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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핀 아름다운 선행밀려드는 창녕 피란민에게 곳간을 풀어 구제한 밀양시 초동면 윤 씨 부자
비사벌뉴스 | 승인 2022.08.09 16:48

남지읍 고곡리 살구정에 보은각(報恩閣)이란 정각이 있다.

그 10여 미터 길가에는 윤씨부자세관정현경인란시혜비(尹氏父子世官正鉉庚寅亂施惠碑)가 비각 안에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게 한다. 여름이 한창인 7월 31일 비가 오는 중에 찾았다. 배롱나무 꽃은 빗속에서 더욱 붉고 비각은 무심하게 비를 맞고 묵묵히 시간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 비석에는 동족상잔의 참혹한 한국동란 중 아비규환 피란생활 중 수많은 자신의 곳간을 열어 사람들을 구한 감동적인 이야기 숨겨져 있다.

미군의 주민 소개명령으로 피난길에 올라

창녕군은 낙동강 최후 방어선으로 한국전쟁사에 기록된 요충지였다. 당시 왜관~창녕~마산 진동 구간은 미군이 주축인 UN군이 방어했고 왜관~포항구간은 국군이 방어했다.

창녕 낙동강에 방어선을 구축한 미 제24사단은 8월 2일 병력 배치를 마치고 개인 참호를 파는 등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다음날인 3일 창녕군민에 대해 대구~마산간 구마선(邱馬線) 국도 5호선 서쪽 주민에게 동쪽으로 피란하도록 소개령을 내렸다. 특히 강변 8km이내 지역 주민들에게 피란하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여 사살한다는 포고 방송과 전단을 살포하였다. 그리고 마을마다 미군과 경찰이 다니면서 피란을 독촉하였다.

며칠만 있으면 돌아올 것이라는 말만 듣고 간단한 옷가지와 식량을 주비하여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소달구지에 싣고 8월 3일부터 동쪽으로 피란을 서둘러 떠나기 시작했다.

창녕 북부 유어, 대지, 대합, 이방 등지의 주민들은 성산면과 고암면 쪽과 일부는 창녕읍으로 갔다. 남부 남지, 장마, 계성, 도천, 영산 등지 주민들은 계성면 계성천과 도천면 덕곡 방향으로 피난 갔다.

8월 10일 경 인민군들이 낙동강을 건너 밀려오자 북부는 성산면 운봉 천과 고암면 토평천, 남부는 계성천에 피란민들로 가득차 있었다.

밀양으로 가라는 군의 명령에 감골재를 넘어 밀양, 일부 주민은 성산면 비티재를 넘어 청도방면으로 갔다. 남부주민은 부곡 임해진 개비리길을 지나 밀양 초동 쪽으로 떠났는데 행렬의 길이가 10리를 넘었다.

남지주민들의 피란길

남지읍 고곡리 일대의 창녕군 남부 주민들은 50년 8월 3일 주민 소계령으로 피란길을 떠났다. 아침도 먹지 못한 채 피란길에 올랐던 주민들은 입은 옷에 4~5일 분의 식량과 간단한 취사도구만 챙기고 정든 집을 황급히 뛰어나갔다.

수많은 피란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밀양방향으로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임해진에서 노리로 이어지는 개비리길은 당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험준했다. 낙동강 절벽길에서 소가 겁이 나서 뒷걸음질 치자 할 수 없이 소를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손판주(당시 61세)씨는 10여명의 식구를 이끌고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 초동 수리조합 저수지 제방에 도착한 것은 8월 8일 해질 무렵이었다.

이미 수천 명의 피란민들이 제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풀섶에 앉거나 누워 밤을 지새웠다. 손 씨가 이곳에서 차음 만난 사람이 윤정현(당시 44세)씨 이었다.

윤씨는 키가 크고 건장한 40대 농부였다. 산더미 같은 보릿짚 더미 앞에 서서 피란민들을 불러 모아 땅바닥에 깔 보릿짚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윤씨는 제방 아래쪽 독산마을 주민으로 2일째 보릿짚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날 밤 초동면 일대에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치고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피란민들이 폭우를 피하고 위해 독산마을로 모여 들었다.

