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의 사직단

필자가 창녕사직단을 알게 된 계기는 2003년 창녕향토사연구회 활동 중 창녕향교앞 명덕못 근처를 창녕문화공원(2004년 조성) 답사하면서 부터다. 무성한 수풀 속에 사람이 만든 듯 한 네모난 터를 발견하면서 부터다. 옛 문헌을 확인한 우리는 그 때 현풍사직단을 답사하고 난 직후라 사직단 터로 추정했다. 그리고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직단 위치자료, 사직단터 현장사진, 현풍사직단 사진을 첨부하여 창녕군에 공문을 발송했다.

그 후 창녕사직단은 2006년 지표조사(경남대학교 박물관)와 2011년 발굴조사(삼강문화재연구원)를 통해 제단(祭壇)과 담장의 기초시설, 계단, 부속건물지, 단(段)과 석축(石築) 등이 확인됐다. 해발 102m의 작은 구릉 정상부를 깎아 정리하여 평평한 대지(臺地)를 만들고, 그 가운데에 제단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지방에 있던 수많은 사직단은 일제강점기에 기능을 잃고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행인 것은 창녕사직단을 복원되어 문화재로 재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성황단(城隍壇)

천지신명이시어 이 나라를 굽어 보살펴 주시옵소서

성황단이란 조선시대 공사(公祀, 국가제사)중 천지신명께 지내는 소사(小祀)로 성황신에게 제를 지내는 단(壇)을 말한다. 원래 성황은 한 나라의 도성을 지켜 주는 신이였으나 후대로 내려오며 토속 신으로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 된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성지역에 제단을 마련하고 수시 또는 특정한 날짜에 제사를 지내는데 서낭단, 서낭신이라 불렀다.

성황당은 고을 수령이 직접 제사 지내기도 하고 예감(禮監, 관혼상제를 행하는 관리)을 시켜 대신하도록 하기도 했다. 매년 제사를 지냈으나 차츰 민간으로 전해져 마을마다 고갯마루 등에 돌무더기를 쌓아 성황신을 모셨고, 민간에서 서낭신으로 널리 퍼졌다.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는 융희2년(1908)에 폐지되었다.

2000년 산복도로 개설시 파괴된 송현동 성황단

송현동 파괴된 성황단 추정 고인돌

창녕의 성황단은 청동기시대 소도(蘇塗)로 전해온 창녕읍 솔터네거리 도원아파트 근처에 있었다. 고인돌로 추정되는 북두칠성 바위와 수백 년 된 소나무와 참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숲 가운데 성황신을 모신 건물이 있어 해마다 마을사람들이 제사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이었다.

그러나 2000년 초 송현네거리~낙영삼거리까지 산복도로 개설시 뜻있는 지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어 사라졌다. 상세한 내용은 추후에 소개하려 한다.

현재 남아있는 성황당은 명덕저수지에서 송현고분군을 가로질러 도야리로 가는 고갯마루 옛길 옆에 시멘트 세운 작은 성황당이 남아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무로 깍은 목각신이 3분 모셔져 있었고 촛불을 밝힌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을 모두 사라져 텅 비어있다.

시멘트로 지은 작고 초라하여 보잘것없지만, 이런 옛 선조들의 정신문화 유산이 답사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고 보잘것없지만 크고 깊은 이야기가 깃든 소중한 유적은 큰 길을 내고 큰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백배 천배 소중하다.

눈앞에 있는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면 다른 지역보다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여단(厲壇), 여제단(厲祭壇) - 관아의 북쪽

백성의 마음까지도 위로한 따뜻한 복지, 억울하게 죽은 귀신을 위해 나라에서 한을 풀어주던 해원(解寃)

여단(厲壇)은 의약 시설이 잘 갖추어 있지 않던 시절에 흉년이 들어 굶어 죽거나 병이 들어 객사한 뒤 상주도 없이 외로이 구천을 헤매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무(慰撫)하여 마을에 우환이 없게 하는 제사, 곧 여제(厲祭)를 베풀던 곳이다.

미혼 남녀의 귀신이나 임자 없는 귀신들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어 이들의 영혼을 달래 무서운 역질이나 재난을 막으려는 데서 생겨난 민속 신앙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1400년(정종 2) 조정에서 각 주현(州縣)에 여제단을 설치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를 전후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단의 모양은 정사각형이며 한 변의 길이가 6.3m(2장 1척), 높이는 0.75m(2척 5촌) 정도이다. 사방에 층계로 담을 쌓아 단을 보호하였다. 토담 한 변의 길이는 15m(25보) 정도이며, 남쪽으로 출입문이 있다. 단의 남쪽에는 한 변의 길이가 1.5m(5척)인 요단(燎壇)을 설치했다. 출입문은 0.6m의 너비로, 위로 열고 드나들도록 되어 있다.

여제의 대상인 여귀(祣鬼,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는 횡포를 부릴 수 있는 포악한 귀신으로 칼에 맞아 죽은 사람,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불에 타서 죽은 사람, 도둑을 만나 죽은 사람, 남에게 재물 때문에 핍박을 받아 죽은 사람, 남에게 처첩을 강탈당하고 죽은 사람, 형을 받아 죽은 사람, 원통하게 죽은 사람, 천재지변으로 죽은 사람, 돌림병으로 죽은 사람의 위패는 왼쪽에 세운다.

맹수에게 물려 죽은 사람, 추위에 얼어 죽은 사람, 굶주려 죽은 사람, 전쟁 때 죽은 사람, 위급한 일을 당해 목매어 죽은 사람, 바위나 담에 깔려 죽은 사람, 해산하다가 죽은 사람, 벼락 맞아 죽은 사람,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 죽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은 오른쪽에 위패를 세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기록에 여제를 가장 많이 지낸 경우는 '질병'이다. 그 중 특히 전염성 질환은 여귀가 일으키는 재난 가운데 가장 큰 것이어서, 국가적 전염병이 창궐하여 죽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여제가 많았다. 매년 봄 청명일(淸明日)과 가을 7월 17일, 10월 1일 세 차례 제사를 지내고, 한양에선 왕, 지방은 수령이 직접 제사를 관장하게 하였다.

지방에 특별한 괴변이 일어나거나 큰 전투가 있어 사람이 많이 죽은 곳에는 때에 구애받지 않고 수시로 제관을 보내 제를 지냈다. 왕조의 상징이던 이 시설들은 조선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성황단, 사직단을 없애고 신사(神社)를 세워 조선의 정기를 말살시켰다.

창녕에도 세워져 제사를 지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없어진 뒤 현재는 전하지 않으며,

교동고분군 신흥사쪽 무성한 숲을 여단 터로 추정하고 있다. 2019년 현재 우리나라를 한번 돌아보자. 국가가 국민들의 한을 풀어주는 제도가 있는가 말이다. 억울한 사고가 일어나도 누가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다.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하고 두 번 다시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당한 보상을 하고, 비통한 국민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행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의 제도가 백성들의 애민정신이 훨씬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수많은 문화재가 남아있지만 대부분 신라 귀족, 고려 권문세가, 조선 사대부들의 문화가 전해지고 백성(민초)들의 문화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 실정이다. 여단제는 백성을 위한 공간이었고, 백성의 원혼을 달래주던 정신문화유산이다.

옛 조선시대처럼 창녕여단 터를 고증 복원하여 매년 제사를 지내 창녕군민들을 위한 따뜻한 행정을 펼쳐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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