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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의 삶과 역사정 위상(#12편)고려대학교 김창현교수 著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8.12 17:19

신돈전은 왕이 편조를 사부라 칭하며 국정을 咨訪해 편조의 말을 따르지 않음이 없자 사람들이 많이 그에게 붙고, 士大夫의 妻가 그를 神僧이라 여겨 聽法求福하러 이르면 편조가 갑자기 私했다고 기술했는데, 이 또한 그대로 믿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기록대로 신돈이 아무리 정력제를 먹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늙은 나이에 수많은 여성을 탐하는 것이 가능할까.

최영이 폄출된 직후 B-7에 보이듯이 이귀수 등이 유배되고 정치 운영에 변화가 생긴다. 공민왕 14년 5월 경진일에 편조의 ‘참소’에 의해 찬성사 李龜壽, 평리 梁伯益, 판밀직 朴椿, 芮城君石文成, 晉原府院君金壽萬이 유배되었다. 그리고 柳濯과 李仁任이 都堂에서 庶政을, 金蘭과 任君輔와 睦仁吉이 宮中에서 庶務를 관장하는 정치운영 형태가 생겨났는데 명령 즉 왕명에 의한 것이었다. 庶政은 도평의사사가, 庶務는 내재추가 담당하게 된 것이니 재상권이 둘로 나뉨으로써 왕권이 강화될 수 있었고 업무의 분배로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었다. 이 조치에서 慶千興은 政事에 與聞하지 못하게 했다.99) 6월에 李公遂, 慶千興, 李壽山, 宋卿, 元松壽, 王重貴, 韓公義가 파직된 반면, 金普로 守都僉議侍中을, 李仁復으로 판삼사사를, 李仁任으로 첨의찬성사를, 權適과 睦仁吉로 첨의평리를, 朴元鏡으로 密直副使를, 洪永通으로 감찰대부를 삼았다. 재상이 편조 즉 신돈과 친밀한 인물 위주로 재편된 것이었다.

7월에 遍照가 그 黨上護軍李得林과 巡軍經歷吳季南을 나누어 파견해 崔瑩, 李龜壽, 梁伯益, 石文成, 朴椿등을 국문했는데, 內臣 金壽萬과 交結해 上下를 離間하고 賢良을 斥去해 크게 不忠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엮으니 최영 등이 모두 誣服했다. 이에 최영 이귀수 양백익 석문성 朴椿의 3품 이상 爵을 삭제하고 김수만을 除名하고 그들 모두의 家(田民)를 적몰했다.

공민왕 14년 7월 계미 일에 왕이 편조를 眞平侯에 책봉했고, 14년 12월 정축일에 신돈을 守正履順論道燮理保世功臣, 壁上三韓三重大匡, 領都僉議使司事, 判監察司事, 鷲城府院君, 提調Z僧錄司事, 兼判書雲觀事로 삼았는데 신돈은 곧 遍照였다. 신돈은 왕을 대리했기 때문에 ‘權王’이라 불렸고 원에도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고려 역사에서 이처럼 여러 분야의 직책을 가진 자는 신돈밖에 없었다. 守正履順論道燮理保世공신호는 신돈에게 막강한 권위를 부여했다. 領都僉議使司事는 최고관직 中書令의 후신으로 명예직의 성격이 강했지만 신돈은 왕권을 대행함으로써 實權을 행사했고, 백관을 규찰하는 監察司의 판사를 맡아 백관을 장악했고, 僧政기구인 僧錄司의 提調를 맡아 불교계를 관장했고, 書雲觀의 판사를 맡아 음양과 천문지리를 관장했다. 신돈이 왕의 사부에다가 提調~僧錄司事를 띰에 따라 王師로 僧政을 관장해 오던 보우와의 갈등이 깊어진다. 鷲城府院君은 신돈의 親鄕이 영산 즉 鷲城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관작이었는데 이전에 辛裔가 띤 적이 있었다. 공민왕은 노국공주 影殿건립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권력을 신돈에게 위임했지만 주요 정책과 인사에서 최종 결정권을 쥐면서 내재추의 운영에 보이듯이 배후에서 왕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신돈에 의해 축출된 관료들의 핵심은 여러 개의 공신을 띠거나 덕흥군 홍건적 격퇴를 주도한 공신인 고위재상이었는데 대개 무장이었다. 고위재상 2/3, 하위재상 1/2 정도가 교체되었으니 재상들을 물갈이하려는 왕의 의도가 실현된 것이었다. 축출된 관료들의 대부분은 경천흥, 최영, 이귀수, 양백익 등 군부의 핵심 지도자를 포함한 무장들이었으니 무장 세력이 약화되었다. 문벌(세족)과 외척도 다수 숙청되었다. 공민왕이 싫어한 세 부류 중에 특히 ‘世臣大族’이 주요 숙청 대상이었다. 신돈이 威福을 恣行해 恩讎를 반드시 갚아 世家大族을 거의 다 誅殺했다고 하는신돈전의 언급도 그것을 시사한다.

신돈이 注擬를 담당하면서 賢良을 등용한다고 자칭했지만 발탁해 제수한 자는 모두 그와 친선한 관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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