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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식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창녕현(昌寧縣) 고지도(古地圖) 해동지도(海東地圖)
비사벌뉴스 | 승인 2019.12.04 11:02

○ 고지도 읽기

고지도란 조선 후기 이전에 그려진 그림 지도를 말한다. 현재 전해 내려오는 지도 중에 조선 시대 이전에 제작된 지도는 전해 오지 않는다.

그러나 기록으로 보면 고려 시대 이전에도 지도가 제작되어 활용됐다. 문헌에 의하면 삼국 시대에도 지도가 있었고, 고려 시대에는 한반도의 모양을 현재와 비슷하게 파악하여 지도를 만들었다 한다. 4세기경 고구려 집안 삼실총 고분벽화의 성곽도(城郭圖)가 있고, 「삼국사기」에 고구려 영류왕 11년(628)에 견당사(遣唐使)를 통해 당나라에 고구려 지도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 백제에 “도적(圖籍)”과 “백제 지리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행정 구역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지도를 이용하였다 한다. 이처럼 삼국 시대부터 지도가 제작되었고 대부분 국가차원에서 통치 및 군사적인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현재 전해 오는 고지도는 대부분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종류는 아시아 대륙이나 세계를 묘사한 세계지도(世界地圖), 한반도 일대를 그린 조선전도(朝鮮全圖), 수도 한양의 도성도(都城圖), 지방 행정구역인 부목군현(府牧郡縣)의 군현지도(郡縣地圖), 국경 부근에 관한 관방지도(關防地圖)로 나뉜다.

이러한 고지도들에는 제작 시점의 국토 모습과 특징, 당시 사람들의 국토관, 세계관,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사상과 가치관이 포함되어 있다.

관아(官衙) 사창(社倉) 역원(驛院) 서원(書院) 사찰(寺刹)을 잇는 도로를 상세히 표시했고, 하천․제방등 물길과 산맥을 크게 그려넣어 장풍득수(藏風得水)를 중요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제작된 군현지도(郡縣地圖)는 나라가 안정된 영․정조 시대 것이 주류다. 「해동지도」「광여도」「조선저도」「여지도서」등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 해동지도(海東地圖)

해동지도는 1750년대 초에 제작된 그림으로 그려진 회화식(필사본) 군현지도집(郡縣地圖集)이다. 이 지도집에는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지도 뿐만 아니라 세계지도(천하도), 외국지도(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관방지도(요계관방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나라에서 만들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됐다. 이 지도는 당시까지 제작된 모든 회화식 지도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지도 상하 여백에는 호구, 전결, 곡물, 군병, 건치연혁, 산천, 군명, 고적, 역원, 서원, 불우(佛宇), 토산 등의 항목과 방위를 표시하고 있다.

지도의 설명문은 1748년(영조 24)~1750년(영조 26)의 상황까지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지도는 1750년대 초, 즉 1750년(영조 26)~1751년(영조 27) 사이에 편찬됐다.

이 지도는 홍문관이 주도하는 정책 자료 편찬의 전통이 「여지도서」로 결실을 맺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각 군현지도마다 도로를 빼놓지 않고 그려 넣은 점이 지도의 가치를 더해준다.(참고 : 서울대 규장각 고지도)

○ 해동지도의 창녕현

창녕현은 지금의 창녕군 창녕읍, 고암면, 대지면, 대합면, 이방면, 성산면, 유어면, 남지읍 일부(고곡)를 포함하는 지역이었고, 읍치는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와 말흘리 일대에 있었다. 고을의 진산(鎭山, 고을의 중심이 되는 산)은 지도상으로 위쪽에 있는 화왕산(火旺山)이다. 화왕(火旺)은 통일신라시대 창녕(火王郡)의 명칭이다. 즉, 진산의 명칭을 고을의 이름으로 사용한 예다.

지도 위쪽이 동(東), 아래가 서(西), 오른쪽 남(南), 왼쪽이 북(北)이다. 읍치(邑治) 동쪽에 비슬산, 화왕산, 구룡산, 영취산 등 웅장한 산들이 외곽을 두르고, 그 안 쪽에 낮은 산들이 다시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산 기슭 곳곳에 절과 암자가 자리잡고 있다. 구룡산 밑에 관룡사(觀龍寺), 비슬산 밑에 지금은 폐사된 성산면 안심의 용흥사(龍興寺)가 표시되어 있다. 용흥사는 조관문(曺關文)이 영조의 11女 화녕옹주(和寧翁主)의 원찰(願刹)로 지었다고 전한다. 객사(客舍) 위에 있는 도성암(道成菴)은 신라말에 창건된 유서 깊은 암자다. 도성암 좌측에 보이는 관산서원(冠山書院)은 1620년(광해군 12)에 세워져 1711년(숙종 37)에 사액되었고, 한강 정구선생을 배향하였다. 관산서원 좌측에 보이는 연암서원(燕岩書院)은 성산면 부용정 옆에 있었든데 지금은 없어졌다.

