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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식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72회)창녕(昌寧)의 하주(下州),
비사벌뉴스 | 승인 2021.04.07 20:14

상주와 하주는 현재의 광역자치단체

치소의 이동 순서 비사벌주(창녕)-대야주(합천)-압량주(경산)-대야주(합천)-거열주(거창)-완산주(전주)

삼국통일 전 신라는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점령지에 대하여 정치·군사적으로 효율적인 지배를 위하여 주(州)를 설치하고 동시에 정(停)이라는 군대를 운영했다.

이러한 주(州)의 쓰임이 상주(上州), 하주(下州)와 같이 넓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는 군관구(軍管區, 국가의 군사 조직에서 군사행정을 위해 설정한 지역이나 구역을 말함) 성격을 갖는 넓은 지역의 주(州)와 비자벌주, 사벌주와 같이 어느 한 지역을 군주가 다스리는 주치(州治)를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주로 나뉘고 있다.

이 중 상주와 하주는 주(州)를 관장하는 중심지인 치소(治所)를 여러 차례 이동하는데 그것은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상주(上州)는 먼저 사벌주(尙州)에 처음 설치된 뒤에 감문주(김천), 일선주(구미시 해평면)로 옮겼다가 다시 사벌주로 돌아왔다가 상주(尙州)로 이름을 바꾼다.

사벌주(상주)는 신라가 백두대간을 넘어 서북부 지역으로 진출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군사적 지원을 담당하는 핵심 전진기지로서 역할을 했다. 감문주(김천)로 이동한 것은 백제와 본격적인 공방전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선주(김천)는 백제와 고구려 정벌전쟁에서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하주(下州)는 비사벌주(창녕)에 처음 설치된 뒤, 대야주(합천), 압량주(경산), 거열주(거창)를 거쳐서 완산주(전주)로 옮긴다. 비사벌주(창녕)는 신라에서 낙동강 서쪽 가야지역을 점령하여 통제하기 위한 강을 이용한 다양한 교통로를 활용할 수 있는 신라 서남부의 핵심 군단 성격으로 운영되었다.

대야주(합천)로 이동은 가야세력들을 확실하게 통제하면서 백제와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핵심적인 거점지역 이었다.

대야주가 백제에 함락되자 낙동강 동쪽지역 압량주(경산)로 치소를 옮긴 뒤에 백제정복전쟁을 지원하는 중심역할을 하였다.

백제를 멸망시킨 뒤 치소를 대야주로 다시 옮겨 하주는 백제 부흥운동 세력을 진압하고 옛 백제지역의 영역을 장악하는 전진기지로서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상주와 하주의 주치 이동과 운영 실태를 보면, 군사적 역할이 강한 군관구로서 운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 : 신라 상주·하주의 이동 과정과 운영, 최범호 전북대학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보면,

『「삼국사기」 지리지에 기재되어 있는 하주는 같은 책 직관지의 하주정(下州停)과 결부되어 매우 혼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 연혁과 변천을 잘 알 수 없지만, 다만 하주가 555년(진흥왕 16)에 비사벌(比斯伐)에 처음 설치된 점과 그 명칭이 상주(尙州)를 상주(上州)라 한 데 대한 대칭으로서 붙여진 것만은 확실하다고 하겠다. 561년에 만들어진 창녕신라진흥왕순수비(昌寧新羅眞興王巡狩碑)에는 비자벌(比子伐) 군주(軍主)의 이름과 나란히 하주 행사대등(行使大等)의 명칭이 보이고 있다. 10년 뒤 565년에 하주는 치소(治所)를 대야(大耶)로 옮겼고, 다시 642년(선덕여왕 11)에는 압량(押梁)으로 옮겼다.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하주는 661년(태종무열왕 8)에 다시 본디의 대야로 옮겼는데, 665년(문무왕 5) 삽량주(歃良州)가 신설되면서 그 영역의 절반가량을 떼어주게 되었다. 삼국통일에 따른 지방제도 개편의 일환으로 685년(신문왕 5)에 완산주(完山州)와 청주(菁州)가 신설됨으로써 하주는 폐지된 것으로 생각된다.』

○ 하주(下州) 관련 역사기록

하주는 설치당시 부산, 경산, 양산, 밀양, 김해등 현재 동부 경남 일대를 총괄하는 지역으로 전체를 관장하는 중심지를 비사벌(창녕)에 설치했다. 당시 창녕은 신라가 낙동강을 넘어 가야와 백제로 진출하는데 핵심적인 군사적 요충지였다.

