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신돈의 삶과 역사적 위상(5편)고려대학교 김창현 교수 著
비사벌뉴스 | 승인 2019.04.13 13:34

특히 연복사종에는 국왕 및 공주를 비롯해 관련자들이 대거 새겨졌는데도 그러했다. 그러하니 그 전별시는 충목왕 2년(1346) 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張沆의 전별시에 “聖賢 書를 玩味해 一擧에 金榜에 올랐고, 兩王을 보필함에 이르러 良相얻음을 民이 기뻐하네(及至輔兩王民喜得良相)”라고 했다. 이 시 작성 시점에서 신예는 급제한 후 兩王을 보좌한 것이니, 충숙왕과 충혜왕 때 관직 생활을 한 것이고 충목왕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金㺶(金㺩)가 전별시에서 신예에 대해 “기밀에 참여해 代言으로 활약하고 獻替함에 속으로 나약하지 않았네, 나라를 경영해 敎條를 내고 科試를 관장해 題^品을 정밀하게 했네, 功名이 전후에 빼어나 손꼽은 지 겨우 5년에 皇朝역시 불러 등용해 은총으로 天廩을 내려주려 하네(密勿代王言獻替無內荏經邦出敎條掌試精題品 功名絶後前屈指才五稔皇朝亦召用寵迫頒天廩)”라고 찬미했다. 여기에서 ‘掌試精題品’과 ‘屈指才五稔’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屈指才五稔’ 즉 “손꼽아 센 지 겨우 5년”은 과거를 주관한 지 5년이 아니라, 첫째로 신예가 고려 과거에 급제한 지 5년, 둘째로 고려 관직에 처음 임명된 지 5년, 셋째로 원 制科에 급제한 지 5년, 넷째로 원 관직에 처음 임명된 지 5년 등으로 해석되는데, 셋째 혹은 넷째일 가능성이 높다. 민사평의 시 寄辛草亭[曾爲南臺御史] 49)이 주목된다. “한 그루 寒梅가 비로소 바르게 피니 잔을 들고 날마다 나무를 일천번 돌지만, 花心은 尋常客을 좋아하지 않아 오직 分司御史가 오기를 기다리네”라고 읆었으니, 辛草亭즉 신예가 分司御史내지 南臺御史에 임명된 적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산현 인물 조에 따르면 신예가 일찍 科第에 올라 元朝에 들어가 制科에 합격해 南臺御史가 되고 고려에 벼슬해 지위가 政堂文學에 이르렀다고 한다. 신예는 고려의 과거에 급제한 다음 원에 들어가 制科에 급제해 원의 南臺御史내지 分司御史에 임명되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屈指才五稔皇朝亦召用’은 신예가 제과에 급제해 원의 南臺御史내지 分司御史에 임명되고 난지 5년이 흐르고서 정동행성 원외랑을 벗고 다시 원 제국 본토의 관직으로 부름 받은 것을 의미하고 그 시기는 충혜왕 후4년 봄~가을 무렵으로 여겨진다.

정리하면 신예는 충숙왕 말엽~충혜왕 복위년 무렵에 제과에 급제해 원에서 分臺御史내지 南臺御史를 지내다가 고려로 돌아왔고 충혜왕 후 원년 3월에 순제의 생일을 축하하러 司僕寺丞(정5품 혹은 종6품)으로 원에 갔다가 와서 代言을 역임했다. 충혜왕 후3년 7월에 지신사 동지공거 로 과거를 관장했다. 이후 密直과 僉議에 올라 그대로 정동행성 원외랑으로 활동하다가 충혜왕 후4년 봄~가을 무렵에 28家의 전별시를 받으며 원에 가서 府庫관원으로 활동했다.

충혜왕 후4년 10월 임술일(30일)에 원이 資政院使高龍普와 太監朴帖木兒不花를 보내와 충혜왕에게 衣酒를 하사하고 또한 皇后부친 奇子敖를 추증해 榮安莊獻王으로 추증하고 모친 李氏를 榮安王大夫人으로 삼았는데, 僉議評理(叅理) 辛裔가 함께 왔다. 이때 원이 奇轍로 行省叅知政事를, 奇轅으로 翰林學士를 삼았고, 本國은 기철로 政丞德城府院君을, 기원으로 德陽君을 삼았다.51) 11월 병인일(4일)에 왕이 고용보의 요청에 따라 그와 함께 市街樓에 나아가 擊毬및 角觝戱를 관람하고 勇士에게 布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하사했다.

충혜왕 후4년 11월 임오일(20일)에 원이 鞍轎를 찾는다고 사칭해 乃住등 8인을 보내왔다. 11월 甲申日(22)에 원이 告郊頒赦(頒郊赦詔)한다며 大卿朶赤과 郞中別失哥등 6인을 보내오니 왕이 질병을 칭탁해 영접하지 않으려 하자 고용보가 말하기를, 황제가 항상 왕이 不敬하다고 생각하는데 出迎하지 않으면 황제의 의심이 더욱 심해진다고 했다. 이에 왕이 백관을 거느려 郊迎하고 征東省에서 詔를 들었는데 朶}赤과 乃住등이 왕을 발로 차 결박했다. 왕이 급히 院使고용보를 부르자 고용보가꾸짖었다. 使者가 모두 칼을 뽑아 侍從群小를 잡자 백관이 모두 달아나 숨었다. 左右司郞中金永煦와 萬戶姜好禮와 密直副使崔安祐와 鷹揚軍金善莊등이 창에 찔렸고 持平盧俊卿및 勇士2인이 피살되었고 칼과 창에 적중된 자가 심히 많았다. 辛裔가 伏兵해 禦外하여 도왔다. 朶6赤등이 곧바로 왕을 끼고 말 한 필에 태워 달려가고 萬戶權謙羅英傑로 押領官을 삼았다. 고용보가 朴帖木兒不花및 諸軍萬戶李中敏金珠慶金上琦등과 더불어 弓劒을 잡아 수색했다. 朶=赤등의 명령에 따라 고용보가 國事를 整治하고 德成府院君奇轍과 理問洪彬이 權征東省했다. 고용보가 사람을 보내 왕의 侍從群小朴良衍林信崔安義金善莊承信등 10餘人을 체포해 가두었는데, 宋明理趙成柱尹元佑韓暉康贊등은 평소 고용보와 친선해 벗어났다. 고용보가 기철 洪彬蔡河中등과 더불어 內帑을 封했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비사벌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신문사소개고충처리제도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인터넷신문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만길 18  |  대표전화 : 055)532-0505  |  팩스: 055)532-0473
사업자등록번호 : 608-81-87983  |  등록번호 : 경남 아02351  |  등록일자 : 2015. 7. 2 (최초발행일자 : 2015. 7. 2)  |  발행일자 : 2017. 7. 24
발행인 : 조지영  |  편집인 : 오종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종식
편집부 : 055)532-0505  |   취재본부 : 055)532-0505  |  광고부 : 055)532-0505  |  이메일 : bsb2718@hanmail.net
Copyright © 2019 비사벌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