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꿈에 본 내고향대지면 모산리 600년 된 느티나무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8.12 17:28

모산리는 대지면의 중심지로써 소재지 마을이다. 마을 뒷산이 부리산(浮鯉山)으로 불리는데 이는 산모양이 잉어형국이라 하는데서 나왔다. 산위에 붕어바우(浮鯉岩)가 있어 부리뫼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산의 바위보다 보리바우라 불리는 바위가 마을 서편, 지금의 대지초등학교 쪽에 바위들의 생김새가 자그마하면서도 수십 개가 밀집되어 있어 꼭 보리알과 같이 통실 통실하여 보리방우라 부른다 한다.

빗집걸은 모산 마을 입구의 거리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서편에 비각집이 있는 거리이다.

이곳 비석은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 신도비(神道碑)로 비문은 현감 이파(李坡)가 썼다. 비문 내용에는 그의 아들 성송국의 효성과 부시천리(負屍千里)가 적혀 있다.

고려 말 성씨의 시조가 된 성인보가 증윤호장으로 송경(松京 : 개성)에 갔다가 거기서 병을 얻어 사망했다. 그때 문하시중이었던 그의 아들 성송국이 효성이 지극하여, "내가 아버지 시체를 지고 고향까지 모시어 안장함이 자식의 도리를 하하는 것이라."하고 나무로 질 것을 만들어 등에 지고서 개성에서 창녕으로 왔다 한다.

천리 길을 나선지 여러 날 만에 지금의 대지면 초입인 시추말리(西靑)에 있었던 청산원에 당도하니 해가 저물었다. 처마 밑에 시체를 안치하고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밤새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게 웬일인가? 시체가 없어졌는데 호랑이가 물러 간 모양으로도 발자국이 있었다. 눈 위에 발자국을 따라가 보니 지금의 맥산으로 시체가 있는 자리가 과연 명당이라 호랑이(산신령)가 아들의 효성에 감복하여 명지를 지목하여 주었던 것이다. 성송국은 하늘이 주신 아버지의 유택(幽宅)이라 믿고 묘를 썼다 전한다. 지금의 창녕조씨 시조묘이다.

대지면 모산리 600년 느티나무 노거수는 성씨종중 전각 내에 위치하며 수형이 좋고 빼어나다. 수세가 왕성하여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다. 지정번호 12-12-4 지정일자 1982년 11월 10일이며 수령 600년 흉고둘레 7.5m 수고 20m 수관폭 30m 정자목으로 성씨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비사벌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신문사소개고충처리제도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인터넷신문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만길 18  |  대표전화 : 055)532-0505  |  팩스: 055)532-0473
사업자등록번호 : 608-81-87983  |  등록번호 : 경남 아02351  |  등록일자 : 2015. 7. 2 (최초발행일자 : 2015. 7. 2)  |  발행일자 : 2017. 7. 24
발행인 : 조지영  |  편집인 : 오종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종식
편집부 : 055)532-0505  |   취재본부 : 055)532-0505  |  광고부 : 055)532-0505  |  이메일 : bsb2718@hanmail.net
Copyright © 2019 비사벌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