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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식 문화관광해설사의 숨은 문화재를 찾아서우산나루 – 외삼학나루 - 등림나루-등림개비리길
비사벌뉴스 | 승인 2020.06.11 15:23

이 기사는 「2020년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기획취재 기사 지원사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한강 정구선생 봉산욕행록 이틀째 밤을 묵은 우산진(牛山津)

○ 길을 걸으며

걷는 게 목적인 사람들은 시간을 다투어 걷는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좀 다르다. 먼시선으로 산이 하늘과 만나 만드는 고운 하늘선, 주변 산세와 물길, 나무와 식물, 그리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을 즐기며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오가는 길목의 문화재를 찾아 옛 님들의 향기와 정취를 느끼고 싶어 한다.

강변 벼랑길은 오랜 세월 동안 민초들의 교통과 생필품이 오가던 길이다.

개비리길에는 언제나 나무와 같이 걷는다.

식물은 안다. 곤충과 동물이 살며, 비가오고 계절이 바뀌며, 바람이 불고 비가오고 눈이 오는지 안다. 새들은 입이 작다는 것과 동물들은 입이 크고 혀가 있어 단맛을 좋아한다는 것도 잘 안다.

인간들은 이 모든 것을 식물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 생각한다. 자연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오는 오만방자함이다.

식물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약 5억년 전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30만년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 개비리길을 제대로 즐기는 법

개비리길을 걸으며 앞과 옆만 보지말고 고개를 들어 벼랑을 올려다 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 그냥 바위만 보이는가 ?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검은색, 푸른색, 붉은색, 어두운 갈색을 띤 바위가 보일 것이다.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흙이나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이다.

한반도의 2/3 이상은 화강암과 변성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상남북도 일원은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이 많다. 퇴적암에는 공룡발자국, 새발자국, 연흔, 건열등 화석이 많이 나온다.

이 퇴적암은 공룡이 살던 시기에 만들어진 바위들이다. 그 나이가 1억 2천만년~1억 4천만살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것이 있다. 인간은 지구상에 나타난 가장 막내 생명체라는 것을...현생 인류의 조상은 고작 30만년이다.

저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은 언제부터 흘렀는지, 수많은 모래는 어떻에 여기까지 도달했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 개비리길을 걸으며 얻을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열녀․효자비가 있는 외삼학나루(外三學津)

죽전 마을 조금 북쪽에 합천군 덕곡면 외삼학마을로 건너가는 물길 외삼학나루가 있었다. 나루터에는 지금 합천창녕보가 걸려있다.

예전에 합천 사람들이 이 나루터를 이용하여 이방장에 다녔고 이방면 사람들은 농사와 뗄감 구하러 건너 다녔다.

나루터는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중요 교통로였으니 때때로 사고가 일으나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전해오는 슬픈 사연들이 쌓여 있기 마련이다. 이방면 죽전마을로 가는 길가에 금아정렬비(金娥貞烈碑), 한아지순효비(韓阿只殉孝碑), 의구비(義狗碑)가 그것이다.

○ 강건너 합천군 청덕면 외삼학나루 송덕비

삼학나루 합천쪽 강변 언덕에 해묵은 상수리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옛 나루터 흔적이다. 상수리나무 조금 떨어진 곳에 두개의 비석이 합천창녕보를 찾는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비석은 청덕면(옛 청원, 덕진, 양면) 어부(漁夫)들이 성금을 모아 세웠다. 조선 숙종(1688)때 건립한 군수조설영세불망비(郡守趙楔永世不忘碑)와 경종(1724) 건립한 군수성덕함애민감어지비(郡守成德函愛民感漁之碑)다.

두 군수는 조선시대에 관습으로 내려오던 조세폐단을 혁파하고 강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던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경감시켰다하여 송덕비를 세웠다.

○ 고장산 정상 장터와 등림나루

이방면 등림리앞 낙동강가 옛 이수정앞 나루를 강진나리(江浦) 또는 등림나루라 불렀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낙동강 하류 구포, 김해등에서 소금, 젖갈, 생선을 배에 싣고와 등림나루에 내려 등짐을 지고, 이방사람들은 농산물을 이고지고 고장산 정상에 올라 장터를 열었다고 한다. 넓고 편편한 장터자리는 과수원으로 변해있다.

등림나루 근처에는 등림산성(登林山城)과 어부정(漁父亭), 지금 없어진 이수정(二水亭), 등림개비리길, 사미헌장선생낙빈동범유촉비(四未軒張先生洛濱同帆遺囑碑)등 남아있다.

○ 등림개비리길

이방면 등림에서 현창까지 길이 약 1.5km(왕복 3km) 강변 벼랑길이다. 등림에서 출발하면 낙동강을 오른쪽에 끼고 걷는 길이다,

이방면 거남, 우산, 장천, 죽전, 등림사람들이 이방면 현창, 유어면 마수원으로 농사나 장을 보다니던 길이였다. 적포다리 옆 강변에는 20여년전 까지 이남장이 있었다.

등림마을앞 제방끝 “사미헌낙빈동범유촉비” 오른편 아래 대나무숲에 개비리길 입구가 있다.

벼랑길을 훠이 훠이 10여분 가면 큰 바위가 툭 튀어나오며 앞을 가로막는다. 「정도령 돈구디기」전설이 깃든 바위다.

옛날 정도령이 이곳에 살았는데 힘이 장사고 또 도술을 잘 부렸다고 한다. 어느날 어떤 사람과 내기를 하였는데 강 이쪽에 굿(동그라미)을 그려 놓고 강건너 합천땅에서 엽전치기를 하였는데 던지는 쪽쪽 다 굿안에 들어 갔다고 한다. 정도령은 힘이 장사라 강건너에서도 엽전을 던져 넣을만큼 완력(腕力)이 좋았다.

바위에는 바위손(부처손), 돌단풍, 생강나무, 복사꽃등 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3~4월에 걸으면 생강나무꽃, 지난 가을 잎을 달고있는 감태나무, 참나무 여린 순을 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겨울에 떨어진 낙옆이 발목까지 빠지며 발자욱때라 비스락거리는 소리가 좋다. 마침 봄이라 청딱다구리 수컷의 구애의 노래소리와 나무를 쪼는 드러밍이 귀를 즐겁게 한다. 몇 년전 길을 정비했는데 다니지 사람이 많지 않아 중간 중간 끊어져 헤매곤 한다. 제대로 정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있게 좋겠다.

○ 옛 감물창진의 현창

감물(甘沕)이란 지명은 창녕지명사에 신라 때 불리어 진 지명으로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8대 아달라(阿達羅, A.D.154)이사금 4년 2월에 [처음으로 감물, 마산, 2현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서기 157년 2월에 설치하였다니 고대기록이니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오래된 지명임에는 틀림없다.

이리실과 강변과 시장등 마을 일대를 이남(梨南)이라 불렀다. 적포교 위 강변둔치에는 이남장과 마을이 있었는데 20여년전 이남문화마을로 이주하였다.

길을 걸어면 생각이 발효되고 숙성된다고 한다. 멀리 타지에 가는 것도 좋지만 내가 태어나 살아가는 창녕땅의 속살과 숨결을 알아차리는 것이야 말로 고향을 사랑하는 지름길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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