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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식 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창녕의 나루(5) 창나루-도흥나루-웃개나루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8.12 17:45

낙동강 물길 512km(천삼백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남지 용산 창나루에서 길곡 우강 창암(蒼巖)나루까지 8km(20리) 물길이다. 이곳은 영남사림 선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1607년 용화산선유(龍華山船遊), 1628년 경양대선유(景釀臺船遊), 1617년 한강정구 선생이 봉산욕행((蓬山浴行)) 등이 기록에 남아있다. 특히 웃개나루옆의 경양대는 고려말부터 시인묵객들이 즐겨찾는 경승지다.

○ 창나루(倉津, 創津)

용산(알개실) 입구 마을인데 옛지명은 기음강(岐音江)나루, 가야진으로 불리었다. 지금은 창나루, 창나리로도 불린다.

이 나루터에는 창고가 있어 ‘창고가 있는 나루‘ 곧 창날, 한자로 쓰기는 창진(倉津)이라 했다 하며, 다른 하나는 이곳 지형이 강을 향해 창처럼 생겨서 창진(槍津)이라 했다. 둑이 있기 전에 강물이 마을 앞으로 흘렀고 나루터도 마을 산자락에 있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남강의 끝이며 창녕, 함안, 의령 3개 군이 만나는 경계점이다. 낙동강과 남강의 합류지점으로 고지도에 기음강(岐音江)으로 표기되어 있다.

남지읍 용산마을과 강건너 함안군 대산면 장암,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사람들이 오고 가던 물길이었다.

임진왜란 때 남강을 따라 전라도로 진출하려는 왜군을 곽재우 의병장이 육지전투의 첫 전승지인 기강전투로 유명하다. 강 건너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남강 변에는 곽재우 장군의 전승을 기념하는 보덕각(報德閣)과 의병장 손인갑 장군 부자(父子)를 기리는 쌍절각(雙節閣)이 있다. 근처 오천리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과 함께 싸운 식성군 이운용(息城君 李雲龍) 장군의 묘소와 이운룡장군의 위패를 모신 기강서원이 있다. 이운룡장군은 임진왜란 후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냈다. 이렇듯 옛 조상들의 혼이 서린 이 곳에 보름날에 남강에 어리는 월주(月柱)를 보며 옛 조상들의 넋을 기리고 풍류를 읊던 곳이다.

이 나루를 건너면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이다. 지금은 강을 다니던 나룻배는 없어졌고, 나루터와 주막집도 사라졌으며, 1990년대에 제방이 생겼고, 4대강공사로 억새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 도흥나루, 도흥진(道興津)

도흥나루와 용화산

함안군 대산면 부목 리와 남지읍 학계 리를 잇는 나루로 낙동강과 남강의 합수 점과 남지철교 중간쯤에 있다.

옛 함안에서 현풍 가는 소로(小路)로는 함안 부목-도흥진-남지 학계리-큰골-신전고개-황새목-대성 경유-산지-현풍으로 가는 중요 나루터다.

도흥진(道興津)은 ‘길이 흥하는 나루’라는 뜻이 담겨있다.

도흥나루 뒤로 함안 용화산(龍華山)이 펼쳐져 있고, 산수경개가 빼어나 풍수 지리적으로 길지로 알려져 있다.

‘멀리서 보면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며 낙동강으로 머리를 쑥 내민 형국이다. 이 곳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8년 뒤 1607년 조선 명망있는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기며 뱃놀이를 하던 곳이다. 즉 용하산동범이다.

한강정구선생이 1617년에 부산 동래온천 요양 갔던 기록인 봉산욕행록에 영산현 온정리(靈山縣溫井里)에 사는 이후경(李厚慶), 이도자(李道孜) 두 선비가 합류한다. “7월 23일 도흥에서 이후경․이도자 등이 합류함으로써 비로소 직일진(일을 추진하고 주선하는 사람들)이 꾸려질 수 있었다. 직일체계가 7월 24일에 가서야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영산현 도사면에서 창녕군 남지읍으로

현제의 남지읍은 조선시대에는 영산현 도사면이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통폐합으로 영산현이 없어질 때 창녕군 남곡면에 합해지며 옛 도사면 웃개(현 남지리) 면사무소가 옮겨진다. 1936년 남곡면이 남지면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남지가 탄생한 것이다. 꼭 83년 전이다.

