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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의 삶과 역사적 위상(9편)고려대학교 김창현 교수 著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6.10 17:22

신돈이 공민왕에게 비로소 총애가 있을 때 이제현이 왕에게 아뢰기를, 신돈은 骨法이 옛적의 凶人과 유사하니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했다. 이에 신돈이 이제현을 깊이 銜했지만 이제현이 늙어 해를 가할 수 없자 왕에게 말하기를, 儒者는 座主와 門生을 칭하며 서로 干請하는데, 이제현 같은 경우는 門生門下에 門生을 보아 마침내 국가에 가득 찬 도둑이 되었으니 科擧의 폐해가 이와 같다고 했다고 한다. 이제현이 신돈의 骨相이 凶人과 유사하다며 왕에게 가까이 하지 말기를 권유한 것은 士族이자 儒者인 그가 노비 승려 출신의 집권을 원하지 않아서인데, 마르고 야윈 신돈의 모습을 凶人의 모습으로 간주한 듯하다. 그러니까 신돈의 枯槁한 형용은 공민왕에게는 득도한 모습으로, 이제현에게는 흉인의 모습으로 보인 것이었다.

 

선종 고승 普愚(普虛)도 신돈을 싫어했다. 병오년(공민왕 15년) 10월에 王師普愚가 辭位하고 印章을 封還하자 공민왕이 따랐는데 신돈이 用事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앞서 보우가 상서해 신돈을 논하며, 나라가 다스려지면 眞僧이 그 뜻을 얻고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邪僧이 그 때를 만나니 살펴서 신돈을 멀리하기를 요청한 것이 빌미로 작용했다. 보우는 자신을 ‘眞僧’에, 편조(신돈)를 邪僧에 비유하며 신돈 배척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 상서의 시기는 분명하지 않은데 이승경과 정세운이 신돈을 배척하려 한 무렵일 수도 있다.

편조의 形容에 감명을 받은 공민왕은 그를 더욱 존중해 그에게 의복과 음식을 드릴 때 반드시 潔淨하게 하고 심지어 足襪도 반드시 頂戴해 공경하며 드렸다. 李承慶이 이를 보고는 “국가를 어지럽힐 자는 반드시 이 까까머리(髡)이다”라고 했다. 鄭世雲이 그를 妖僧이라 여겨 죽이려 하자 왕이 비밀리에 그를 피신시켰다. 신돈을 배척한 이승경과 정세운은 홍건적 격퇴에 공로를 세운 인물이었고, 특히 정세운은 공민왕의 측근이었다. 이승경은 공민왕 8년 12월 홍건적의 침략에 대응해 수문하시중 李嵒이 서북면도원수로서 제대로 지휘하지 못해 서경이 함락 당하자 이암을 대신해 그 직책을 맡아 고려군을 총지휘했다. 고려군이 9년 2월에 咸從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홍건적을 압록강 너머로 몰아냈다. 그 직후에 都元帥이승경이 질병으로 개경으로 돌아왔고, 3월 무자일 초하루에 慶千興과 安祐와 金得培가 승첩을

보고하고 을미일에 班師했고, 임자일에 이승경, 경천흥, 安祐, 김득배, 이방실이 공신에 책봉되었다. 이승경은 9년 윤5월에 문하시랑평장사로 세상을 떴다. 공민왕 10년에 홍건적이 또 대규모로 고려를 침략하자 왕이 안동까지 피난해야 했는데, 11년 정월에 摠兵官鄭世雲이 諸將을 독려해 진격해 京城즉 개경성을 포위하도록 했다. 諸將이 四面으로 공격해 홍건적 10만을 죽여 개경을 수복하고 남은 홍건적 10만을 압록강 너머로 몰아냈다. 그 직후인 정월 기사일에 安祐와 이방실과 김득배가 총병관 정세운을 죽였는데 金鏞이 矯旨로 密諭했기 때문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승경은 공민왕 9년 윤5월에 질병으로 세상을 떴고, 정세운은 11년 정월에 정변으로 인해 살해당했다. 편조(신돈)는 이승경과 정세운이 죽자 머리를 길러 頭陀가 되어 다시 와서 왕을 알현했다고 한다. 신돈이 승려일 때만이 아니라 환속해 머리 기른 두타로서 공민왕을 만난 것은 소망 내지 야망을 지녔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신돈의 환속은 仕宦집권 의지의 표출로 이미 공민왕과 교감했을 수도 있다.

신돈은 노비로 짐승처럼 취급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승려가 된 후에도 따돌림과 차별을 받으며 생활했고 매골 승으로 여기저기를 떠돌 았다. 승려로서 勸緣활동을 전개하면서 대중의 인기를 얻었지만 다수 士族과 주류 불교계의 시선은 차가웠다. 고려말기 사회는 실용적인 분위기 하에서 신분제가 많이 흔들려 신분 이동이 활발했지만 신분제는 유지되었다. 신돈은 이러한 부조리에 직면하자 이를 개혁하려는 꿈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에 다가가게 되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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