하주에 관련된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자.

<삼국사기> 지리지 화왕군조

"본래 비자화군(비사벌)에 진흥왕 16년(555년)에 주(州)의 치소(治所)를 두었는데 이름을 하주(下州)라 하였다. 진흥왕 26년(565년)에 주를 폐하였다."

<삼국사기> 진흥왕조

"진흥왕 16년(555년) 비사벌에 완산주를 두었다"

<진흥왕척경비> 비문

비자벌군주(比子伐軍主), 하주행사대등(下州行使大等), 비자벌정조인(比子伐停助人)

진흥왕척경비에 보면 비사벌군주, 하주행사대등, 비사벌정조인등 지명과 관명이 나타나 있는데 비사벌은 군사조직으로 표시된 지명인 듯하고 하주는 행정조직상의 지명인듯 하다.

신라는 군사기관인 육기정(六畿停)제도를 두었으며 정(停)은 군대(군주둔지)를 뜻하는 말이다.

<삼국유사> 제4권 원효불기조

"당승전에 말하기를 본래 하상주의 사람이다. 살펴보건대 인덕 2년(문무왕 5년, 665년)간에 문무왕이 상주와 하주 땅을 나누어 삽량주를 설치하였다. 즉 하주는 곧 지금의 창녕군이다. 압양군은 본래 하주의 속현이다. 상주는 곧 지금의 상주(尙州)이고 또한 상주(湘州)라고도 한다"

- 주의 관할지역은 당시 신라의 왕성인 경주와 상주(上州 )지역을 제외한 서남부 일대의 신라영역전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와 경주일대를 제외한 경산, 양산, 밀양, 청도 등을 관할하는 하주의 주도(州都)로써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 권 제40<육정조>

"6은 완산정으로 본래 하주정인데 신문왕 5년(685년)에 하주정을 파하고 완산정을 설치하였다. 옷깃은 백자색이다."

여기서 완산정(完山停)은 본래 하주정(下州停)인데 685년에 완산정으로 고쳤다고 했다. 555년 처음 행정기구인 하주를 설치할 때 군사기구인 하주정도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하주는 565년에 폐하고 하주정은 신문왕 5년(685년)에 파하고 완산정(지금의 전주)을 설치했으니까 약 130년간 하주정으로 존속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군사요충지로써 가야제국(562년),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를 정복하고 통일신라 이후에 하주정을 폐하고 지금의 전주에 완산정을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행정조직상의 지명으로 생각되는 하주는 565년에 폐지하였으나 관용 상으로 창녕을 하주로 불러왔고 군사조직상의 지명으로 불렸던 비사벌(하주정)은 685년까지 실질적인 이름으로 불렸다고 볼 수 있다.

○ 창녕의 비사벌과 전주의 비사벌

전주 시내를 가다보면 비사벌 아파트, 비사벌 건축등 비사벌이라는 지명이 많이 보인다. 전주는 창녕과 어떤 역사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

진흥왕 15년(555)에 하주를 설치하고 비사벌군(창녕)에 주(州)의 치소(治所)를 두었다. 행정조직인 하주와 군사조직인 하주정(비사벌정)이 설치된 것이다.

하주의 치소는 군사적 유불리에 따라 여러 곳으로 이동한다.

치소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면 비사벌주(창녕)-대야주(합천)-압량주(경산)-대야주(합천)-거열주(거창)-완산주(전주)다.

창녕에 설치된 하주, 하주정(비사벌정)이 마지막으로 이동한 곳이 지금의 전주다. 전주의 비사벌은 창녕에 두었던 비사벌정이 최종 도착한 것이다.

창녕에 처음 설치된 하주정(비사벌정)이 관례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창녕 비사벌과 전주 비사벌은 신라 하주정(비사벌정)이 이동하면서 비롯된 역사적 연관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 신라의 통일과 창녕의 군사적 요충지 소멸

신라의 가야지역 진출의 군사적 요충지인 창녕지역을 정복한 신라 진흥왕은 555년에 행정기구인 하주와 군사조직인 비사벌정(하주정)을 설치하여 562년에 낙동강을 건너 고령 대가야와 함안 아라가야등 가야를 정복했다.

그리고 점차 강성해지고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창녕지역이 요충지로서의 역할도 점차 줄어들어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년)마저 멸망시켜 통일을 이루니 번창했던 창녕지역도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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