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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의 추억김영일(수필가, 방송인)
비사벌뉴스 | 승인 2020.06.01 18:27

30년 전만해도 창녕에는 면마다 장이섰다. 곡마단 떠내기 배우와 같은 삶을 살았던 장돌림들이 이장, 저장 돌아다니며 단골손님을 만들었다. 1일, 6일은 대지, 2일과 7일은 십이리, 3일, 8일은 창녕읍에서 장이 열렸고 4일과 9일은 이방에서 장마당이 펼쳐졌다. 또, 달성군 인근의 성산면 대견에도 장이 섰으며 어른들은 이를 연암장이라고 불렀다. 남부의 남지와 영산, 부곡, 길곡 등에도 어김없이 5일장이 열렸다.

지금은 창녕, 남지, 영산, 대합, 이방 등 인구밀집지역을 제외한 나머지에는 장이 서지 않는다. 교통이 발달하고 상설 마트가 생긴 때문이다. 장날이 되면 소달구지에 쌀과 고추, 마늘, 채소 등 남새밭에서 기른,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이고 지고 우마차에 실어 장으로 나른다. 곱게 분 바르고 동백기름으로 머리단장을 끝낸 아낙네들의 외출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어머니 눈치 슬쩍 살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고된 농사일과 층층시하(層層侍下)에서 대가족을 수발해야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스트레스 해소하기에는 장만한 곳이 따로 없었던 우리 어머니 시대의 실상을 유추해 본다.

가로수 그늘 따라 이어지는 행렬은 장관을 이룬다. 젖 뗀 강아지를 팔러가는 여인에서부터 한복을 차려 입은 어르신, 지게를 지고 가는 중년, 그 뒤를 따르는 사내아이, 아무리 쫓아도 계속 따라오는 멍멍이까지 등달아 장에 간다. 비린내 나는 어물전이면 어떻고 포목전이면 또 어떠하랴. 장소불문, 지난 가을에 시집간 막내딸과 친정엄니의 애틋한 대화는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와병중인 친정아버지 소식이 궁금한 여인은 친정식구를 찾느라 시장기도 잊은 채 온 장을 헤매고 다닌다. 송아지 판돈을 두둑이 챙긴 아재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초장부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수다를 떤다. 농담 잘 받아 주기로 소문난 주모도 등달아 잔을 부딪치며 대화에 끼어든다. 잘생긴 장 닭은 두 다리가 묶인 채 겁에 질려 눈알만 굴리며 구구대고, 소쿠리 밖으로 뛰쳐나온 강아지들은 시장 바닥을 쏘다닌다. 이를 잡으려는 할머니는 비지땀을 흘리며 지친다. 소벌에서 건져 올린 가물치와 붕어는 비좁은 고무 대야에서 가픈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린다. 장보기를 끝낸 사람들은 가마솥에서 막 우려낸 구수한 돼지국밥 한 그릇을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비우고 어디론가 휑하니 떠나간다.

달성군 유가면과 성산면, 대합면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연암장은 경남북 도민들의 소통의 장이 된다. 평소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조심스레 혼담을 꺼내기도 한다. 누구는 아들, 어떤 이는 딸 자랑한다. 마음을 뺏긴 어린소녀가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며 강 건너 마을 갑돌이 에게 시집가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남도와 북도의 사투리가 오가는 구수한 말씀의 성찬이 이어지는 연암장을 지나 낙동강 따라 조금 더 내려오면 이방장이 있다. 옛날에는 배가 닺는 강기슭에 장이 섰다고 한다. 고방장이라 불리던 이 장은 아주 큰 장이었다. 고령 계진과 합천 덕곡, 달성 구지 그리고 굽이도는 회천을 따라 멀리 성주 사람들까지 배를 타고 모여 들었다고 한다. 제마다의 지역특산물을 자랑하고 흥정하다 막걸리사발을 기울이며 시름을 달랬을 것이다. 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 수구레 국밥이다. 수구레는 쇠가죽에 붙어 있는 얇은 막으로 가죽을 가공할 때는 벗겨내 버리는 부위고 정육점에서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가난한 가파치는 아까워서 끓여 먹었다고 한다. 방송 효과인지, 옛 맛이 그리운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인지, 콜라겐이 많다는 의사 덕분인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며 국밥을 말던 할머니도 한 마디 거든다.

일제시대, 발생한 대홍수로 장터는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장천으로 장터를 옮겨 이방장을 개설했지만 백년이 다되어가도 창녕사람들은 그 이름을 잊지 않고 고방장이라고 한다. 장이 섰던 곳은 수목이 우거져 옛 터를 찾을 수 없다. 그저 무심한 강물만 소리 없이 흘러내릴 뿐, 오늘따라 무심사 스님의 독경 소리가 유난히 크고 청아해 고요한 정적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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