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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본 내고향을 찾아서....연당리(蓮塘里) 노거수(老巨樹)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5.10 10:46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마을, 뛰어놀던 산과 강, 아침저녁으로 다니던 들과 냇가 골짜기 산등성이는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고향은 아무리 멀리 오래 떨어져 살아왔다 하여도 잊을 수도 없고 타의에 의해 잃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번 본지에서 기획한 것은 「마을의 유래와 역사」「성씨들의 세거지」「노거수 중심의 이야기」를 엮어 후대에 전하는 자료집이 되었으면 한다.

창녕군 성산면 연당리는 가구 수가 55세대 인구 93명이 살고 있는 조용한 마을이며 최근 물 맑고 공기가 좋아 귀촌 3가구까지 이사를 왔다.

창녕군 성산면 연당리에 있는 노거수로 마을주민의 정자목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으며 고목으로 마을 및 학교 상징목의 느티나무이다.

이 노거수 수령은 400년이고 흉고 둘레 5.1m 수고 20m 수관폭 15m이며 1995년 8월 25일 12-12-13 지정번호를 부여받은 보호수이다.

이 느티나무의 일화는 약 400년 전(선조시대) 창녕 현감이었던 한강 정구가 심었다고 한다.

한강 정구는 현감으로 있을 때 창녕군내에 8서재를 지어 흥학교민에 힘썼다고 한다.

이 노거수 느티나무가 있는 곳을 한정지라고도 하며 이렇게 붙여진 것은 나무를 심은 현감의 호 첫 자인 한에 정자나무 터를 뜻하는 정자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1950년 이전에는 이곳에서 매년 정월대보름날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농악놀이를 하였다고 전해온다. 이 느티나무는 노거수 상단부가 절단(1/3정도)된 상태이고 수간에 동공(부폐부위)이 있다.

상단부 절단이전 수고는 약30m정돌 기록되어 있다.

연당리(蓮塘里)

연당(蓮塘)은 연꽃이 핀 연못이니 연내 골이라 속칭되는 연당리 일대가 불교와 인연 깊은 곳임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할 것이다.

연당은 부처님이 계신 곳인 연좌, 불좌를 가르킴이니 연화대가 있는 곳은 곧 불교의 성지라 하는 뜻과 같다 하겠다.

이 근처에 있었던 사찰의 이름은 연화사로 연꽃이 있는 곳은 바로 연못이므로 연당이라는 지명이 불리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 지역 넓게 연꽃과 연관을 맺어 앞 봉우리는 연화봉이라 부르고, 산 아래의 들판과 마을은 연평이라 부른다.

연화봉의 봉우리는 연꽃 모양이라 하여 부처님께서 계셨던 곳처럼 산을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당을 조선 초기에는 연화(蓮花)라고 불리었으며, 연화가 그 후 연당으로 바뀌었는데 연당의 본동은 연화사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연화라 불리었는데 지금은 산 아래 평지의 연화와 구분키 위해 이 옛마을을 구연화라 부른다. [창녕군 리 명칭 및 구역 획정에 관한 조례]를 보면 연당1구와 연화리로 지번이 나왔는데 합하여졌다. 행정리는 2개리로 연당, 연화가 있다.

연당(蓮塘)

연당리의 북부에 있는 행정리의 마을 이름으로 마령치 서쪽 아래에 있다.

성곡국민학교가 있는 한정지의 동쪽, 대산천의 가에 있는데 이 일대가 부처님이 계신 곳은 연화이고 그 아래이니 이곳은 대좌(臺座)인 연화대라 하고 연화대는 낮은 골짜기 일대이라고 한다.

따라서 바로 그 연못이란 뜻으로 연당이라 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 마을에 신을 모시는 당집이 많이 있었으며, 무당이 많았던 동네였으므로 당집이 있는 마을이라 연당(蓮堂)이라 한 것이 변한 듯 하다고 한다.

연당 마을 안에 여러 뜸이 있는데 아랫당, 윗당, 뒷당, 굽마 등이 있다.

경주 이씨가 많이 산다. 과거에는 80여 호가 되었으나 지금은 43호이며, 파평 윤씨와 경주 이씨 등이 살고 있다. 영모재(永慕齋 : 경주이씨 봉선소)가 있다.

뒷마(뒷당)

연당 마을 뒤(北)편의 뜸을 뒷마, 뒷당이라 부른다. 뒷당은 뒤 연당의 축약이다.

웃당마

연당 마을 중 위쪽 동편의 뜸으로 마령치를 오르는 등성이 언덕위에 있으므로 웃당마라 부른다. 당집이 있는데 무당들이 많이 살았다 한다.

9호가 산다.

아랫당마

대산천 변 아래 낮은 지대에 있는 뜸이므로 아랫당마라 부른다.

