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령

새벽안개 스멀스멀 걷힌 자리마다 일억 년 품은 물을 토해내는 아침, 수초들은 키 재기 하다 푸른 융단을 깔았습니다. 우포늪 엄마는 철새들의 밥상 준비에 사계절 바쁩니다. 붕어, 잉어, 미꾸라지, 각시붕어, 민물새우, 팔딱팔딱 뛰어오른 개구리, 온 발로 힘 세워 발버둥 칩니다.

노랑 어리연꽃들이 방긋방긋 미소 짓고 가시연꽃 사이사이로 물방개 헤엄치는 물길이 춤을 춥니다. 그 위로 노을빛 아름다운 날개 펼치며 따오기 훨훨 날아오르는 우포는, 수십만 평 몸을 내어주고 있습니다.

나무개벌 가에는 늙은 꿩이 앉아 있는 형국을 하고 있는 노치(老稚)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은 공 씨들이 많이 살고 있답니다. 내륙의 어촌이라 불릴 만큼 마을 사람들은 옛날부터 우포늪의 고기를 잡아먹고 살았지요. 물풀의 천국! 새들 먹이 저장고 우포늪 가에는 언제나 마을 아이들과 철새들이 친구되어 놀았습니다. 아이들 중에는 형제 우애가 두터운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들은 특히 많은 새들 중에서 따오기(황새목 저어새과)를 좋아했어요. “형 저기 빨간 새(따오기)가 날아올랐어, 날개가 너무 아름다워 우리 저 새를 타고 우포늪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어” 동생이 외치면 형도 덩달아 “그래 나도 빨간 새를 타고 싶어” 둘은 빨간 새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곤 하였답니다.

마을 아이들은 어른들이 논밭에 나가 일을 하는 동안 우포늪으로 소를 몰고 나옵니다. 그리고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줄(벼과의 여러해살이풀)이 무성한 곳에 소를 풀어 놓습니다. 소들은 줄을 몹시 좋아 하거든요. 사람들은 이렇게 자연의 일부가 되어 우포늪과 함께 평생을 살아갑니다.

마을에서 고개 넘어가는 길(현재 징검다리가 있는 곳)언덕에는 방앗간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방앗간에 갈 때면 기다리는 시간에 우포늪(쪽지벌)아래로 내려가 조개(대칭이)를 잡았습니다. 늪 속에 손만 넣으면 손보다 더 큰 조개가 쑥~ 잡혔거든요. 잡은 조개는 마을로 돌아와 동네 어귀에 둘러 앉아 조개를 쪼개어 봅니다. 왜냐하면 마을에서 최고로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때문이랍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우포늪에 와서 보니 조개(대칭이)가 너무 많이 살고 있어 깜짝 놀랐다 고해요. 그래서 진주를 키우기 위해 원형의 핵을 인위적으로 조개 속에 집어 넣었다고 합니다. 그 핵은 2년~3년 지나면 진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진주를 찾기 위해 조개를 잡을 때 마다 쪼개어 봤다고 해요.

어느 날 따오기를 좋아하는 형제의 집에서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옵니다. 어머니는 예쁜 여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출산으로 고생한 아내를 위해 우포늪으로 나가 새 한 마리를 잡아 왔어요. 형제가 무척 좋아했던 빨간 새 따오기였습니다. 형제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기력회복을 위해 털을 뽑고 불을 지펴 하얀 물이 나올 때까지 끓여서 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그 날부터 형제는 아버지를 매우 미워하게 되었지요. 그 후 우리나라에는 민족상잔의 비극! 6.25 한국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가족들은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피난길에서 그만 우애 두터웠던 형제의 형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형이 북쪽으로 갔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지금까지 소식을 알지 못합니다.

세월은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더니 이제는 시간을 되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포늪도 물이

고인 면적이 점점 줄어들어 조금씩 육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포늪 하늘을 노을빛으로 물들이던 따오기도 우리나라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우의 얼굴에는 수많은 주름이 생겼습니다. 한 평생 형을 그리워하며 우포늪을 떠나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러 빨간 새 따오기가 날아오르기를 기다리다 이제는 정신마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우포늪 엄마는 봄을 맞이할 준비로 더욱 분주해집니다.

왕법들은 수액을 끌어올려 머리 위로 연녹색 잎을 내밀고, 겨울 철새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우포늪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합니다. 공기마저 심상치 않아요. 이제 곧 다시 태어난 빨간 새 따오기가 하늘 높이 비상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죠. 따오기는 우리나라에서 1979년 경기도 지역에서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가 지난 2008년 중국으로부터 한 쌍을 기증받아 복원에 성공 하였답니다. 이제는 그 개체수가 363마리가 되었습니다. 복원된 따오기 중에는 스스로 짝짓기를 하고, 어미가 알을 품어 산란을 합니다.

그럼 따오기는 왜 우리나라에서 사라졌을까요?

사라진 원인은 환경적인 요인과 사회적인 요인, 그리고 먹이활동의 요인이 크다고 해요. 환경적으로 따오기는 습지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서식을 하는데 최근에는 습지밀도가 낮고 고도는 높은 곳에서 서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농촌에서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등 인간 활동의 결과로 따오기기가 사라졌다고 해요. 또한 사회적인 요인인 산업화로 인한 영농방식 변화 그리고 마구잡이 남획 등으로 따오기 숫자가 급격히 감소했다고 합니다.

따오기의 긴 주둥이는 물린 먹이를 잘 놓치는 편인데 먹이마져 부족해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라졌던 따오기가 40년 만에 우포늪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곧 자연으로 방사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따오기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주변의 논과 들, 하천과 습지들도 함께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합니다. 앞으로 따오기는 분단민족의 아픔이 아습이 보이는 북쪽 하늘까지 훨훨 날아갈 것입니다. 북한에 살아계실지도 모르는 마을 할아버지 형님께서도 빨간 새 따오기를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겠지요. 그리고 쉰 목소리를 내며 이 노래를 부르시지 않을까요.

1.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2.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아버지 가신 나라 달 돋는 나라

앞으로 우포늪 엄마는 따오기를 포근하게 품어줄 것입니다.

- 우포늪 엄마 -

바람도 일지 않는 한 낮 뙤약볕이

그늘도 없는 질퍽한 늪으로 쏟아진다

그래서 늪은 물 위로 물풀을 밀어 올리고

빛은 잰걸음으로 물 밑을 투시한다

늪은 밤새 뒤척이며 초록 융단을 깔고

그 아래 수서 곤충들 춤사위 벌어진다

물 위로 가시연꽃 연보라 미소 짓고

미꾸라지 올챙이 따오기 부르는

우포는 수십만 평에 몸을 내어주고 있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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