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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의 나루(6)-송진나루-창암나루-밀포나루(오호나루)오종식 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
비사벌뉴스 | 승인 2019.11.03 11:46

○ 송진나루, 시나리, 쇠나리, 솔나루

쇠나리는 창녕군(옛 영산현) 도천면 송진리와 함안군(옛 칠원현) 칠서면 이룡리를 이어주는 나루였다. 쇠나리는 소나리 또는 송진(松津)나루로도 불렸다. 함안군 칠서면 이룡리의 나루 이름도 송진(松津)나루였다.

쇠나리의 옛 이름은 松津으로 확인된다. ≪경상도읍지≫(영산)에서도 ‘松津이 영산현 남쪽 15리 칠원현 경계에 있으며 조창(漕倉)을 영산현의 세곡을 이곳에서 봉납하였다.’고 하였다. 조창(漕倉)은 도천면 송진리의 창마 마을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조창(漕倉)은 세금으로 징수한 곡물을 모아 보관하고, 이를 다시 서울 경창(京倉)으로 운송하기 위해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했던 나라에서 세운 창고를 말한다.

옛 칠원현에서는 송진(松津) 대신에 금진(金津)으로도 표기하였다.

송진나루에 관한 “아버지는 현감 아들은 목사”라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전한다. 조선 말 고종(1867~1870) 때 110대 영산 현감을 지낸 조운한(趙雲漢)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영산현에서 거둔 세곡을 송진나루에서 싣고 밀양 삼랑진까지 바쳤는데 피해가 많았다.

홍수로 배가 파선하기도 하고 도둑떼에 곡식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백성들의 간청에 현감이 진주목사를 찾아가 송진나루에서 바치게 된 사연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주목사는 조운한 현감의 아들로 알려져 “아버지는 현감, 아들은 목사”란 말이 오늘날까지 전한다. 남지읍 성사리 황새목 길가에 「현감 조운한애민선정비」가 서 있다.

송진 나루터가 있던 강변마을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2009년~ 2011년)으로 철거되고 게이트볼장과 운동기구, 전망대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구릉에는 마을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오래된 느티나무만 외로서 서있다.

송진나루

○ 창암(滄巖)나루 또는 요강(要江)나루

창녕군(옛 영산현) 도천면 우강리와 함안군(옛 칠원현) 칠서면 이룡리 용성과 통한다. 지금은 나루터는 없어져 이름만 남아있다.

원례 나루터는 요강원(要江院)에 있었으나 원(院)이 없어지고, 강물의 물살이 빙빙 굽이 돌아 나룻배가 다니기에 어려워 조금 하류인 아랫마로 옮겼다. 조선시대에 30리마다 원(院)을 설치하여 공무를 보는 관리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나라에서 운영했는데 요강원도 그 중 하나였다.

망우정이 있는 곳에 요광원(要光院)이 있었다고 전하며 창원-칠원-영산 간의 교통 요지라 한다. 강 건너 상류 남지대교옆 반구정(伴鷗亭, 칠서면 용성리)에 은거한 의병장 두암 조방선생이 수시로 곽재우 장군을 찾아 망우정을 올 때 창암나루를 이용했다.

우강마을에는 마을을 반으로 자르는 도천 방수문(都泉 防水門)이 있는데 이 수문을 영산천(도천천)의 물을 강으로 보내고 홍수 때는 수문을 닫아 강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방수문은 우강산성이 있는 산에서 망우정으로 이어지는 맥(脈)을 잘라 만든 것으로 193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37년에 준공 하였다. 수로를 건너는 다리를 요강교라 한다. 우강사람들은 망우정이 있는 창암의 정기를 차단하기 위해 맥을 끊었다고 하며 지금도 맥을 이을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 멸포나루(蔑浦津), 매포진(買浦津), 밀포나루, 오호나루

창암나루

멸포나루(밀포나루)는 창녕군(옛 영산현) 길곡면 오호리 신촌과 함안군(옛 칠원현) 칠북면 봉촌리의 밀포를 오갔던 나루였다.

≪비변사인방인지도≫(칠원)에는 멸포진(蔑浦津)이 古川(현 광려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곳의 하류와 昌原 경계의 상류의 사이에 표기되었으며, 주기에서 ‘멸포진(蔑浦津)이 칠원현에서 26리에 있으며 나루의 너비가 120보(步)이고 진선(津船) 1척이 있으며 낙동강이 흐른다.’고) 하였다.

≪해동지도≫(칠원)에는 西川(서천, 광려천)에 해당하는 내가 낙동강의 합류하는 곳에 멸포진(蔑浦津)이 표기되었고, 주기에서는 멸포(蔑浦)로 기록되었다.

광려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곳의 하류에는 창녕의 멸포나루로 가는 밀깨(밀포) 마을의 밀포나루가 있다.

매포진에 연결된 길은 칠원현의 영포역로(靈浦驛路)이고, 영산현의 매포진에 연결된 길은 영산현 치소와 일문역(一門驛, 계성면 명리) 및 온정역(溫井驛, 부곡면 온정리)으로 이어지는 역로이다.

칠원현과 영산현이 모두 이 나루에 진선(津船)을 배치하였다. 역로를 연결하는 나루로서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옛 칠원현과 영산현의 세곡을 선적하여 수운한 곳도 매포진으로 나온다. 국가가 관리하던 나루였다.

밀포나루

매포진은 고려 낭장(郎將)인 辛斯蕆(신사천)이 왜구에 의해 죽고 그의 딸도 왜구에 항거하다 순절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참고 도천면 창녕 열효신씨 정려비(昌寧 烈孝辛氏 旌閭碑)

일제강점기 전까지 창녕함안보가 있는 강 건너 현 칠북면 봉촌리 일대는 영산현(군) 땅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105년 전인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함안군에 편입되었다.

창녕함안보에서 보면 함안군 광려천과 이령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들면서 퇴적되어 만들어진 10여만 평에 달하는 하중도(河中島, 강 가운데 있는 섬)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섬은 함안군 칠북면 덕남리앞 가까이 붙어 있으나 대부분 창녕군 땅이다. 비옥하여 농사가 잘되었으나 4대강 사업으로 모두 철거되고 텅비어 버드나무와 잡초만 무성하다.

옛 밀포나루터에는 노거수((老巨樹) 한 그루만이 나루터임을 알려줄 뿐이다. 조금 하류엔 창녕함안보에 교량역활을 하여 차량이 오갈 수 있어 나루터를 대신하고 있다.

오호리 출신 선배에 의하면 예전에는 강폭이 좁아 오호리쪽에서 칠북 밀포마을, 덕남마을 사람들과 큰소리로 서로의 소식을 전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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