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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정구선생의 八齊또는 八書堂(상)오종식 문화관광해설사의 숨은 문화재를 찾아서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9.11 06:56
관산서당과 사당

창녕현과 영산현을 재임한 현감은 모두 278명에 이른다. 수많은 현감이 나름 선정을 배풀려고 했겠지만 이름을 남긴 현감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만옥정공원(35기)과 남산호국공원(33기)에 많은 선정비가 서 있다. 선정비는 무분별한 설치로 폐단이 많아 숙종 때 금지할 정도였으니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선정비가 얼마나 될까 의문이 든다.

조선시대 창녕현감은 박한주(성종 24, 1493)에서 박상일(순종4, 1910)까지 417년 148명이다.

그 중 정구(재임 1580~1581), 신서(재임 1739~1744), 정동기(재임 1783~1786), 이성순(재임 1786~1788)현감이 눈에 띈다. 흥학교민에 힘쓴 정구, 이문재(以文齋)를 지어 학문을 일으킨 정동기․이성순, 창녕석빙고를 중수한 신서 등이다.

영산현감은 신담(성종 14, 1483)에서 유성열(순종3, 1909)까지 426년 130명이다. 그 중에 윤이일(1750~1755), 조운한(재임 1867~1870), 신관조(재임 1889~1892)현감이 두드러진다. 윤이일현감은 영산석빙고를 중수했고, 조운한 현감은 조세부담을 덜어준 공이 있으며 신관조현감은 영산만년교와 연지 못을 고쳤다.(창녕군지 상권, 2003년 발행)

○ 창녕현(昌寧縣) 명현감(名縣監) 한강 정구(寒岡 鄭逑)

정구선생은 13세부터 덕계 오건에게 배웠고, 21세에 퇴계 그리고 24세 남명을 직접 찾아뵈어 가르

관산서당 현판

침을 받았다. 29세에 예빈시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로 동강 김우옹의 천거로 여러 번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사양하였다.

38세에 늦은 나이에 창녕현감이 되었으니 남명과 퇴계학을 섭렵한 학문적 이론을 처음 현실에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1580년(선조 13년), 38세 때인 1580년 4월에 창녕현감(昌寧縣監)으로 부임 1581년 9월까지 1년 5개월의 짧은 기간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풍속을 아름답게 하고 현민 교육에 힘쓰는 흥학교민(興學敎民)을 목표로 현내에 8개 서당을 세워 큰 성과를 거두었다.

8제(8서당)는 관산제(고암면 월미), 부용정(성산면 후천), 술정(창녕읍 술정), 팔락정(유어면 구미), 옥천정(창녕읍 옥천), 물계정(대지면 왕산), 백암정(고암면 원촌), 만진정(유어면 세진)이다. 부용정․팔락정․옥천정 3곳은 새로 건물을 세웠고, 관산제․술정․물계정․백암정․만진정 5곳은 기존에 있던 정자를 활용했다. 각 서당마다 인근의 덕망 있는 선비로 선생을 삼아 가르치게 하였다.

유교를 진흥시켜 도덕과 피폐한 풍속을 교화하고, 동시에 다스리는 자는 가혹한 정치를 피하게 하려고 하였다. 또 백성은 자신의 생업에 즐거워하며 미풍양속을 진작하여 우수한 인재와 국가동량을 양성 배출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바쁜 증에 시간을 할애하여 八齊(팔제)를 직접 돌며 순회 강의를 하는 등 왕성하고 열정적인 활동을 했다. 생애 첫 부임지인 창녕현에서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학문을 현실 정치에 적용해보고자 했고 선정을 배풀었다. 선생이 떠난 후 현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세웠다.

○ 창녕의 창산지(昌山誌)

38세(1580년) 때 처음으로 창녕현감(昌寧縣監), 44세(1586년)에 함안군수를 지낸 뒤, 임진왜란 중에 강릉부사, 강원도 감사, 성천부사, 그리고 임란 후에 충주목사, 안동부사를 역임했다.

지방관으로 부임해서 가는 곳마다 지방지를 편찬하였는데 8종에 이른다.

“창산지(昌山志, 창녕), 동복지(同福志, 화순군), 함주지(咸州志, 함안), 통천지(通川志), 임영지(臨瀛志, 강릉), 관동지(關東志, 강원도), 충주지(忠州志, 미완성), 복주지(福州志)등 임진왜란 속에서도 강원도 감사로 재직 중에 “關東志”를 편찬하였다.