○ 해동지도에 나타난 창녕현 옛지명

가항지(加項池), 개복면매탄지(介卜面埋炭池), 개복면사곡제(介卜面笥谷堤),객사(客舍), 건지제(乾之堤), 계곡지(溪谷池), 고며제(古旀堤), 관산서원(冠山書院), 관주산(貫珠山), 교동제(校洞堤), 구룡산(九龍山), 극락암(極樂菴), 남곡면(南谷面), 남암(南菴), 대곡면(大谷面), 대곡포(大谷浦), 대초제(大招堤), 도성암(道成菴), 동암(東菴), 모산(牟山), 미구지(尾仇池), 반포지(半浦池), 보은암(報恩菴), 봉안당(奉安堂), 북암(北菴), 비슬산(琵瑟山), 사지지(沙旨池), 고암면감동지(高岩面甘洞池), 성산면(城山面), 소여미제(所余未堤), 송림제(松林堤), 쌍룡사(雙龍寺), 아사(衙舍), 어도(漁島), 어촌면(漁村面), 연암서원(燕岩書院), 연화제(蓮花堤), 영취산(靈鷲山), 옥야면(沃野面), 왕지제(王旨堤), 용연삼(龍淵三), 용장지(龍莊池), 용흥사(龍興寺), 우항산(牛項山), 유장면(遊長面), 읍내(邑內), 이방면(梨房面), 이창(里倉), 자련암(紫蓮菴), 장삽석주(檣揷石柱), 주암(舟菴), 지포면경산제(池浦面京山堤), 창녕현(昌寧縣), 창락면(昌樂面), 청룡암(靑龍菴), 태백산봉대(太白山烽臺), 합산면(合山面), 합산면신제(合山面新堤), 향교(鄕校), 화왕산(火旺山), 황룡암(黃龍菴)

○ 지도 여백에 기록된 내용

창녕현의 가구수는 6,432호 이며 인구는 25,909명이다.

읍내면, 고암면, 성산면, 합산면, 대곡면, 개복면, 옥야면, 이방면, 유장면, 지포면, 대초면, 창락면, 어촌면, 남곡면 14개면이 있었다.

읍내면과 창락면은 지금의 창녕읍, 합산면과 대곡면, 개복면이 합쳐져 대합면, 옥야면이 이방면에 편입, 대초면과 지포면이 합쳐져 대지면, 유장면과 어촌면이 합쳐저 유어면이 되었다. 남곡면은 1914년 도사면과 합쳐져 남지읍으로 발전하였다.

군병총수(軍兵總數)에 경각사제색군(京各司諸色軍) 1,039명 감영속(監營屬) 1,456명 통영속(統營屬) 2,002명 좌병영속(左兵營屬) 122명 좌수영속(左水營屬) 122명 대구진속(大丘鎭屬) 1,543명 동래진속(東萊鎭屬) 30명이다.

내야역(內野驛), 옥야참(沃野站), 진목정참(眞木亭站)등 3곳의 역참(驛站)이 기록되어 있다. 역참은 나라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그리고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된 교통 통신기관을 말하며 내야역은 현 창녕읍 하리에 있었고, 옥야참과 진목정참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서원(西院), 다견원(茶見院), 적현원(赤峴院), 경산원(京山院), 구곡원(仇谷院), 감물창원(甘勿倉院), 방문원(防文院)등 7곳의 원이 있다.

원은 나라의 출장 중인 관원(하급관리)이나 지방관리들이 묵을 수 있게 관로(官路) 30리 마다 여관같은 곳을 설치 했는데, 임진왜란 후 이용자가 제한되 있어 조선 후기에 들어와 현지 민간인에게 넘어가 주막(酒幕), 여각

(旅閣, 여인숙)으로 이용되다 사라졌다.

창녕현의 오리정 북쪽 원고개 근처 서원(西院), 창녕현 여초리 원들 방문원(防文院), 성산면 대견리(大見里) 다견원(茶見院), 성산면 적현원(赤峴院), 대지 대합 고암 경계 경산원(京山院), 유어면 부곡리 구곡원(仇谷院; 마수원 馬首院), 이방면 감물창원(甘勿倉院)등이 있었다.

화왕산, 문방산, 효자암산, 합산, 비슬산, 유남산등 중요 산이름이 표시되어 있고 감물창진, 오어진, 박지곡진, 우산진, 삼학진, 마수진, 현창진등 옛 나루터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물슬천, 남천, 퇴천, 경산천등 4곳의 하천이 표시되어 있고 물슬천(勿瑟川)은 토평천의 옛 이름이다.

이지포, 누구택, 반개진, 용장택등 습지(濕地)가 보이고 우포는 표기되지 않았다. 성산향, 화왕산고성, 신문부곡, 옥천사, 관룡사, 용흥사, 자련사, 연화사등 사찰, 고성, 향․부곡등 옛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현 대합면 십이리 태백산에 있는 합산봉수(태백산봉수)다 표시되어 있다,

불일루(不日樓), 징원루(澄源樓), 추월헌(秋月軒), 세심정(洗心亭)등 누각과 정자가 보인다. 이 누각과 정자들은 동헌(현 만옥정공원)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삽석주(檣揷石柱)는 깃대를 꽂아 놓은 돌 기둥이란 뜻으로 창녕읍 직교리 주택사이에 있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호 「직교리 당간지주(幢竿支柱)」를 말한다.

토산물(土産物)은 죽전(竹箭, 대나무 화살), 즉어(鯽魚, 붕어) , 석류(石榴), 오미자(五味子), 백봉령(白茯苓), 백화사(白花蛇, 백사), 봉밀(蜂蜜, 벌꿀), 감초(甘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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