류, 금속류, 목제품 그리고 목간 유물이 출토되었다. 목간은 총 7점이며, 이 중 묵서가 확인된 것은 4점이다. 이들 출토 목간의 성격을 밝혀 보기 위해 목간을 하나의 유물로서 관찰하고, 목간 묵서에 대한 예비적 검토를 실시하였고, 공반된 유물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검토 결과, 목간은 출토양상과 외형적인 특징으로 보아 주술적인 행위가 이루어졌고, 묵서의 내용 역시 이와 관련된 기원을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목간과 함께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류와 각종 철제류, 청동류 등 공반유물은 출토양상으로 보아 개별 유물 자체로서의 의미보다는 연지를 대상으로 어떠한 형태의 의식적인 제의가 이루어진 과정에 소용되는 물건(유물)이면서, 동시에 그 결과로서 연지를 향해 투기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연지에서 출토된 목간 중 목간 2와 4에 ‘龍’ 과 ‘龍王’ 명이 묵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연지라는 공간을 이용하여 祈雨祭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문화재청 보도자료 중) 언젠가는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 연지와 우포늪 등을 묶어서 생태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다.

제주 삼성혈에서 화왕산 자락 가야 고분을 생각한다.

우포늪에서 화왕산을 바라보며 대대제방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아침 햇살이 화왕산을 뚫고 솟아오르면 비화가야의 찬란했던 문화를 생각하고, 임진왜란을 거쳐 재침(정유재란)때에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장들과 고을 사람이 힘을 모아 화왕산성을 지켜냈던 그 함성소리를 들으며 기운을 북돋운다. 독수리 밥을 나눌 때는 화왕산과 영축산에서 비행하여 늪으로 날아드는 그 모습과 우포따오기가 창녕읍내로 향하는 살구빛 날개짓도 아름답다. 오늘 아침에는 며칠 전 제주를 방문하여 ‘고씨, 부씨, 양씨’를 모시는 삼성혈에서 오래된 녹나무를 만나면서 불현듯 내가 살고있는 창녕 땅 가야고분 군에서 녹나무 관이 출토되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녹나무에 대해서 살펴본다. 송현동 고분에서 목관이 출토될 당시,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자생하지 않는 녹나무 제품으로 확인되자, 가야 철기의 답례품이 아닌가 하는 일본 신문기사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목관이 확인되고 반출될 당시 국내외의 연구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으면서 구유형, 할죽형, 주형목관이니 하면서 많은 말들이 있었다. 이러한 점에 관점을 두고 많은 조사를 하면서 확인한 결과 목관은 배를 재사용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녹나무 목관은 2005년 7월 석실 밖으로 반출되어 현재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 보관되고 있다.” 제주에서는 “녹나무 가지와 잎을 환자의 자리 밑에 깔고 불을 때면 환자가 낫는다” 또 이 나무를 집 밖에 심어 귀신의 출입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녹나무의 향기는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하여 제주도에서는 해녀들이 물질하는데 쓰는 도구를 녹나무로 만들고, ​또 상처를 입으면 이 나무를 태워 그 연기를 상처에 쏘였다고 전해온다. 한편 제주 ‘시니어를 위한 환경교육’ 강의 중에 녹나무 이야기를 꺼내자 교원 출신 수강생이 “삽목에 의한 번식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우포늪의 왕버들도 태풍이 와서 쓰러져도 넘어진 가지 아래로 뿌리를 내려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면서 녹나무와 왕버들에 관해서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창녕 송현동고분 출토 목관은 배를 전용하여 목관과 유사한 형태로 변형하여 사용한 것으로 이해되며, 이는 단지 가야와 왜의 교류에 의한 녹나무제 배의 이입으로 볼 수 있다. 즉, 배의 이입보다는 녹나무 그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다고 여겨진다. 6호분 역시 석실의 구조가 7호분과 동일한 것이며, 그 내부에서 녹나무 편들이 수습되었기 때문에 6, 7호분의 연관성(표형분이 나타내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한 개체의 배가 양 고분으로 나누어 재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녹나무의 특징과 녹나무를 중요시한 이유

