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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의 삶과 역사적 위상(10편)고려대학교 김창현 교수 著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7.08 18:35

Ⅴ. 신돈의 집권과 행적

편조(신돈)가 공민왕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왕은 자신을 대신해 정계를 청소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공민왕은 재위한 지 오래 되면서 宰相이 많이 뜻에 맞지 않아, 일찍이 여기기를, 世臣大族은 親黨이 根連해서로 掩蔽하고, 草野新進은 矯情飾行하여 名(名望)을 낚지만(취하지만)貴顯함에 이르면 門地單寒함을 부끄러워해 大族과 連姻해 그 初를 다 버리고, 儒生은 柔懦하여 굳셈이 적고 또한 門生座主同年을 칭하며 黨比해 徇情하니, 三者는 모두 등용하기 不足하다며, 離世獨立의 사람을 얻어 大用해 因循의 弊를 혁파하기를 생각한 지 오래었다. 世臣大族은 世族을, 草野新進은 寒門(寒士)을 의미해 가문의 위상에서 서로 대비되는 존재였다. 儒生은 좁은 의미로는 유교를 배운 학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넓은 의미로 쓰여 유교를 배운 儒者(대개 급제자)를 의미하는데 世臣大族일 수도, 草野新進일 수도 있었다.92) 공민왕은 이 세 부류를 모두 등용하기 부족하다고 했으니 거의 모든 관료를 불신하고 있었다.

왕은 편조를 만나보자 得道寡欲하고 또한 賤微한 출신이라서 親比가 없어大事를 맡기면 반드시 徑行해 顧藉하는 바가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에 髡緇에서 발탁해 國政을 주어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왕이 편조에게 屈行해 世事를 구제하기를 요청하니 편조가 國王과 大臣이 讒間을 많이 믿는다고 들었다며 이처럼 하지 말기를 요청했다. 이에 왕이 盟辭를 손으로 적기를 “師가 나를 구하고 내가 師를 구하리라” 라며 佛天에 맹세하니 편조가 國政에 與議했다.

편조(신돈)가 공민왕 14년에 정계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최영이 실각하는데, 그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중요하므로 고려사 세가와 고려사절요에서 해당 기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B-1. 공민왕 14년 2월: 노국공주가 難産으로 인해 위독해 세상을 떴다.(고려사 권41 및 고려사절요 권28)

B-2. 공민왕 14년 3월: 왜가 喬桐과 江華를 침략하자 東西江都指揮使찬성사 崔瑩에게 명령해 병력을 거느리고 東江에 出鎭하게 했다. 왜가 昌陵을 침입해 世祖眞을 취하여 돌아가니 金續命으로 東西江都指揮使를 삼았다.(고려사 권41 및 고려사절요 권28)

B-3. 공민왕 14년 5월:‘妖僧’ 遍照로 師傅를 삼아 國政을 咨訪했다. 을축일(8일)에 지진이 발생했다.(고려사 권41, 세가)

B-4. 공민왕 14년 5월:을축일(8일)에 지진이 발생했다. 慶千興(慶復興)과 崔瑩이 私兵으로써 東郊에서 大獵했다.(고려사절요권28)

B-5. 공민왕 14년 5월: 경오일(13일)에 金普와 李春富로 都僉議贊成事를,任君輔金蘭朴曦로 密直副使를 삼고, 李仁復으로 興安府院君, 趙希古로 東川君, 洪師範으로 南陽君, 崔孟孫으로 鐵原君을 삼고, 찬성사 최영을 雞林尹으로 폄출했다.(고려사권41, 세가)

B-6. 공민왕 14년 5월: 갑술일(17일)에 久旱으로 인해 刑人推整都監을 설치해 寃抑을 按雪했다.(고려사권41, 세가)

B-7. 공민왕 14년 5월:庚辰日(23일)에 찬성사 李龜壽를 會原에, 評理梁伯益을 春州에, 判密直司事朴椿을 光陽에, 芮城君石文成을 長岩에, 宦者晉原府院君金壽萬을 利川에, 府院君李寧을 沃州에 유배하고 모두 그 家를 적몰했고, 柳濯과 李仁任에게 명해 都堂에서 庶政을 관장하고, 金蘭과 任君輔와 睦仁吉에게 명해 宮中에서 庶務를 관장하도록 했다.(고려사 권41, 세가)

B-8. 공민왕 14년 6월: 경인일(3일)에 李公遂로 益山府院君을, 慶千興으로 淸原府院君을, 李壽山으로 壽春府院君을, 宋卿으로 延安府院君을, 韓公義로 淸城君을, 朴曦로 春城君을 삼았다. 金普로 守都僉議侍中을, 李仁復으로 判三司事를, 李仁任으로 僉議贊成事를, 權適과 睦仁吉로 僉議評理를, 朴元鏡으로 密直副使를, 洪永通으로 監察大夫를, 崔元祐로 監察執義를, 金龜壽와 柳源으로 監察持平을 삼았다.(고려사 권41, 세가)

왜가 공민왕 14년 3월에 창릉을 침입해 世祖(龍建) 眞을 약탈해 간데 대해 東西江都指揮使최영에게 책임을 물어 그 동서강도지휘사를 해임해 김속명으로 교체했다. 5월에 遍照로 師傅를 삼아 國政을 咨訪하게 했고, 을축일(8일)에 지진이 발생했고, 慶千興(慶復興)과 崔瑩이 私兵으로써 東郊에서 대대적으로 사냥했다. 5월 경오일(13일)에 金普와 李春富로 도첨의찬성사를,任君輔金蘭朴曦로 密直副使를 삼은 반면 李仁復으로 興安府院君, 趙希古로 東川君, 洪師範으로 南陽君, 崔孟孫으로 鐵原君을 삼고 찬성사 최영을 雞林尹으로 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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