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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의 일기김영일 수필가
비사벌뉴스 | 승인 2021.06.23 19:56

그날도 바닷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나는 거의 매일 10km 정도는 걷는다. 무릎이 성치 않아서 산에 오르는 건 지양하고 주로 평지를 걷는다. 길바닥이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동백섬 순환 코스와 흙으로 된 숲속 오솔길 걷기를 즐기는 편이다. 가끔 기분 전환을 위해 동해남부선 철로가 놓여 있던 미포에서 송정역까지 걸으며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산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평정을 찾기도 한다. 그날은 돌풍이 불어 멀리 가지 않고 해운대 해변을 걷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라 바닷가에는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큰애야, 아버지가 119에 실려 가셨다. 빨리 오너라.”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인파를 뚫고 내달렸다. 낙상사고를 당한 아버지가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계셨다. 넘어지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생긴 사고라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아버지를 부축하는 일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 혼자 할 수는 없다. 다급한 상태가 발생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일어나실 때까지는 내가 수발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식사에서부터 배변 돕기까지,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익숙하게 도와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화장실도 다녀오시고 보행연습도 하신다. 천만다행이다. 주말이면 멀리 떨어져 사는 동생들이 찾아와서 적적하시지는 않다. 장기전에 대비해 간병인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더니, “네가 최고의 간병인인데 뭣 하러 남의 도움을 받으려 하느냐?”라며 꾸짖는다.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동생이 여럿 있지만,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생업에 바쁘고 일정에 쫓겨 밀착 간호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처지는 이해가 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이제 겨우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성급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을 반성하며 밝은 표정으로 병실 문을 두드린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시면서 반긴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물리치료실로 모시고 갔다.

사람들은 내 나이 또래에게 베이비 붐 세대, 끼인 세대, 산업의 역군 등 수많은 수식어를 붙여주며 위로한다. 거기다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 효도를 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고 덧붙이는 사람도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양로시설과 요양병원이 그걸 대변해 주고 있다. 과거 농경사회는 일손이 부족해 자식을 많이 낳아 키웠다. 하지만 현대산업사회는 한두 명의 아이만 낳아 금지옥엽처럼 키운다. 그런 애들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관련 시설에 위탁해 돌봐줄 것을 바랄 것이다. 어느 자식이 제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사회적 현상과 여건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세대는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는 않다. 나는 주말을 맞아 약속된 일정이 있어서 자리를 비워야 한다. 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병마와 자주 다퉜다고 한다. 고령이 되신 이후에는 병원문을 두드리는 횟수가 더 많다. 다급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형제와 자매들이 서울에 살고 있어서 신속하게 달려갈 수가 없다. 꼭 그런 때문은 아니겠지만 맏이인 내가 부산으로 내려오면서부터 부모님은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병실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추억을 더듬어 보고 싶어선지 알 수는 없지만, 수시로 똑같은 말씀을 자주 하신다. 어렵게 살았던 과거와 6.25 전쟁 때 겪은 고난의 일기를 낡은 필름 돌리듯이 들려주신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아들을 둔 당신 친구의 얘기를 하실 때는 목소리를 높인다. “자식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길래, 자기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찾아보지도 않는데.” 순간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간병인도 싫다. 요양병원은 더 싫다. 퇴원한 뒤에도 그렇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세월이 지나 연세가 더 드시게 되면, 불 보듯 뻔한 감당하기 벅찬 현실에 봉착하게 될 텐데, 그걸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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