녹나무는 더운 지방에 분포하는 아열대성 수목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나무의 한 종류이다. 영어 일반명은 Camhpor Tree, 일본 이름은 クスノキ, 한자로는 樟(장), 豫樟(예장), 香樟木(향장목), 樟木(장목), 樟樹(장수), 樟腦木(장뇌목) 등의 이름을 갖는다. 크게 자라면 지름이 5m, 높이가 40m정도에 이르는 거수(巨樹)이다. 녹나무 목재에는 장뇌향(樟腦香, Camphor)이라는 일종의 방충제를 함유하고 있어서 녹나무로 만든 옷장은 좀이 옷을 갉아 먹지 않으므로 예로부터 고급 가구재, 의약용의 강심제, 무연화약의 제조 등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녹나무의 분포는 중국 남부와 대만, 제주도, 일본 남부의 규슈를 거쳐 관서(關西)지방에 이르는 곳이다. 대체로 중국 남부가 중심 분포지로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 제주도와 규슈 쪽으로 분포지가 물결 모양으로 퍼져 나간다. 현재 가장 큰 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은 중국의 양자강 남부이며 杭州 일원에는 지금도 상당수의 녹나무가 남아있다. 대체로 우리나라 남해안은 녹나무 분포 물결의 마지막 한계 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목관재가 출토된 경남 창녕지방을 비롯한 우리나라 남해안에 큰 녹나무가 자랐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므로 목관에 이용된 나무는 먼 이국에서 가져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장소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녹나무 자원도 풍부한 규수 지방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또 당시에는 목불과 배를 비롯하여 일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녹나무였다. “번식은 종자를 뿌리면 쉽게 많은 나무를 얻을 수 있는데 종자는 대개 8년 이상 된 나무에서 맺힌다. 따낸 종자의 과육을 벗기고 잘 정선한 뒤, 건조하지 않도록 모래와 섞어 저온에 저장하거나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봄에 파종한다고 한다. 종자를 따면서 바로 파종해도 됩니다. 삽목에 의한 번식도 쉽게 할 수 있다.”(블로그 남혜엄마)

한편 “녹나무 목관은 2005년 7월 석실 밖으로 반출되어 현재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 보관되고 있다. 당시 목관이 확인되고 반출될 당시 국내외의 연구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으면서 구유형, 할죽형, 주형목관이니 하면서 많은 말들이 있었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는 이러한 점에 관점을 두고 많은 조사를 하면서 당시 가야와 왜 간의 교류에 주목하였다.

가야지역 고분에서 가야와 왜 양국 간의 교류

의령 경산리고분군 출토 석관, 의령 운곡리고분군 돌선반, 거제 장목면의 왜계 석실, 산청 생초고분군 9호분의 주문경(珠文鏡)과 수혜기(須惠器), 고령 지산동고분군 44호분 출토 야광패제 국자, 의령 경산리 2호분의 마구류, 고성 내산리 34호분의 마구류 등에서 일본과의 관련성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가야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왜계석실은 6세기 전반의 한정된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수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구조적으로 매우 다양하여 지역의 고유한 형식으로 정착되거나 계승되지는 않는다. 즉, 이러한 모습은 거제의 장목고분(사다리 형태의 현실 평면, 석실 측벽 하단부 장대석의 사용 등), 사천 선진리고분(대형 문주석, 현실개석과 연도개석의 당차가 없는 점 등), 의령 운곡리 1호분(동장형(胴張型)석실, 후벽에 설치된 돌선반 등), 의령 경산리 1호분(석옥형(石屋形)석관, 연도 폐쇄석 등), 고성 송학동 1B호분(적색안료 등) 등의 고분구조뿐만 아니라 각 유적에서 왜계 유물들이 많이 확인되고 있다. 이들 6세기 초반의 유적 유물들과 함께 창녕 송현동고분 출토 녹나무 목관 역시 왜와의 교류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창녕지역은 신라와의 교류로 인해 더 한층 왜와의 연관성을 지어야 할 것이다.(문화재청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학예실 박종익 자료에서 발췌함) 향후 창녕군과 문화원 등에서는 화왕산과 토평천 그리고 계성천을 따라 낙동강을 만나는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여 생태역사문화 전체를 조명하여 창녕군의 미래 발전 전략을 설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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