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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선생님의 고사성어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6.10 17:14

동공이곡 (同工異曲)

同 한가지동

工 장인 공

異 다를 이

曲 굽을 곡

재주나 솜씨는 같지만 표현된 내용이나 맛이 다름을 이르는 말

유래: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나오는 말이다. 한유는 당(唐) 헌종(憲宗) 때의 문장가요 정치가로서,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육조 이래의 변문(騈文)을 반대하고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전개해 후일 당송팔대가를 나오게 한 인물이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진사과로 등과하여 30대 중반에는 주로 국자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주력하였다. 이 시기에 한유는 유가(儒家) 사상을 존중하여 도교와 불교를 배척했는데, 이것이 불교를 따르는 황실과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이러한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유가 이렇게 말했다. “설사 세상에 나아가 벼슬자리를 얻지 못한다 해도 관직 임용의 불공평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먼저 자신의 학업이 부족함을 책망하고 한층 노력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러자 학생들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선생님에게 있어서 시가 올바르고 빛나는 것은 장자와 굴원의 이소(離騷)에 미칩니다. ‘태사’에 기록되어 있는 바로는 양웅(揚雄)과 사마상여(司馬相如)는 기량은 같으나 그 정취는 다르다고 했는데, 선생의 글에 있어서는 그 가운데를 덮고, 그 밖을 마음대로 한다고 이를 만합니다(太史所錄 子雲相輿 同工異曲 先生之於文 可謂關其中而肆於外矣).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지금 주위의 신임도 못 받고 친구의 도움도 별로 없어 자칫 죄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가정생활도 어려운데 처세의 도리 운운함이 과연 합당한 일입니까?” 한유는 아래와 같이 대답하였다. “공자나 맹자와 같은 대성현도 불우했는데, 나 정도야 박사라는 한가한 벼슬에 붙어 있는 것만도 과분하다.”

동공이곡이란 이와 같이 학생들이 한유의 문장을 칭찬하기 위해 사용한 말로, 같은 방법으로 시문을 지어도 그 정취는 다르다는 뜻이었다. 오늘날에는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같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동호지필(董狐之筆)

董 : 바로잡을 동

狐 : 여우 호

之 : 갈 지

筆 : 붓 필

기록을 담당한 자가 주위 사람들이나 권력을 의식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바르게 써서 남기는 것을 말함.

유래: 춘추 시대 진(晉)나라 임금 영공(靈公)은 포악하고 무도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정경(正卿) 조순(趙盾)은 임금의 그런 행태가 몹시 걱정되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좋은 말로 충고하고 바른 정사를 펴도록 호소했는데, 그것이 도리어 왕의 미움을 사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건방진 늙은이 같으니! 과인이 내려준 봉록으로 호의호식하며 잘사는 주제에 감히 과인한테 싫은 소리를 해? 어디 그 가녀린 목에서 메마른 소리가 얼마나 더 나오는지 보자.”

이렇게 앙심을 품은 영공은 조순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냈다. 그러나 자객은 가까이에서 조순을 본 순간 그 고아한 풍모와 따뜻한 인품에 감명을 받아 감히 어쩌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래도 조순에 대한 미움을 털어버리지 못한 영공은 도부수를 매복시킨 술자리에 조순을 불러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곳으로 향하던 조순은 호위병 하나가 함정을 알아차리고 귀띔하는 바람에 그 길로 모든 것을 팽개치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 사실을 안 영공은 대로하여 추격대를 풀어 놓았지만, 조순의 덕망이 워낙 높은 터여서 오히려 군병들의 음성적인 묵인과 보호 아래 국경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악행도 끝이 있는 법이다. 불의 무도한 영공은 조천(趙穿)이라는 의기 있는 사나이의 손에 시해되고 말았다. 국경을 막 넘으려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순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급히 도성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공식 기록에다 이렇게 적었다.

‘조순, 군주를 죽게 하다.’

조순으로서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새파래져서 동호에게 자기의 무고함을 주장했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것은 얼토당토 않는 소리라고 동호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동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렇게 반박했다.

“물론 상공께서는 임금을 직접 시해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국내에 있었고, 조정에 돌아와서는 범인을 처벌하려고 하지도 않았잖습니까? 국가 대임을 맡은 대신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직무를 하지 않았으니, 그것이 직접 시해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 날카로운 지적에 조순도 할 말이 없었다. 나중에 공자(孔子)는 이 사건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법도대로 ‘올바르게 기록한 동호’는 훌륭한 사관이다. 법을 바로잡는 일의 중요성을 알고 오명을 그냥 뒤집어 쓴 조순 역시 훌륭한 대신이다. 다만, 국경을 넘었더라면 책임을 면할 수 있었을 텐데,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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