그러나 1614년 정구선생이 72세 되던 해 경북 칠곡의 노곡정사(蘆谷精舍)에 불이나 많은 그의 저서는 대부분 불타버렸다. 선생은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려!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려!”라고 통탄을 금치 못했다고 하였다.

현존하는 지방지는 함주지 뿐이며 7종은 전하지 않는다. 필자는 국내는 물론 일본대사관까지 전자 우편(전자우편)을 보내며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관심이 있는 독자께서 창산지를 찾아보시길 간곡히 권한다. 꼭~~~

○ 창녕현과 영산현의 인연

정구선생은 창녕현과 인연이 깊다.

김굉필의 둘째 아들 김언상공이 무오사화 때 고암면 계팔로 피신하였다. 김언상의 외아들 성재 김입(金立)선생은 한훤당 김굉필의 손자이다.

한강 정구선생(김굉필의 외증손)께서 창녕현감으로 부임하여 진외종숙인(아제) 김입을 찾아 함께 인사를 하고 기념식수를 하였는데, 행동제 앞 420년 된 은행나무이다.

그리고 영산현 온정리를 찾아 5촌 조카 이석경, 이후경, 생질 이방면 노극홍을 유학을 지도하였다.

창녕현감과 함안군수 재임 시에 두루 교류한 인연으로 창녕, 영산, 함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였다.(함안군 함안면 함안향교 옆에 선정비가 있다)

■ 八齊

1. 관산제(冠山齊)

관산서당

고암면 우천리 월미에 있는 관산제는 8서당 중 대표적인 곳이다. 광주노씨 옥촌 노극홍(沃村 盧克弘, 1553~1625)이 학생을 가르쳤다.

노극홍은 정구선생의 생질(甥姪)로 선생께 배웠다. 정구선생이 노극홍에게 관산제에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게 했다. 임진왜란 때는 곽재우장군과 화왕산성에서 의병활동을 했고 파리장서사건에 참여했다.

정구선생께 임기를 마치고 떠난 다음 해(1582)에 노극홍과 부용당 성안의선생과 더불어 많은 선비들을 모아 관산제 아래쪽에 살아있는 분의 생사당(生祠堂)을 짓고 춘추(春秋)로 향사(亨祀)를 올렸다. 돌아가신 다음해 1621년에 관산서원을 세우고 제사(祭祀)를 올렸다. 숙종 때는 사액을 받아 창녕현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 관산서원과 관산서당

관산제 현판

정구선생(1543~1620)이 돌아가신 다음해인 광해 25년(1621)에 한강정구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관산서원을 창건하고 선생을 추모하는 향사를 올렸다. 숙종 37년(1711)에 진사 강흔(進士 姜訢), 생원 안여경(生員 安餘慶)을 별사(別祀)를 세워 모셨고, 같은 해 사액(賜額)이 내려져 사액서원으로 규모를 갖추고 서원 역할을 하였다. 창녕 유일의 사액서원이다. 고종 때인 1871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

서원이 없어지자 선생을 추모하는 정을 계속하기 위해 서당을 새로 세우고 향사를 계속했다.

현제 관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35호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관산서당은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900년 전후에 건립된 것으로 안내판에 설명하고 있다. 2009년 없어졌던 사당(祠堂)을 재건하였다.

○ 신주(神主)단지 발견

신주단지

〈고종실록〉7년 9월 10일 "서원을 헐어버리고 신주를 묻는 일은 모두 대원군의 분부대로 거행하도록 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원군은 1868년과 1871년 사액서원(賜額書院) 47곳을 제외한 1,700여 곳의 서원을 '철원매주(撤院埋主, 서원을 헐고 신주를 묻어버림)'할 것을 명했다. 국립 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09년 7월 관산서원(冠山書院) 사당 터에 묻혀 있는 신주를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했다. 발견된 '묻힌 신주[매주·埋主]'는 철폐된 서원 사당 터 자리 한가운데를 파고 옹관처럼 옹기를 맞붙여 세운 뒤 그 속에 정구의 위패(신주)를 봉안한 형태다. 둘레에는 기와로 세 겹을 감싸고 흙으로 덮었다.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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