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 수필가, 언론인 부산시 지역방송발전위원회 위원장

봄에 뿌려 놓은 호박씨가 어느새 자라 무성한 잎을 자랑하며 담벼락을 타고 오른다. 연약한 넝쿨손으로 지지대를 붙잡고 하늘 향해 뻗어간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자연의 이치와 섭리는 참으로 신기하다.

“성미 급한 사람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제아무리 다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재봉질할 수 없듯이, 매사에는 타이밍이 있다. 때를 기다리고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자연의 이치나 인간사 모두 순리에 따라야 한다. 가을에 수확할 호박을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오늘은, 가마솥에서 보리쌀과 함께 뜸이 들며 밥을 온통 초록으로 물들이던 호박잎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며 부드러운 이파리 몇 장을 솎아냈다.

유월에 선출된 시장, 군수가 원대한 포부를 안고 업무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같은 날 취임한 지방의원들도 일제히 팔을 걷어붙이고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올해로 지방자치제 출범 29년째가 된다. 그동안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의 면면(面面)을 지역민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국회의원과 장관이 된 인물도 있고, 중도에 하차한 사람도 있다. 세월만큼이나 영욕(榮辱)의 시간이 깊었음을 말해 준다. 선거에 나선 사람은 누구나 희생(犧牲)과 봉사(奉仕)로 소임(所任)을 다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처음 마음먹은 데로 온전히 다 이루지는 못한다.

1994년,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이후 8차례에 걸쳐 본 선거를 치렀다. 그동안 우리 군에서 단체장을 지낸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이다. 그 가운데 3선을 마친 군수가 있는가 하면, 재선에 만족해야 한 사람도 있고, 아쉽지만 단임으로 끝냈거나 아주 짧게 근무한 사람도 있다. 누구나 청렴(淸廉)과 공정(公正)을 내세우며 군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나섰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모두가 훌륭하게 직무를 완수(完遂)하지는 못했다. 다른 고장의 사례(事例)이지만, 지나치게 의욕을 앞세우다 지쳐 쓰러진 사람, 구설(口舌)에 휘말려 임기를 채우지 못한 이, 검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덫에 걸려든 사람, 교활한 자의 뀜에 빠져 명예(名譽)가 실추된 정치인도 있다. 정치나 행정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평정심(平正心)을 잃은 탓이다. 그렇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과 지역민이 입게 된다. 리더는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염두(念頭)에 두고 사사로운 개인감정이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며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 미국 33대 대통령 트루먼(Harry S. Truman)이나, 지도자의 책임을 강조한 윤 대통령, 대한민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이끈 이건희 회장을 굳이 거명치 않더라도, 리드의 무한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임 창녕군수는 취임사에서 공무원에게 재량과 권한을 부여해, 소신과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며 “일은 공무원 여러분이 하고 그 책임은 내가 지겠다.”라고 했다. 이보다 더 믿음이 가는 말이 있겠는가? 군정 지표도 “창녕을 새롭게, 군민을 신나게”로 했다. 준비된 군수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정하고 참신하게 군정을 살펴,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창녕은 제2의 경주라 불릴 만큼 문화유산이 많다. 창녕을 본관으로 둔 문중이 많아 신돈, 조민수, 성사제, 심재 등 역사적 인물도 많다. 태고의 신비 우포늪에서 자생하는 가시연꽃과 희귀조 따오기, 부곡온천을 보유한 관광 힐링의 고장이기도 하다. 또, 전통농업을 기반으로 한, 양파와 마늘 등 고부가가치 작물의 재배로 인근 도시에서 젊은 농업인이 찾아오는 곳이다. 신임군수의 119 정책에 힘입어 농업과 신성장 산업이 상호 시너지를 발휘해 살기 좋은 고장, 발전하는 창녕의 르네상스를 기대하며, 신임 김부영 군수와 도의원, 군의원 여러분의 눈부신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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