굽마

연당의 남쪽에 있는 뜸이다 이 마을에는 무당이 많아 굿을 많이 하는 동리였으므로 굿마라 하였는데 굿마가 굽마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 물이 잘 빠지지 않고 굼진 굼논이 근처에 있으므로 [굼]이 [굽]으로 와전되어 굼마, 굽마라 불리었다 한다.

그러나 아마 무당이 많아서 날마다 굿만 한다 하여 동리 이름이 되었다 말하면 미신 타파가 안 된 마을이라 할 것이니 별로 듣기 좋은 이름이 아니므로 애써 [굿]을 숨긴 것으로 생각 든다. 지금은 9호뿐이다.

조천들

굽마 앞들인데 예전에 조씨들이 대문중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라 한다.

조천들에 온천이 있었는데 풍병환자가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이 몰려 왔으므로 온천을 그냥 두었다가는 마을이 망하겠다 하여 온천물이 솟아나는 물구멍에 흰색 개를 잡아넣고는 온천물이 없어졌다 . 또한 그 뒤로 조씨 네들도 망하여 이곳을 떠났다 한다. 웅덩이가 그냥 남아 있어 이 웅덩이를 온수 덩붕이라 하는데 최근 지명에 따라 온천 개발을 한다고 시추하였다.

연화(蓮華)

연당리의 남부 지역의 행정리 이름으로 자연 마을은 구연화, 연화, 연평 등이 있다. 대산천이 흐르는 들판 가운데 있는데 연화의 본땀이다. 이곳은 들마라 하였는데 구연화에서 이사를 많이와 옛 마을이름을 그대로 불렀다 한다. 전에는 80여 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46호가 산다. 김해 김씨, 광주 이씨, 밀양 손씨, 등이 살며, 연천재(蓮川齋 : 손씨 봉선소), 연강재(蓮岡齋 : 김해김씨 봉선소)가 있다.

구연화(舊蓮華)

연당리의 동남쪽 산위에 있는 마을로 평지의 연화보다 가장 오래된 마을이므로 구연화라 부른다.

연화사가 마을 뒤에 있었으므로 그 이름이 그대로 마을이름이 되었다.

예전에는 큰 동리였으나 교통이 좋지 않아 산 아래 평지인 연화로 이사를 나갔다. 그래도 10여 년 전까지는 10여호가 살았는데 지금은 3집뿐이다.

연화사터

구연화 동북쪽 수봉산(秀峰山) 아래에 있는 절터이다.

이 터에는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사찰로 동국여지승람에는 비슬산에 있다 하였으나 [창녕현읍지]에는 [今無]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蓮花寺 在琵瑟山 今無)

연화(蓮花) 각씨묘(墓)

구연화 동쪽 연화사 터 위쪽에 있는 고분으로 연내각씨묘라고 전해온다.

연당, 연화를 속칭 [연내]라 부르는데 연당에 살았다 하는 여인을 연당각씨, 연내각씨, 여내각씨 등으로 부른다.

연화가 연내로 변하는 것은 [화+ 이]가 [홰] - [내]로 와전된 것이다.

연내각씨는 천여 년 전 고려 때 어느 날 , 홀연히 연당 마을에 나타나 걸인 행세를 하며 살다가 승천한 여인이다.

" 나는 옥황상제의 딸로 죄를 지어서 아래(땅)로 귀양을 왔다."

얻어먹으러 다니면서 그녀는 그런 말을 하였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 구연화 아래 골짜기로 무지개골이라 하였다.

3년이 지나고 난 다음 어느 날,

"이제 돌아갈 날이 왔으니 나를 위해 집을 지어주고 한 달 먹을 양식을 넣어주고 밀봉하여 달라." 동민들에게 부탁하였다.

동민들은 하도 이상하여 그대로 하여 주었더니, 그녀가 입고 다녔던 비단 치마를 주면서,

" 여러분에게 크게 신세를 졌으니 보답으로 드리니 잘 간수하면 후일에 중요하게 쓰이리라."하였다. 그리고는 묘실에 들어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고 한다.

그 후 그 치마폭은 연화사 큰 절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옮기는데 움직이지 않자 그것을 걸치니 쉽게 움직였다고 하며, 그외 연화각씨와 관련된 설화가 많이 전한다.

그녀의 치마폭을 보관한 당집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내며, 묘의 벌초는 음력 7월만 되면 어느 누가 먼저 와서 하는지 모르지만 벌초가 말끔히 되는데 이 무덤의 벌초를 하면 장가를 가거나 아들을 낳는다 전한다.

당집에 보관되었던 치마폭이 어느 날 창녕읍 옥천으로 날아가 옥천 서낭에 걸리는 이상한 일이 있어 그 후 옥천서낭은 남자 서낭으로 연화각씨와 인연을 맺음으로 풍년이 온다하여 매년 줄을 당겼다 한다.

일제 때 중단 되었다가 최근 창녕 문화원이 주최하는 [비사벌 문화예술제]에서 이 설화를 재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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