旿倫 김영일(수필가, 방송인, 지역방송발전위원)

한국의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에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이며, 유교의 성현을 배향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중종 37년(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영주시 순흥면)으로 고려의 대학자인 안향을 배향하고 있다.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으로 개명된 뒤에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첫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지난해(2019년) 유네스코에서 한국의 서원 9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해 감회가 새로워 그곳을 답사하기로 하고 먼저, 지난달에는 성리학자인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하는 달성군 구지면 소재의 도동서원을 답사하였다. 도동서원은 현풍에서 흘러내려오는 낙동강이 구지를 감도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서 풍광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서원 입구에는 한강 정구선생이 안동부사로 재직할 때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4백 년 동안 모진풍파 다 겪고도 꿋꿋하게 서원을 지키고 있었다. 환주문을 지나 중정당에 들어서니 주위가 쥐죽은 듯 고요해 금방이라도 유생들이 줄지어 나와 글을 읽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뒤뜰에는 김굉필 선생과 정구선생을 배향하는 사당이 있었다.

한훤당 김굉필 선생은 김일손, 정여창, 김전, 남곤 등과 함께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제자이다. 한훤당 선생은 송나라 수양서인 소학의 가르침대로 생활하며 스스로 소학동자라고 불리기를 좋아했던 유학자였다고 한다.

오늘은 두 번째 답사로 경주시 안강읍에 있는 옥산서원을 찾았다. 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태두이며 퇴계 이황의 스승이자, 동방5현* 중 한 분인 회재 이언적(李彦迪)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7월 초순은 장마철이라 아침부터 빗줄기가 대지를 적시고 자옥산 중턱은 운무에 가려 무릉도원을 방불케 했다.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서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예상치 못한 대포군단을 발견했다. 멸종위기 여름철새인 호반새를 촬영하기 위해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기다리는 사진가들을 만난 것이다. 사진 찍는 사람들을 말릴 수는 없지만 불안해하는 어미 새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정문을 들어서자 해자(垓字)라고 하기에는 너무 앙증맞은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돌다리를 건너 본체에 들어서니 도동서원과 마찬가지로 본체인 구인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유생들이 기거했을 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고 맞은편에는 누각무변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여 공부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끔 배치되어 있었다.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물소리에 이끌려 계곡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주상절리 같이 낮게 조각된 듯 바위들이 바둑판처럼 곱게 깔려 있고 그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세심대(洗心臺), 즉 잡념이 생기거나 수양이 부족할 때 조용히 들어가 몸과 마음을 씻는 곳이란다. 수많은 유생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입소해 뜻을 세우기 위해 땀과 눈물을 훔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김종직의 학맥을 계승한 이언적 선생이 주창한 주리론(主理論)을 퇴계 이황이 집대성하고 제자들이 완성한 조선의 성리학(性理學)이다. 돌아오는 길에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익제 이제현을 배향하는 구강서원을 거쳐 양동마을에 들려 경주(월성) 손씨와 여주(여강) 이씨 고택을 둘러보고 빗소리를 들으며 귀가 길에 올랐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전에 다녀온 소수서원과 도산서원(퇴계 이황), 병산서원(안동, 서애 류성룡)을 비롯한 함양의 남계서원(일두 정여창)을 답사하고 필암서원(장성, 하서 김인후), 무성서원(정읍, 최치원, 신잠), 돈암서원(논산, 사계 김장생)도 천천히 돌아보며 유학자들의 철학과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동방5현 :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조광조, 이황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