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여정(吾輿亭)과 어촌 양훤(漁村 楊喧)

선비들의 여가 활동을 상징하는 오여점야 사상이 깃들다

음풍농월(吟風弄月),

맑은 바람을 읊고 밝은 달을 즐긴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자연경치를 詩로 노래하며 즐기는 것을 말한다.

강변 정자는 언제나 하류(下流)쪽이 잘 보이는 곳에 있다. 정자에 기대어 윤슬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 답사의 백미다. 오여정도 그런 위치에 있다.

양훤선생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의병장이다.

거창 동계 정온(桐溪 鄭蘊)에게 배웠다. 과거로 벼슬길에 나갈 뜻이 있었으나 스승이 영창대군 피살 책임자 처벌과 인목대비 폐모론의 부당함을 주장하다 광해군의 분노를 사 제주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권력에 실망하여 낙향(落鄕)했다.

옛 창녕현 오항촌(烏項村, 현 이이목) 낙동강변 풍광이 수려한 절벽위에 정자를 짓고 오여정이라 했다. 뱃길 따라 오가던 영남사림 들과 교류하며 시를 짓고 노닐었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과 가까이 지냈으며, 선생이 돌아가시자 미수선생이 묘비문(墓碑文)을 썼다. 선생의 묘는 장마면 상이곡 뒷산에 있다. 사림(士林)에서 광산서원(유어면 광산리)을 세우고 배향(配享)하였다.

오여정이 있는 남지읍 시남리 이이목(烏項) 마을은 조선 중기에 상당히 컸던 마을로『호구총수』에 오항촌(烏項村)으로 기록되 있다. 당시 나루터가 있어 옹기(甕器) 굴이 번창하여 10여호 이상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떠나고 한집 뿐이다.

이곳에서 강변의 절벽 서쪽 월평과 동쪽 유어면 진창 큰소재미로 가는 벼랑길이 있었다. 바로 이이목 개비리길이다. 월평까지 험하지만 차량이 다닐 수 있게 길이 넓혀져 있으나 진창 큰소재미로 가는 길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오여정(吾與亭)

백일홍 붉게 피던 선비들의 교류처

어촌(漁村) 양훤선생이 광해군 때 “서궁(西宮)의 변(變)”을 보고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껴 낙향해 지은 정자다. 서궁의 변은 광해군이 집권한 뒤 선조 정비였던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사건이다.

이이목나루 동쪽 강변 절벽에 자리 잡은 정자는 낙동강 흐르는 물길이 아득히 조망(眺望)되는 명소다. 이 일대는 경치 좋기로 이름 난 곳이다. 절벽에 피는 백일홍과 낙동강 푸른 물결이 절경이라 뱃놀이(船遊)등 한 때 많은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정자 앞 나루터는 남지읍 시남리 이이목(烏項)에서 의령군 낙서면 정곡리를 잇는다. 오여정은 백일홍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은 가고 찾는 이 없어져 시남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20여 년 전에 누군가 백일홍을 훔쳐가 버렸다고 전한다.

정자의 현판을 오여정이라 지은 것은 선비들의 여가활동을 상징하는 “오여점야(吾與點也)”에서 따왔다고 한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의 포부를 물었고, 몇몇 제자들이 각각 정치적 경륜을 펼치겠다는 답을 한데 반해 음악에 심취해 있던 증점이 거문고 연주를 멈추고 “늦봄 젊은이 몇 명 데리고 봄바람 쏘이며 시 읊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하였다. 이에 공자도 증점의 뜻에 도의한다(吾與點也)는 내용이 “논어”에 나온다. 이후 유가전통에서 오여점야라는 말을 현실참여의 상대적 개념으로 지식인 계층의 여가활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어구가 되었다.

오여정은 여러 문헌에 명소로 자주 등장한다.

<조선지지자료, 1911>에 "오여정은 창녕군 어촌면(漁村面, 유어면 광산이 면소재지) 고적명소(古蹟名所)-진사양훤유게구소(進士楊喧遊憩舊所)로 기록되어 있고, <교남누정시집(嶠南樓亭詩集), 1936>에는 "오여정은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면 오항의 낙동강 가에 있는 정자인데 양훤이 지었다"라고 하였다. 영남사림 선비들이 배를 타고 낙동강을 오르내리며 쉬어 가는 유명한 곳이었던 것이다.

현판은 극암 이기윤(克菴 李基允)이 쓰고, 송매루(松梅樓)현판12세손 양진이선생의 글씨다.

선비들이 가고 세월이 흘러 찾는 사람이 없어지자 오여정은 퇴락하였다. 여러 번 답사하며 안타까워 풀과 나무를 베고 청소를 하였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그 후 날로 쇠퇴하였으나 이제 그 후손들이 나서서 주변을 정리하고 건물을 수리하고 있다. 곧 옛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양훤선생의 향사를 위한 광산서당(光山書院)

서당은 높은 단위에 우아하고 날렵한 건물이 인상적이다.

양훤(楊晅)선생을 향사하기 위해 1795년(정조19)에 창건하였다. 사액은 받지 못하여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1899년에 광산서당 근처에 다시 건립했다. 서당앞에는 선생이 좋아하던 배롱나무를 심었고 해마다 붉은 꽃이 백일동안 서원을 환하게 밝힌다.

청주양씨 시조(始祖) 영정 모신 경모당(敬慕堂)

유어면 진창리 경모당은 공민왕의 왕후인 노국대장공주를 수행한 '청주 양씨 시조인 충헌공 암곡 양기'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청주 양씨(淸州楊氏) 시조 양기(楊起)는 원나라 사람으로, 중서성정승에 있을 때 고려 공민왕 왕비 노국대장공주를 따라 들어와 정착했다.

그 후 다시 원나라에 들어가 “고려가 궁벽한 바닷가에 있어 읍(邑)들도 극히 적고 백성들이 피폐에 지쳐있어 세공(歲貢, 세금과 공물)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황실에 건의하여 비로소 각종 세공(歲貢)이 감면되었다. 이로 인해 나라가 부유하게 되고 백성이 안락하여 태평함을 얻게 되자 공을 벽상삼한창국공신(壁上三韓昌國功臣) 상당백(上黨伯)에 봉하고 청주(淸州)를 본관(本貫)으로 하사했다.

또 해주(海州, 현 황해도), 송화(松禾, 현 황해도)를 식읍(食邑)으로 주었으나 사양하자 청백리(淸白吏)로 봉했다.

경모당이 있는 유어면 진창리와 인근 광산리는 청주 양씨(淸州 楊氏)의 집성촌이다. 광산서당과는 직선거리로 약 1km 떨어져 있다.

충주 양씨 유적지를 답사하려면 먼저 경모당에서 시작해야 한다.

시조 양기가 고려에 귀화한 삶의 궤적을 찬찬히 더듬어 볼 것을 권한다.

그 다음은 오여정이다. 선생이 노닐던 오여정의 의미를 알고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 물을 오래도록 감상하며 조선 선비들의 여가 문화를 느껴보라. 그리고 선생의 묘가 있는 장마면 상이곡에 가서 한잔 술을 올리자. 답사자의 올바른 자세다. 마지막으로 차를 돌려 유어면 광산리 광산서당을 둘러보자. 기둥에 매달린 주련(柱聯)의 의미를 새겨보고 해묵은 배롱나무에서 옛님들의 향기를 느껴보고 마루리 하면 제대로 된 답사 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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