윤씨 부자의 선행

윤씨는 우장(雨裝)도 없이 빗속으로 뛰어나와 피란민들을 자기 집 방과 처마 밑에 자리를 깔아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웃 10여 가구에 나누어 비를 피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피란민들의 짐을 지켜주고 노인과 아이들을 위해 죽을 쑤어 주었다.

날이 밝자 윤씨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여 더 이상 피해를 끼칠수 없다하여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두 비를 맞으며 제방으로 나왔다. 초동제방에 자리 잡은 피란민들은 8월 10일쯤 되자 가져온 식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피란민들 살피는 윤씨가 식량이 떨어진걸 알고 창고를 열기 시작했다. 보리를 찧어 보리쌀을 나누어 주었고 심지어 땔감, 소금, 된장까지 아낌없이 주었다.

식량과 반찬을 얻은 피란민들은 “전쟁 끝나고 고향에 돌아가면 갚겠다”며 진심으로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매일같이 윤씨의 집 곡식창고 앞에는 자루를 든 피란민들의 줄이 이어졌다.

1개월여 만에 윤씨 창고의 100여 섬의 보리와 10여 섬의 쌀이 동이 났고 된장, 소금, 땔감도 모두 떨어졌다. 이제 윤씨 가족도 보리등겨로 죽을 쑤어 먹기 시작했고, 된장이 없어 소금으로 반찬을 만들어 먹는 지경이었다.

당시 90세이던 윤씨 부친(윤세관)은 위해 남겨두었던 비상식량인 얼마간의 쌀마저 피란민들 중에 병든 아이와 노인을 위해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윤씨와 부친은 그리고 집안사람들은 이 같은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았다.

피란민 이종태씨는 어느 날 윤씨 집에 보리쌀을 구하러 갔다가 윤씨 부자와 가족이 보리 겨로 죽을 쑤어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씨를 보고 윤씨 부자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고 한다.

은혜의 보답 시혜비를 세우다

창녕사람들이 피란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것은 10월 초순이었다. 고향에 돌아와 자리를 잡고 정신을 차린 손판주씨는 밀양 초동면의 윤씨가 생각났다.

1956년 11월 윤씨를 위한 위로연을 열기로 하고 윤씨의 은혜를 기억하는 주민들에게 모여 달라는 글을 초등으로 피난 갔던 남부지역 각 마을에 돌렸다.

손씨의 이 같은 제의는 며칠 만에 큰 호응을 얻어 남지를 비롯한 영산 계성 장마 도천 길곡 등 6개 면 약 300여명이 참석했다. 모인 주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은혜에 감사하는 표시와 헌시, 사은문을 지어왔다. 헌시 200여 편 사은문 10편이나 되었다.

참석한 주민들은 대부분 그 동안 윤씨의 은혜를 갚는다고 곡식과 돈을 갖고 개인적으로 찾아갔으나 윤씨는 한사코 거절했다고 전하며 이 기회에 모은계를 조직하여 윤씨의 정신을 영원히 잊지 말자고 하였다.

1973년 12월 남지읍 고곡리 살구정(남지읍 고곡리 252-7)에 은혜를 보답하겠다는 보은각을 세우고 그 앞에 비각을 만들어 시혜비를 세워 매년 그를 기리고 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전국 처음 사례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에 보도되었고 보은계 활동상황과 계원 명단을 기록한 창선록도 발간하였다.

[비문내용]

윤씨부자세관정현경인란시혜비(尹氏父子世官正鉉庚寅亂施惠碑)

亂離無食 老何以生 顧鎭顚示 數百其名 父曰護救 子卽奉行 洽延兩月 家資盡傾 曼之爲思 疇不銘臆 出之爲碑 永乘千億 任子 小春節 漢山安明彦 撰

난리에 먹을 것이 없으니 어떻게 살소냐

시든 얼굴들 허둥지둥 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로다.

아버님 말씀이 이를 구원하라 하시기에

아드님이 이를 행하여 두 달이 경과하니

가산이 다 기울어졌도다.

이를 은혜가 된지라 어찌 가슴이 새기지 않으리오

하여 비를 마련하여 천억 대를 길이 보이노라

 

자료참고 : 창녕이 겪은 6.25전쟁(창녕문화원 발간)

취재 : 오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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