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포 저녁노을

불을 끄고 누워도 달빛에 잠 못 들어 문 열고 별을 바라본다. 별들은 졸고 있는데 고니들과 기러기들도 잠못들고, 트럼펫을 불어댄다. 가끔 부엉이 울음소리도 슬픈 밤이다. 낮에는 얼어버린 늪을 따라 걸으며 새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산새들이 부지런하다. 따오기도 6마리가 논습지에서 잘 논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찾아오는 부엉덤의 수리부엉이가 부처님처럼 절벽에 앉아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나도 그를 만나면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인다. 인간은 하느님이 태초에 만든 에덴의 동산에서 무화과를 따먹다가 쫓겨났다는 이야기는 익히 아는 일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다시 에덴동산(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도하고, 자선을 베풀고, 사회봉사를 하면서 덕을 쌓는지도 모른다. 가끔 우포늪을 신들의 정원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신들의 정원에서 만나는 생명들은 나에게는 소중한 벗들이다. 이런 야생세계가 점점 훼손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어린아이들까지 길거리에 나서고 있다. 스웨덴 환경운동가인 16세 소녀 툰베리도 그런 청소년 세대이다. 글쓴이도 올해 툰베리가 노벨평화상을 받기를 기대했지만 불발이었다. 다행히 타임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이 되었다. 큰 박수를 보낸다. 이세돌도 알파고 등장으로 예술바둑이 게임으로 변하는 현실에서 일찍 은퇴를 선언한다. 뉴질랜드에서는 34살 여성총리가 탄생했다. 지구촌이 급격하게 변하고,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생물다양성 감소로 미래세대의 삶을 걱정할 때다. 이번 총선에서 기득권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퇴출하고, 참신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시대이다

북극권에서 새들은 백야로 하루 종일 먹이활동이 가능하단다. 우포늪에서 월동하는 새들은 짧은 겨울 햇살아래 긴 밤을 지내면서 상위포식자들에게 가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밤새도록 소리를 지르며 아침을 맞는다. 밤에는 늪 가운데에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늪가에 풍성한 줄풀과 매자기, 마름 등을 먹으며 살아간다. 오늘은 우포가 아닌, 서울 남산 유스호스텔에서 새공부를 한다. 람사르재단에서 개최한 2018년 11월, 우포 버드페스티발 세미나에서 26개 단체와 개인 이름으로 창립선언을 계기로 전국으로 탐조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우포에서 뿌린 씨가 전국으로 퍼져나가 그동안 탐조문화에 목말라하던 전국의 작은 모임과 개인들이 모여 세미나와 한강과 지천에서 다양한 형태로 새를 관찰하고, 주변 새들을 보호하는 문화로 이어져가는 자리이다. 서울의 새, 집 근처 새보기 등으로 동네탐조, 시민탐조로 진화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따오기복원과 황새복원에 앞장섰던 고인이 된 김수일 교수님도 추억하고, 소청도 철새연구센터장인 박진영박사는 부자지간인 원병호교수님과 북의 원홍구교수님 간 북방쇠찌르네기 표식이 분단으로 만나지 못한 긴 시간 부모, 자식을 이어준 사연도 슬프고 아프다.

미래세대에서 자연을 가르쳐야

수리부엉이

한편 동네 중심 청소년들의 탐조활동도 돋보이는 시간이다. 새들의 서식지 보호를 위해 탐조인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는 김대환 선생과 200일을 야생에서 보낸다는 최순규박사의 섬 탐조 강의도 재미있다. 환경부와 전국탐조인네트워크가 주관하는 탐조문화 축제에 126분이 자발적으로 참가하여 귀를 모은다. 경남에서 변영호선생이 주관하는 양서파충류 워크숍에 비견되는 자발적 학습과 토론 모임이 무척 인상적이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학습 강의에 이기섭박사, 박진영센터장까지 6시가 넘어도 빈자리가 없다. 흑산도에서 철새연구를 하며 9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지리산 국립공원 소속의 박종길박사의 (현장탐조의 실제)에서 오리 동정도 집중력을 요한다. 유스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나누면서도 여러 지방에서 올라온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탐조문화를 제대로 확산하여 흑산도공항, 제주공항, 낙동강하구 대저대교 등 곳곳에서 벌어지는 개발행위에 대한 정확한 환경영향평가와 야생동식물들을 보호하는 일에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도록 활동하기를 다짐한다.

"여름이 짙어 신록에 우짖는 새도/가을이 오면 찬 서리를 걱정하네./우리네 인생 늙기도 쉬워서/담장에 얽힌 풀잎처럼 언제 시들지를 모르네./한번 핀 붉은 꽃들 아쉽게 진다해도/인생사 피었다 지는 꿈 이보다 더 아쉬울까."

