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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본 내고향을 찾아서...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5.27 12:53

창녕군 고암면 원촌1구 49세대에 92명, 원촌2구 107세대 174명에 살고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원촌1구에 있는 노거수(老巨樹)는 마을주민 정자 목으로 원동서당과 정자가 함께 있어 운치가 좋다.

이 노거수는 은행나무이며 수령은 500년이고 흉고 둘레 5.6m, 수고 20m, 수관폭 20m 1982년 11월 10일 지정번호 12-12-3 부여 받았다.

이 마을에 정씨가족 일가가 은행나무 밑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불의의 화재로 씨족일가가 불에 타 죽고 그 뿌리에서 새순이 돋아 현재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원촌리(元村里)

원촌리는 고암면의 서부로 북쪽은 대합면의 장기리와 모전리 서쪽으로는 대지면 왕산리가 있으며 억만리의 북쪽으로 토평천을 경계로 남쪽은 억만리와 붙어있다. 원촌은 물슬천 곧 토평천의 흐름에서 동리이름이 나왔다 하겠다. 元村 은 당초 圓村 이라 했다 시내는 원래부터 높고 낮음에 따라 구불구불 굽이치고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며 흐르는 법이라 돌아가는 곳 둥근 마을이라는 뜻으로 圓村 으로 기사[記寫]된 것이었다. 또한 산도 돌방 하고 고개도 돌방 하므로 이 마을은 돌방 돌방고개 로도 불리었다. 돌방은 도르방, 둥글다는 이곳 토박이 말이다. 1914 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둥글 원 을 으뜸 원 으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 이곳은 본군 출신으로 한말의 대 유학자로 알려진 심재 조긍섭선생이 덕암서당을 열고 후학을 양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또 마을 동편에 원동서당도 있어 글 가르치는 마을이었다. 행정 리로는 원촌 1구와 원촌 2구가 있다.

현재 덕암서당에서 배운 문희갑 전대구시장등 제자들이 2년에 한 번씩 춘향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원촌 1구

원촌리 본동의 행정리 명칭으로 예전에는 돌방 돌방고개라 불리었다 과거 50여호 이었으나 지금은 41호 이다.

돌방

매산마을 북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로 앞산이 둥글다 하여 돌방 돌방고개라 하였다 한다. 돌방은 둥글다는 이곳 토박이 말이다. 돌방은 圓 이므로 원촌으로 기사되었는데 그 후 元村 으로 바뀌었다. 이필재 동쪽에 은행나무 정자가 있는데 둘레가 4~5 아름 된다. 경주이씨와 창녕 조씨들이 오래 살아왔는데 원동서당 덕암서당 외에 동쪽에 백암정(한강정구 강학소 백암 조광이 가르킴) 이필재 (조익의 묘각) 덕남재 (경주이씨 봉선소) 등이 있다.

화줏대걸

원촌 북쪽으로 전에는 길거리였으나 지금은 밭이 되었다 옛날 벼슬한 것을 알리는 화줏대가 섯던 곳이라 한다.

불탕골

원촌의 옛터로 동쪽 골짜기 이다. 정씨들이 처음 터를 잡고 살았는데 불이 나서 폐동 되었다 한다. 불탄 골짜기란 뜻으로 불탄골, 불당곡으로 불린 것이다. 그 후 경주 이씨가 아래쪽에 살게 되면서 동리의 지형이 만월 같다 하여 원촌이라 불렀다고 한다.

원촌 2구

원촌리의 중간에 있는 마을로 매산과 광산 서암등 여러 마을이 있다.

매산

원촌의 남쪽 마을인데 뒷산이 매화 모양이라 매화산이라 불리었고 그 아래 마을이라 매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창녕 조씨의 세거지로 전에는 44호 이었으나 지금은 39호 이다 춘재당(조시 묘각)이 매산마을 동북쪽에 있다.