창녕과 영산이 1,079년(고려 태조 940)된 고대 도시라면 남지는 이제 태동된 젊은 도시라 할 수 있다. 해방 후 1963년 남지면이 남지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른다.

남지는 상습 침수지역이었는데 1960년대 안동댐과 임하댐, 1970년대 합천댐, 진양댐등이 건설되며 풍광이 좋고 하우스 농사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잘사는 곳이되었다.

○ 남지의 뿌리 웃개장과 남지철교

필자가 함안군에 20여년 살면서 함안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부회장께 전해들은 이야기를 할까 한다. 웃개장을 두고 칠원사람들과 남지사람들의 다툼 이야기다.

조선말옆 당시 영산현 도사면(현 남지읍) 사람들은 강건너 칠원현 계내리 경양대옆 웃개장터까지 갈려면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웃개장을 도사면으로 이전시키려 했다. 지키려는 사람들과 가져올려는 사람들의 갈등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해 동문수학했던 영산현감과 칠원현감이 술자리를 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웃개장에 대한 갈등을 듣게 된다. 거나하게 술이 취한 현감들은 즉석에서 제안을 한다. 바로 줄다리기다.

강변에서 줄다리기를 하여 이기는 쪽이 장을 차지하는 내기를 한 것이다. 마침내 죽을 힘을 다한 도사면 사람들이 이기게 된다. 웃개장은 가져온 도사면은 번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지혜롭고 낭만적인 해결어었다.

또 하나는 남지의 랜드 마크인 남지철교 건설(1931~1933)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최첨단공법인 트러스공법으로 지어졌다. 다리를 건설하는데 기술자들과 수많은 인부들이 몰려들었다. 철교건설 후 일부는 떠나고 나머지는 눌러앉아 터를 잡고 살았다. 철교도 길곡면 오호리 멸포나루가 아닌 남지리에 설치되었으니 남지는 교통의 요지가 되게 되었다.

대구~통영간 2등 국도인 신작로와 남지철교의 개통, 영남 수리조합구역의 개간 완료 등으로 벼와 보리 등 곡물의 주요 생산지로 또 교통의 요지로 급부상하게 되니 자연히 인구도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으며 남지리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게 되었다.

○ 남지의 웃개나루

웃개나루는 욱개나루, 우질포(亏叱浦), 우질포진(亏叱浦津), 우포진(雩浦津), 상포진(上浦津), 상포(上浦)등으로 불렸다. 의령군 낙서면 아근리의 웃개나루와 이름은 같지만 위치는 전혀 다르다.

남지 쪽은 남지웃개, 함안 진동 쪽은 진동웃개로 나루터 이름은 같았다.

이 나루는 남해안 통영에서 함안, 창녕, 현풍을 거처 서울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그리고 경상도 중북부의 곡식과 물자를 상류 안동, 하류 부산 까지 중계되는 나루였다.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 바다와 내륙의 많은 농산물과 해산물등이 이동하는 중계무역이 발달한 것이다.

따라서 나루터는 상품 중개 역할을 하는 객주가 있고, 객주와 함께 보부상, 배와 뱃사공, 말과 행인들을 위한 마방(馬房)과 여각(旅閣), 객주집, 주막이 들어섰다.

나루터를 중심으로 조선 중기부터 웃개장(2일, 7일)이 개장되어 번성했다. 경상도 일대의 중심 나루여서 한창 번성했을 때는 200여 척의 돛단배(帆船)가 강을 가득 메우고 왕래하였다 한다.

남해안 바닷가 염전에서 소금 실은 배가 왔다. 작은 배는 200~300가마, 큰 배는 500~600가마를 싣고 부산에서 남지까지 160리 물길을 거슬러 올랐다. 바람 부는 날은 2~3일, 바람이 없는 날은 3~4일 걸렸다. 바람이 없는 날엔 배에 밧줄을 걸어 선원들이 강변에서 끌었기 때문에 하루정도 지체되었다.”

조선시대부터 해방 이후까지 웃개장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낙동강 물길이 좋은 나루였기 때문이다. 즉 경상우도와 좌도를 넘나드는 길손들이 북적이던 길목이었던 것이다.

강 건너 옛 칠원현은 선비들이 노닐 던 경양대, 주세붕선생의 묘역과 손자 주익창이 살던 옛터, 천하절색 노아의 묘, 홍포서원유허비, 능가사, 우질포장터, 반구정유허비등 곳곳에 옛님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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