한강정구선생은 낙동강을 따라 흘렀다

“지난 칠월 스무엿새 날 온정에 들어선 한강 선생의 모습은 멀리서 보아도 가히 일국의 제왕과도 같았다. 줄지어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한강 선생은 고을의 유생들 사이를 가로질러 들어섰다. 눈부시게 흰 수염과 여행 중임에도 반듯한 옷매무새.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작은 꽃가지 하나에 운은 선생의 다감한 성정을 보았다. 한강 선생은 바로 전날 김해 땅을 지나오면서 신어산 아래 신산서원의 사당에 들렀다. 오십 년 만이었다. 스승인 남명 선생이 지었던 산해정이 신산서원으로 바뀌었고 그곳에서 수학하던 젊은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돌아가신 스승을 뵙듯 서원의 사당에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다. 몸은 이리도 빨리 늙어버렸구나. 홍안의 젊은 유생이 백발이 성성한 노옹이 되었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겠는가? 한강 선생은 서원 뜰에 핀 꽃가지 하나를 꺾었다. 스승을 뵙듯 가지에 뿌리를 내려 보리라. 그렇게 김해를 지나 늦은 밤 동래부사가 보낸 영접단과 함께 하룡당 근처 민가에서 하루를 묵었다.”(소설가 정미형. 온정별곡에서 인용)

1607년 여름, 한강 정구선생이 도동서원에서 환원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고, 온정(동래온천)

따오기

을 목적지로 정한 것은 배를 타고 낙강(낙동강)을 따라오면서 수많은 정자와 서원에서 자신의 문하인 유학자들과 만나 결속을 다지고 주연을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75세의 나이로 낙강 일정은 한강 선생에게는 지난 날 남명조식과 퇴계이황 문하에서 배우고, 창녕군수와 함안군수를 역임하면서 영남의 유림들과 교유한 긴 세월을 회고하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긴 여행이었다. 영남유림의 거목인 한강 선생의 문하에는 제자가 되기를 청하며 다가오는 학인들이 많았다. 이렇게 “봉산욕행록‘에 기록된 자료를 들여다보면. 창녕과 함안과 관련된 지명들이 제일 많다. 창녕, 영산, 송진 망우정, 칠원 등을 거치면서 젊은 날 군수를 두 곳에서 하면서 창녕에서는 창산지를, 함안에서는 함주지를 발간하여 당시의 풍습과 백성들의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기록하였다. 아쉽게도 창산지는 사라졌지만, 함주지는 고스란히 남아 늪에서 오키나와 물소를 길렀다는 글이 있어 늪 보전운동을 평생 해왔던 글쓴이에게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덧붙여 동시대 남명 문하생으로 벗이었던 홍의장군 곽재우와 망우정에서 임진란 이후, 함께 만나 두 사람의 스승이었던 남명을 그리워하며 시대를 논했을 당시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홍의장군도 왜적을 늪으로 유인하여 게릴라 전술로 일본 조총을 압도하는 전술을 펴서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승리를 가져온 것도 평소 낙동강의 지리에 통달한 까닭이리라. 낙동강 지류인 토평천을 따라 오르다가 우포늪 둔터에 병기를 숨기고, 낙동강 전투에서 지친 병사들을 먹이고, 병기를 손질하여 다시 낙동강과 남강에서 왜적을 수시로 혼비백산하게 한 무용담도 한강 정구와도 나누었으리라고 상상해 본다. 홍의장군도 왜적을 늪으로 유인하여 게릴라 전술로 일본 조총을 압도하는 전술을 펴서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승리를 가져온 것도 평소 낙동강의 지리에 통달한 까닭이리라. 낙동강 지류인 토평천을 따라 오르다가 우포늪 둔터에 병기를 숨기고, 낙동강 전투에서 지친 병사들을 먹이고, 병기를 손질하여 다시 낙동강과 남강에서 왜적을 수시로 혼비백산하게 한 무용담도 한강 정구와도 나누었으리라고 상상해 본다. 420년이 지난 지금은 홍의장군이 무기를 숨겨두었던 둔터에 따오기복원센터가 생겨, 이 땅에서 40년 전에 사라졌던 따오기가 다시 복원되어 야생으로 40마리가 날아갔다. 6마리가 죽었고, 2마리는 부리와 날개가 다쳐 복원센터로 돌아왔지만 나머지는 우포늪과 멀리 고령과 합천, 밀양 등지로 둥지를 찾기 위해서 32마리가 야생적응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실제로 한강 정구 선생과 곽재우는 벗이기도 하지만, 말년에는 정치적 견해 차이로 소원했던 관계로 추정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창녕에 남긴 족적은 크다. 한강은 창녕군수로 8군데의 정자를 지어 후학을 양성하고, 백성들에게 덕치를 베풀어 우포늪가 마을인 세진은 직접 마을이름을 지어주기도 했고, 그곳에 만진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기도 했다. 한편 곽재우는 낙동강을 오르내리면서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했지만, 임진왜란이 끝나고, 다시 왜놈들이 정유재란을 일으켜 낙동강을 따라 재침했을 때, 화왕산성에서 민관이 협력하여홍의장군과 성안의 등이 지휘하는 군대와는 대적을 포기하고 떠났던 그 기록도 언젠가는 우리지역의 역사적 흔적을 곳곳에 기록하여야 할 것이다. 우포늪 가에 살면서 늘 화왕산을 바라보는 필자로서는 비슬산과 화왕산 그리고 낙동강 품에 둘러싸인 이 고장이 자랑스럽다. 저녁노을에 훨훨 날아다니는 따오기도 언젠가는 자연을 되살린 아름다운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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