광대골

매산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뒷산이 광덕산 이다. 아마 놀음을 놀던 광대패의 거주지가 아니었던가 추정된다. 식우골 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소가 물을 먹는 형국이라 한다. 광산으로도 불리며 13호가 산다. 광덕재(밀성박씨 봉선소)가 있다.

방아덤 밑

이 마을 서쪽에 방아 덤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어 이산을 방라덤이라 하는데 이산 아래 마을이므

로 방아덤밑이라 불린다. 서암이라 함은 이곳이 고암면의 서쪽이요. 원촌리의 서쪽이니 서쪽마을이란 뜻과 방아덤 아래 마을의 뜻이 복합된 지명으로 붙여졌다. 방아 덤은 고기를 막는다는 뜻의 방어 덤의 와전으로 곧 방어산 산 끝이 고암면의 끝으로 고암사람들이 잘 살게 된 것은 고기가 못 내려가게 막았기 때문에 부자로 그냥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전에는 15호 이었으나 지금은 10호 뿐이다.

어은동

마구선 국도가 서쪽으로 지나가는데 고암 대지 대합 3개 면의 경계지점에 있는 마을로 행정리 지명이다. 이 마을은 예부터 경산원 (구전되기는 청산원 이라한다) 이 있었던 곳으로 원터는 마을뒷산 대합면과의 경계에 있다. 또 마을 앞에 어은 못이 있는데 여기서 바다에서나 살고 잡히는 청어가 났다는 말이 전해온다. 원의 여각이나 주막에 묵었던 소금장수들이 여기서 자주 죽어 소금장수가 지고 왔던 소금을 마을앞 못에 자꾸 버렸더니 바닷물처럼 짜져서 나중에는 청어가 살게 되었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전해온다. 이 동리가 물고기 형국이고 또 동리앞못에 고기가 숨었다하여 어은동이라 한 것이다. 지금은 39호가 사는데 전에는 44호였다.

간두산

원촌 북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10 미터 이다. 새머리산 이란 뜻이니 이 골짜기 사이의 머리가 된다는 뜻이다.

매화산

매산의 마을 뒷산이다 지형이 매화산이라 한다.

광덕산

광대골의 뒷산이다 높이는 140 미터로 원촌의 서편 산이다. 광대는 넓고 큰 산이라는 뜻이 되나 그렇게 큰 산이나 높은 산이 아니니 옛날 광대놀음을 놀며 떠돌아다녔던 광대들이 머물렀던 곳이었는지 모른다. 광대산의 대가 덕으로 변했으나 그 뜻은 같다 할 것이다.

방라덤

방아 덤이 있는 산이므로 방라덤이라 불리는데 서암의 서편 산이다. 높이는 118 미터로 산꼭대기에 방아와 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이것을 방아덤이라 부른다. 고기를 하류로 못 내려가게 이산이 막고 있다 하여 방어 산으로 쓴다.

대암고개

원촌에서 동쪽으로 대암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개북고개

원촌에서 북쪽으로 간두산에 있는 고개인데 대합면 장기리 개복으로 가는 고개이다 개북은 개복의 와전이다.

돌방고개

돌방은 원촌이며 간두산에 있는 고개로 대합면 장기리 매탄에서 돌방으로 오는 고개이므로 돌방고개라 불린다. 이산이 달처럼 둥글다하여 돌방고개로 불린다. 마을 이름으로도 불렸다.

복상골

간두산과 원촌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땅골

광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광덕산 아래에 있다 골짜기입구에 광대곡지가 있다.

원촌들

원촌마을 남쪽에 잇는 들로 동리 골짜기의 들이다.

매산 강변

매산마을 앞 일대 토평천변의 들을 가리키는데 예전에는 버드나무 숲이 있는 곳으로 이 냇가에서 소싸움 대회도 열리고 창녕에서 줄 당기는 행사가 열리면 옥천서낭이 연화각시 서낭을 맞으러 이곳까지 나오곤 하였다 한다.

편집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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