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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식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江, 그리고 昌寧의 물길-Ⅶ광심정(廣心亭)과 소우정(消憂亭)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5.25 15:20
함안군 칠북면 봉촌 광심정

광심정(廣心亭)과 소우정(消憂亭)

고려 말~조선 초 구미․선산으로 낙향해 후학을 양성하여 영남사림(嶺南士林)의 종조(宗祖)불리는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

선생의 언행(言行)을 모은 「길재 야은선생언행습유(吉再 冶隱先生言行拾遺)」가 부곡면 벽진이씨 이선환씨 집에 소장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

길재 야은선생언행습유에는 1615년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1554-1637)선생의 발문(跋文)이 들어 있다. 옛 영산현 부곡면은 영남사림의 영향이 끼쳤다는 증거인 셈이다. <회연금문록>에 여현학파(旅軒學派)는 355명에 이른다.

○ 옛 영산현 광심정(廣心亭)

광여도 영산현지도

창녕군 길곡면에서 창녕함안보를 건너 좌회전하여 좁은 길을 따라 1km쯤 가면 강언덕 오른편에 정자 하나가 서있다.

조선 선조 2년(1569) 영산현 길곡리 오호리에 살던 용성 송씨(龍城宋氏) 문중에서 가문의 젊은이들 학문수양을 위해 세운 정자(亭子)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성리학자 송지일(宋知逸) 선생이 선비들과 더불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자신의 호를 따라 광심정이라고 편액을 걸었다. 임진왜란(1592) 때 파손되어 여러 번 고쳐지었다. 건물은 정면과 측면이 2칸 팔작지붕이다. 특이하게 앞쪽은 마루이고 뒤쪽은 방을 두었다.

낙동강 절벽위에 축대를 쌓아올려 세워 규모는 작으나 날렵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낙동강 하류 푸른 강물이 아스라이 보이고 넓은 모래 백사장 경관이 뛰어나다. 산과 강 그리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야말로 한국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광심정이 서있는 칠북면 봉촌리는 105년 전만해도 영산현 땅이었다. 18C 고지도 「비변사인방안지도」, 「1872년 지방도」에 보면 강 건너까지 경계가 표시되 있다. 현재 창녕함안보 함안군(옛 칠원현) 칠북면 봉촌리가 오랫동안 영산현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군의 경계는 일제강점기 행정통폐합(1914. 4. 1)때 낙동강 건너는 함안 땅이 되었다. 대표적인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다.

○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

길곡면 오호리 오호서당

조선시대 고을의 경계가 일정한 범위 내가 아니고, 개의 이빨처럼 서로 엇물리어 들어가 다른 고을의 경계를 넘어 따로 떨어져 있는 지역을 말한다. 이러한 지역을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라 한다.

행정구역을 마치 개의 윗니가 아랫니 사이로 쏙 들어가 박히고, 아랫니는 윗니 사이로 들어가서 서로 엇물리게 구획하는 제도이다.

이는 중국이 군현제도를 설정하는 원칙인데 지방관이 반역을 도모했을 때 인접한 다른 고을에서 공격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행정구역 설정 원칙은 조선 태종때 실시되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군현통폐합 당시 정방형 또는 장방현과 같은 현재의 방식으로 바뀌었다.

○ 벽진이씨 소우정(消憂亭)

임해진 소우정

부곡면 임해진 강변 언덕에 있는 소우정은 벽진이씨(碧珍李氏) 문중 정자로 조선중기 학자인 소우헌(消憂軒) 이도일(李道一, 1581~1667)이 만년을 보낸 정자다. 이도일은 덕암(德巖) 이석경(李碩慶, 1543~1628)의 아들로 한강 정구(寒岡 鄭逑)선생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났다.

임해진 나루터가 내려다보는 산기슭에 세워진 정자인데 눈앞 펼쳐지는 낙동강의 유려한 풍광이 신선의 경지다. 대부분의 정자는 강 하류 방향인데 소유정은 강 상류를 바라보며 서 있다.

한 칸 크기의 작은방 용슬헌(容膝軒) 편액이 있다. 容膝(용슬)은 도연명의 歸去來辭(귀거래사)에 나오는 容膝之易安(용슬지이안, 무릎을 드리울 정도의 좁은 방에서도 넉넉히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임)에서 비롯된 말이다.

消憂(소우)는 근심과 걱정을 지우고 없앤다는 의미인데 망우(忘憂)와 일맥상통한다. 필자가 느끼기엔 消憂(소우)는 능동적이고 망우(忘憂)는 수동적 의미가 엿보인다. 편액의 의미는 정자에 살다간 옛 님들의 삶과 철학이 담겨있는게 아닌가 한다.

이도일은 강 상류로 40리 떨어진 合江亭(합강정)에 기거하던 간송 조임도(澗松 趙任道)와 친구로 시문을 주고받았던 사이다.

○ 노촌 이약동의 후손 부곡 벽진이씨

길곡면 하내 경덕서당

창녕군 부곡면 벽진이씨(碧珍李氏)는 조선 성종때 청백리에 오른 노촌(老村) 이약동(李約東, 1416년(태종 16)~1493년(성종 24))의 증손(曾孫) 이엄(李儼)이 약 460년 전에 합천군 삼가(三嘉)에서 영산현(靈山縣) 부곡면(釜谷面) 부곡리(가매실)로 이주하였다. 현재 부곡면 부곡리, 원동, 길곡면 하내리, 아동, 오호리 등지에 살고 있다.

임진왜란 후 창녕과 영산의 인물들이 용화산 선유와 봉상욕행 선유(船遊) 때 두각을 나타내었다.

1607년 한강 정구, 망우당 곽재우, 여현 장현광을 중심으로 용하산 선유에 창녕, 영산 선비(창녕 노극홍, 영산 신초, 신방즙, 이후경, 이도자, 이도유, 이도보, 이해, 신응)등이 참여했다.

10년 후 1617년 한강 정구선생의 봉산욕행때 영산 부곡 벽진이씨들(덕암(德巖) 이석경(李碩慶), 외재(畏齋) 이후경(李厚慶), 소우헌(消憂軒) 이도일(李道一), 복재(復齋) 이도자(李道孜))이 45일간 수행원 역할을 했다.

이도일(李道一)

江嶂南開眼豁然(강장남개안활연) 강가 산봉우리 남으로 트여 시야가 환하게 넓고

風軒俯壓鏡中天(풍헌부압경중천)바람 앞 난간은 맑은 강물 속 하늘을 눌렀구나

蒼屛削立千層石(창병삭립천층석)깎아 세운 푸른 병풍은 천 층의 바위요

練帶橫袤十里淵(연대횡무십리연)가로지른 비단 띠는 십리의 못이로다

靜裏琴書塵不染(정리금서진불염)고요 속 거문고와 서책은 티끌 하나 물들지 않고

邃初日月夢長懸(수초일월몽장현)태고의 세월 속에 꿈만이 길게 매달렸네

無限時憂消遣意(무한시우소견의)한없는 시절 근심을 잊고 지내는 뜻은

隔籬呼取野醪傳(격리호취야료전)울타리 사이로 막걸리 한 사발 부르고자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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