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체육
신돈의 삶과 역사적 위상(13편)고려대학교 김창현교수 著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9.11 06:38

신돈정권기 재상과 감찰사관원과 신돈 측근은 경상도 사람이 다수를 차지했다. 경상도 출신 측근은 신돈의 친족인 영산 신순 신귀 신수 신올지, 신돈의 異父弟인 강성을, 사망한 신예의 처가인 성주 이인임 이원구, 안동 김란 김천보, 김진, 안동 길안의 임박, 창녕 성여완 성준덕 성석린 조민수 조취귀, 청도 김한귀와 아들 김린과 조카 김희, 현풍 곽의, 밀양 손용 손연 손주, 합천 이운목 이승로 형제, 함양 오일악, 선산 김달상과 아들 김군정 김문현, 의성 김횡, 경주 이성림 등이었다. 다른 지역 출신의 측근은 양광도 행주의 기현과 그 아들 기중륜 기중제 기숙륜 기중평 기중수, 양광도 양성의 이춘부 이광부 이원부 형제와 이춘부의 아들인 이옥 이윤 이예 이한 이징 등이었다. 이춘부, 김란, 기현, 최사원, 이원구, 홍영통, 임박등은 신돈을 위해 헌신한 최측근 심복이었다. 신돈정권의 구성원은 경상도 출신 색채가 강했고 친원적 인물들이 많았다.

신돈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전민변정도감(전민추정도감)의 설치와 그를 통한 개혁이었다. 고려사 신돈 전에 따르면 공민왕 15년에 신돈이 요청해 田民辨整都監을 설치해 스스로 판사가 되었다고 한다. 고려사 임박 전에 따르면 임박이 일찍이 신돈에게 말하기를, “公이 國政을 총괄하니 마땅히 田民爭訟의 寃者를 整해야 합니다” 라고 하자, 신돈이 왕에게 아뢰니 왕이 推整都監을 세워 신돈에게 명해 提調로 삼고, 임박에게 명해 使로 삼았다고 한다. 고려사절요 권28에 따르면, 공민왕 15년 5월에 田民推整都監을 설치해 신돈으로 판사를 삼으니 이에 權豪가 빼앗은 田民을 많이 그 本主에 돌려주자 中外가 欣然히 기뻐했다고 한다.

신돈이 榜을 내걸어 中外에 諭하기를, 근래 紀綱이 크게 무너져 貪墨이 풍속을 이루어 宗廟學校倉庫寺社祿轉軍須田및 國人世業田民을 豪强의 家가 거의 다 奪占하고, 혹 이미 판결했는데 그대로 執하거나 혹 民을 冒認하여 노예로 삼거나 州縣驛吏官奴百姓의 逃役者를 모두 다 漏隱해 農莊을 대규모로 설치해 民을 병들게 하고 국가를 야위게 하여 水旱을 부르고 癘疫이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都監을 설치해 이로 하여금 推整하게 하되, 京中은 15일에 한정하고 諸道는 40일에 한정하나니, 그 잘못을 알고 스스로 고치는 자는 묻지 않을 것이며, 過限해 일이 발각되면 糾治하고 妄訴者는 坐罪한다고 했다.令이 나가자 權豪가 빼앗은 田民을 그 主에게 많이 돌려주니 中外가 忻然히 기뻐했다. 신돈은 ‘間一日’ 즉 격일로 전민변정도감(전민추정도감)에 이르러 이인임 이춘부 이하로부터 보고를 들어 결정했다. 신돈은 겉으로는 公義를 假裝하나 사실은 사람들에게 ‘市恩’하고자 즉 은혜를 매매(거래)하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무릇 賤隷가 訴良하면 한결같

이 모두 良으로 판정하니 이에 奴隷(奴婢) 背主者가 蜂起해 말하기를, “聖人이 나셨다”라고 했다고 한다. 婦人소송자가 모습이 아름다우면 신돈이 겉으로 哀矜을 보이면서 그 집으로 誘致해 문득 淫하고 소송에서 반드시 得伸하도록 하니 이로 말미암아 女謁이 盛行하고 士人이 이빨을 갈았다고 한다. 儒者는 신돈의 전민변정을 가짜 公義로 ‘市恩’(요즘말로 포퓰리즘)이라 비난했지만 그러한 ‘市恩’은 많을수록 대다수에게 좋은 진짜 公義였다. 신돈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전민추정도감에 나가 판결을 했으니 얼마나 열정적으로 근면하게 전민추정에 나섰는지 알 수 있다.

前주인이 가노 출신 관원을 구타한 사건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고려사 신돈 전에 따르면, 判事張海의 家奴가 郞將이 되었는데 張海와 조우했을 때 高揖하고 下馬하지 않자 장해가 노하여 그를 채찍질하므로 奴가 신돈에게 호소하니, 신돈이 장해 및 그 딸을 巡軍에 가두었다. 고려사김흥경전에 따르면, 郞將張龍은 본래 判事張海의 奴인데 贊成安師琦를 諂事하며 張海에게 不禮하자 장해가 노해 채찍으로 때리니 장룡이 안사기에게 호소하자 안사기가 金興慶에게 고했다. 김흥경이 왕에게 아뢰어 巡衛府로 하여금 장해를 체포하고 아울러 契券을 취하도록 했는데, 장해가 이를 알고 契券을 휴대해 도망하니 그 處女를 묶어 巡衛府에 가두었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비사벌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신문사소개고충처리제도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인터넷신문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만길 18  |  대표전화 : 055)532-0505  |  팩스: 055)532-0473
사업자등록번호 : 608-81-87983  |  등록번호 : 경남 아02351  |  등록일자 : 2015. 7. 2 (최초발행일자 : 2015. 7. 2)  |  발행일자 : 2017. 7. 24
발행인 : 조지영  |  편집인 : 오종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종식
편집부 : 055)532-0505  |   취재본부 : 055)532-0505  |  광고부 : 055)532-0505  |  이메일 : bsb2718@hanmail.net
Copyright © 2019 비사벌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