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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본 내 고향신당마을을 지키는 단풍으로 물든 느티나무
비사벌뉴스 | 승인 2020.10.18 21:46

신당리(神堂里)

신당리는 본래 옛 대곡면의 지역으로 대곡면의 소재지가 있었다고 한다.

1080번 지방도의 남북에 쟁반과 닭개 마을로 구분된다.

신당은 흔히 신을 모시는 당집이 있던 마을의 지명이다.

지금 신당리의 서편 인가는 없지만 구신당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최근 창녕 조 씨 재실이 들어 선 지대 근처에 옛 신당 마을이 있었다.

이곳 북쪽 골짜기를 마사곡(馬沙谷)이라 부르는데 이 마사곡 일대에 창녕 조 씨들이 살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큰못이 생겨 새못이란 뜻으로 신당(新塘)이라 했다고 한다.

큰 못이 생기고 보니 조 씨들이 살 수 없어 이 마을을 떠났다 한다.

비석등 밑과 망조봉 골짜기 등에 안동 김씨, 달성 서씨, 밀양 박 씨 등이 살았으나 일제강점기 때 군용지로 징발됨에 따라 모두 떠나게 되어 이 근처의 마을은 폐동되었다.

해방 후 마을에 돌아와 옛터에 마을을 재건했으나 교통이 불편하여 모두 떠났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새못을 뜻하는 신당(新塘)을 신을 모시는 집의 의미인 신당(神堂)으로 바뀌었다고 알고 있으나 호구총수(1789년)에 보면 (神堂)으로 기록되어 있어 예부터 신당(神堂)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인 사건과 연관지어 검토하여 보면 이곳 마사곡에는 창녕 조 씨들의 세거지 였으므로 고려 말 이성계와 쌍벽을 이루며 고려 왕조를 지키려한 조민수장군의 행적과 크게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성계와 함께 요동정벌을 위해 출전하였다가 위하도 회군으로 돌아와 좌시중이 되어 우시중인 이성계와 겨루며 고려왕조의 중흥을 위해 애썼으나 1389년 이성계 일파의 불만을 사서 탄핵되어 향리 창녕으로 유배(流配)되었다.

그 후 조민수를 죽이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으며, 결국 유배된 지 1년 후인 1390년에 죽었으니 하룻밤 사이에 동리에 못이 생길만큼 역적으로 몰려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추측된다.

따라서 하룻밤 사이에 큰 새못이 생겼다 함은 흔히 재산을 몰수 하고 그 집터는 못을 파 버리던 저택(渚宅)이란 형벌이 여기에도 시행되었던 것은 아닌가 한다.

신당 (神堂)

행정리의 명칭으로 불리는데 자연 마을인 쟁반과 달개를 말한다. 호수는 98호이다.

쟁반(長盤)

신당리의 북부로 1080번 창녕 - 이방간 지방도 북쪽 도로변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이 있는 지대가 쟁반 접시처럼 생겼으므로 쟁반이라 불린다.

장반(長盤)은 쟁반의 기사인데 이것이 와전되어 장발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을 요새는 신당이라 부른다. 45호가 살며 김해 김씨가 始居하였다고 한다.

닭개(鷄浦)

쟁반 마을 건너 1080번 지방도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형태가 닭과 닮았다." "닭설이다.", "귀신이 많은 곳은 신당(神堂)이니 닭의 소리는 귀신과 밀접하므로 닭계라 부른다." 등 여러 말이 있다. 그러나 닭보다는 달개로 보이는데 달 [月]이니 [개]는 물가를 가리키니 [浦]로 쓰여 [月浦]의 뜻이라 할 수 있으니 남쪽의 큰 호수 사지포의 위이므로 갯사마을이라 달개로 불리었다고 본다.

마을이 있는 산이 구룡산 남쪽의 산으로 계산(鷄山)이라 불리는데 산명이 마을 이름이 된 것으로도 보인다.

43호가 살며, 1630년대에 달성 서 씨와 만성 박 씨가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구룡재(九龍齋 :達城徐氏 奉先所 在 望北亭)가 있다.

구신당

쟁반의 북서쪽으로 마사골에 있었던 옛 신당의 마을 터이다.

이 마을에 조 씨 네들이 살다가 고려 말 조민수장군이 이성계 일파의 미움을 사 귀양을 이곳으로 오게 되니 아마 그의 집은 몰수, 못이 파지고 조 씨들에게도 어려움이 닥치자 떠나가게 되니 새못이란 뜻으로 [新塘]으로 불리어 졌다고 추측된다.

그 후 안동 김씨, 달성 서씨, 밀양 박 씨 등이 살았다 하며 아마 이때 [新塘]의 이름이 유래와 연관, 별로 좋지 않으므로 신을 모시는 당집이 많다는 [神堂]으로 고쳐졌으리라 추측되나 마을에는 그저 "하룻밤 사이에 큰 못이 생겨 新塘이라 했다"고만 전해 온다.

구룡산(九龍山)

신당리의 북쪽, 내울리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이방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진사가 아홉명이 나올 산세라고 전해오는데 지금까지 7진사가 났다고 한다.

굴덤산

구룡산 남쪽 줄기에 있는 산이다. 구신당의 서편으로 작은 굴이 있어 굴덤산이라 불린다. 이곳 굴을 호랑이굴이라 하는데 갈가지 새끼가 살았다고도 한다. 갈가지는 삵쾡이를 가리키는 이곳 토박이 말이다. 창녕 조 씨의 선산으로 고려 말의 장수 조민수의 묘가 있다.

200여년 신당 느티나무

대합면 신당리 993-4번지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느티나무다.

수고는 15m, 수관폭15m, 흉고 1.5m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정자목인 느티나무다.

느티나무는 매운 성분으로 벌레가 거의 없고 천년을 사는 나무로 마을 정자 목으로 인기가 높다.

가지가 잘 발달하고, 잎이 촘촘하여 그늘이 깊어 여름철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더위를 식히는 곳이다. 지금은 마늘심는 철이라 옹기종기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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