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배미령

햇살이 눈부시도록 뜨거운 어느 여름날, 한 소녀가 어머니 손을 잡고 가파른 길을 숨을 헐떡이며 올라갑니다.

길 옆 계곡에서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게 느껴집니다.

길 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 나비가 날아들고 향기를 사방으로 전해 줍니다. 어머니는 소녀와 함께 남편의 병을 낫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러 관룡사로 가는 길입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온 뒤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병원에서도 뚜렷한 병명을 찾을 수 없어 가족들은 망연자실하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이 모습을 보고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를 지나던 행인 한 사람이 관룡사 약사전을 소개하며 100일 기도를 드려 보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길로 무남독녀인 소녀를 데리고 관룡사를 찾았습니다.

한 참을 걷다 보니 눈앞에 무섭게 생긴 석장승이 양쪽으로 서서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소녀는 겁에 질려 슬그머니 어머니 손을 꼭 잡았습니다. 석장승을 통과하여 관룡사에 도착한 어머니는 대웅전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며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는 곧장 약사전으로 발길을 옮겨 약사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을 향하여 108배를 올립니다. 소녀도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 약사전은 임진왜란 때도 불에 타지 않고 남아 화재를 면하였다 전해지고 있습니다. 두 모녀의 기도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었답니다. 이렇게 50일이 지나던 어느 날, 또 다른 어머니의 손을 잡고 관룡사를 찾아 온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아주 먼 곳 수원에서 왔습니다. 어쩌면 이런 인연이 있을까요. 소년의 아버지도 별 사고도 없이 어느 날부터 다리를 조금씩 절뚝이더니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였다 합니다.

이 기막힌 사실을 두고 어머니는 백방으로 좋다는 약을 다 써 보았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아들의 손을 잡고 관룡사를 찾아 왔습니다. 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관룡사 대웅전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절을 한 다음 약사전으로 자리를 옮겨 기도를 올립니다. 소녀와 소년은 비슷한 또래였기에 기도가 끝나면 드높은 구룡산을 바라보며 즐겁게 뛰어 놀았습니다.

100일 기도를 마친 소녀와 어머니는 관룡사를 내려 왔습니다.

기도의 효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차츰씩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조금씩 걷기 시작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기뻐하며 모든 것이 약사여래불께서 기도를 들어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소녀의 아버지가 걸음을 걷기 시작한지 열흘 쯤 지나자 소녀와 어머니는 아버지를 모시고 관룡사를 찾았습니다. 그 날이 바로 수원에서 온 소년과 어머니가 기도를 올린지 100일 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두 가족은 다시 만나 기뻤습니다. 소년은 소녀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수원에 계시는 아버지도 하루 빨리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두 가족은 관룡사에서 마지막 기도를 끝으로 헤어 졌습니다. 이듬 해 봄이 왔습니다. 두

가족은 부처님 오신 날에 관룡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치 친지를 만난 것처럼 서로를 부둥켜안고 반가워했습니다. 그 날은 소년의 아버지도 함께 하였습니다. 소년의 집에서도 기적처럼 아버지의 병이 나았던 모양입니다. 그 후 두 가족은 인연을 맺고 서로 왕래하며 오래 동안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지요. 수원에서 창녕으로 놀러온 소년의 가족들은 여름이면 옥천 계곡의 맑은 물에 몸을 담그고 더운 여름 더위를 식혔습니다. 그리고 관룡사에 들려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또 한 관룡사 경내에서 600m 쯤 올라가면 마치 용이 배를 이끄는 모양을 한 용선 대(龍船 臺)에 올라 석가여래좌상을 만났습니다. 용선대의 석가여래좌상은 광배가 없으며 항마촉지인을 한 풍만한 얼굴에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아마도 통일신라시대 하대, 9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용선 대에 올라선 부모님들은 훗날 저승 갈 때도 이처럼 반야용선에 함께 타고 가자는 약속을 합니다. 용선대 아래에는 구름이 내려와 마치 용선대가 관룡산을 가로질러 하늘 위에 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관룡사를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 세상일에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세월은 물 흐르듯 흐르고 흘러 소녀와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은 명문 대학을 졸업 했습니다. 그런데 소년 두언이가 소녀 미랑 이를 몹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랑 이는 두언이의 사랑을 받아 줄 수 없었습니다. 미랑 이의 사랑은 나이가 들면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두언이는 미랑 이를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두언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미랑에게 고백의 편지를 보냅니다. 미랑 이는 두언의 진실 앞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고자 하는 길이 분명한 미랑이 였기에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둘은 관룡사 아래 옥천 계곡물이 흐르는 너럭바위에서 바람을 마주하고 섰습니다. 숲 속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마저 처량한 시간입니다. 미랑 이는 두 손을 모아 배배꼬며 겨우 입을 열기 시작 합니다. “두언이 오빠 미랑 이는 일주일이 지나면 000수녀원으로 들어갑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언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 합니다. 그리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미랑아 제발 그만 둘 수 없겠니?”라며 무릎은 꿇습니다. 하지만 미랑은 다부지게 입을 다문 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듭니다. 그 날의 만남을 끝으로 둘은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관룡사 가는 길에 서 있던 나무들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숲을 이루고 많은 꽃을 피우며 새들과 나비, 벌들이 날아와 길을 안내합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스님 한 분이 타박타박 관룡사로 올라 갑니다. 한 참 뒤 그 뒤를 따라 왜소한 한 수녀님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먼저 관룡사에 도착한 스님은 대웅전을 찾은 뒤 약사전이 있는 언덕에 섰습니다. 화왕산 연지 못에 살던 아홉 마리 용이 이 곳을 지나 승천 하였다 하여 붙여진, 구룡산의 기암절벽을 바라보며 회심에 찬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 관룡사 마당에 발을 딛는 한 수녀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님은 깜짝 놀라 몸을 떨었습니다. 분명 그 옛날 미랑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수녀님을 향하여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수녀님은 관룡사 주지 스님을 만나 한 참 이야기를 나눈 후 약사전 앞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분명 미랑 이었습니다. 약사전 앞에 서 있던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그만 “미랑아”하고 불렀습니다. 수녀님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봅니다. 분명 두언이 오빠였습니다. 스님과 수녀님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 빙그레 미소를 짓습니다. 소년 두언은 미랑 이와 헤어지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습니다. 둘은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영’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두언 스님은 유명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스님의 글 속에는 숨김없이 내 사랑 미랑 수녀님이라 적고 있습니다. 이루질 수 없는 이 아름다운 사랑의 인연은 관룡사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무더위가 한 층 기성을 부립니다. 관룡사 가는 길,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는 곳으로 오셔서 더위를 시켜 보시지 않으실래요. 그리고 관룡사에 들려 예쁜 인연도 만들고 소원도 빌어 보아요.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관룡사길 172(지번 옥천리292)에 자리 잡고 있는 관룡사는 현재까지도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해발 739m의 관룡산 서남에 위치하고 있는 관룡사는 산내에 전하는 석조불상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 되지만 창건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이후 조선 태종 원년(1401)에 대웅전 건립.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9년(1617)에 다시 짓고 그 후 영조 25년(1749)에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름. 관룡사 내에는 관룡사 대웅전(보물212호), 관룡사약사전 3층 석탑(유형문화재 제11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 관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호), 약사전(보물 제146호), 부도 등의 많은 불교 유적들이 있다⩾(창녕군 관광안내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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