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배미령

글, 사진 배미령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줄기 따라 억겁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오솔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가 되어 줍니다. 바로 창녕군 남지읍 수변공원 억새 전망대가 있는, 남지읍 용산리 160-2(억새전망대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남지개비리길입니다. 이 아름다운 길은 영아지라는 마을에서 남지읍 용산으로 통하는 강가의 절벽 오솔길입니다. 이 길이

나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재미있는 전설이 있답니다. 그 하나는 옛날 영아지 마을의 어느 집에서 키우던 개가, 남지 용산마을로 팔러 갔는데, 그 때 헤어지게 된 자신의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주인공은 이 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래서 오솔길이 나게 되었다지요.

또 다른 유래는 ‘개’는 강가, ‘비리’는 벼랑을 뜻해 ‘개 비리’ 강가의 벼랑을 따라 조성된 길이라 하여 개비리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훗날 이 길을 사람들이 발견하고 조금 넓혀서 쓴 것이 개비리길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낙동강 푸른 물결 따라 원시적인 자연과 녹음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이 개비리길 입구, 억새 전망대에 올라서면 햇볕을 온 몸으로 받은 낙동강물의 아름다운 윤슬이 방문객들과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 합니다.

창녕은 낙동강이 60km를 휘감아 도는 매우 긴 강을 끼고 있습니다.

옛날 선사시대 때부터 낙동강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여 문명을 꽃피우며, 역사의 여명기를 열어왔던 역사 깊은 곳이기도 하답니다.

또한 낙동강은 서쪽과 남쪽을 흐르면서 지금의 합천과 의령, 함안 등과 경계를 이루고, 이방면과 남지읍에서 황강과 남강이 각각 합류하지요. 그 밖의 작은 하천들도, 낙동강으로 흘러 들면서 낙동강의 배후와 소지류의 계곡을 따라 넓은 배후 습지가 형성되어, 늪과 못이 발달 하였습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안고 개비리길을 걷다 보면 작은 웅덩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봄이 오면 이 작은 웅덩이에서 봄을 알리는 반가운 전령사 도롱뇽을 만날 수 있답니다. 웅덩이 주변에서 자라는 온갖 나무들은 나뭇잎을 떨어뜨려 추운 겨울 동안 이불을 만들어 주고, 도롱뇽이 낳은 알을 따듯하게 품어 줍니다. 이 또한 개비리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 주고 있어요.

풀꽃향기에 취할 때쯤 “마분산가는길”아라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는 이곳에는 또 하나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임진왜란 때 적의 공격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망우당(忘憂堂) 곽재우 장군은 말의 꼬리에 벌통을 매달아 “개 비리” 뒤 진지에서 적진을 향해 달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말의 꼬리에 달린 벌통에서 수많은 벌 떼들이 쏟아져 나와, 적들을 크게 교란시켜 의병들이 적을 물리쳤다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말이 죽게 되어 장군은 말을 거두어 이곳에서 장사를 지내게 했답니다.

그것이 오늘날 말 무덤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남지 개비리길을 어느 날 세상과 인연을 끊고 싶었던 한 여인이 걷고 있었습니다.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와 상처 난 마음에 현을 켜고 낙동강 물결은 벼랑길에 부딪칠 때마다 아름다운 건반을 두드립니다. 그녀는 세상의 혼란스러움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었습니다. 언뜻 보아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연약한 여인의 가슴에서 평소에 늘 버릇처럼 내뱉던 한숨대신 아! 하는 감탄사가 쏟아져 나옵니다. 산소가 쏟아져 내리는 벼랑길을 한참 걷다 보니 어디선가 전해오는 향긋한 향기가 온 몸을 칭칭 감습니다.

가녀린 그녀는 향기에 취해 그 정체를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그 때 그녀와 마주하게 된 하얀

바람개비 모양을한 마삭줄넝쿨 꽃이 사방으로 피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나와 이렇게 닮았을까? 이는 분명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야’~ 그녀는 행복해지기 시작 했습니다. 마음에 바람이 일면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던 자신처럼 마삭줄넝쿨 꽃은 세상에 하얀 모습을 드러내며 진한 향기까지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도 지금부터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이렇게 아름다운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저 쪽 끝에는 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 남자가 자기 머리보다 큰 카메라를 들고 마삭줄넝쿨 꽃을 카메라에 담느라 그녀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녀도 그를 스쳐 걷던 길을 곧장 걸어 대나무 숲으로 들어섰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오래도록 닿지 않은 대나무 숲에 들어서니 자연이 스스로의 질서를 회복해 천연 원시림을 방불케 합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좁은 길은 그녀에게 초연해지는 시간과 공간 속에, 현대의 각박한 억누름에서 완전한 해방감을 만끽하게 했습니다.

지천으로는 야생화가 겨울을 나고, 봄기운으로 기지개를 펼치는 느낌을 온 몸으로 받으며, 낭떠러지 오솔길을 타박타박 걷는 고즈넉한 오후입니다. 태고의 신비한 길에는 퇴적암으로 이룬 큰 바위들도 만나고, 움푹 팬 공룡 발자국도 만납니다. 강기슭 따라 걷는 오솔길에는 해님도 강물로 놀러 나와 그녀와 동무되어 쫄랑쫄랑 따라 옵니다.

강물은 세월을 굽이굽이 부딪쳐 흐르면서, 개비리길 손님들이 토해내는 아픈 사연, 슬픈 사연, 기쁜 사연들을 마다 않고 묵묵히 들어 주면서 자기처럼만 살다 가라합니다.

억겁을 넘는 세월 동안 물살에 부딪치며 일궈낸 퇴적암의 형태는 자연이 조각가가 되고 노천이 전시관이 되어 있습니다.

수 천 가지의 풀들과 나무들과 동물들은 관람객이 되어 줍니다.

파란 하늘아래 스스로 아름다운 남지개비리길은 군데군데 있는 벼랑 바위에 부엉이, 말똥가리가 터를 잡아 살고, 석위 돌단풍과 마삭줄넝쿨과 백화등 꽃의 향기는 천연 향수가 되어 줍니다.

그녀는 개비리길을 걸으며 새로운 삶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남지 개비리길은 그녀에게 위안이었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특히 마삭넝쿨 꽃이 피는 봄이 되면 늘 찾게 되는 개비리길에는 취미로 사진을 찍는 한 남자도 그 주변에서 카메라를 들고 자연을 담고 있었습니다. 둘은 이제 익숙한 사이가 되었고, 때론 함께 다정하게 벼랑길을 걸으며 세상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느 해 마삭줄기넝쿨 꽃이 만발하던 날 둘은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든 남자는 마삭줄넝쿨 꽃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아내를 얻어 남지에서 둥지를 틀고 특수 작물인 싱글 고추 농사를 지으며 싱글벙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아름다운 창녕 남지 개비리길 그리운 당신 함께한다면 문화의 향기 가슴에 가득 담고 꿈속에서도 걷고 싶은 길입니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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