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오종식문화관광해설사의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서-(상)조선 500년 이데올로기, 3단(壇) 1묘(廟)
비사벌뉴스 | 승인 2018.12.24 16:25

- 사직(社稷) 신이여, 국태민안(國泰民安) 이루게 하소서...사직단

- 천지신명이시어 이 나라를 굽어 보살펴 주시옵소서...성황단

- 백성의 마음까지도 위로한 따뜻한 복지...여단

- 유교를 창시한 위대한 성인을 모시는 궁전 대성전...묘

조선시대 부·목·군·현을 도(道) 산하에 두어 읍(邑)이라 부르고, 수령(首領)을 두고 청사 소재지는 통칭으로 읍치라 불렀다. 읍치는 행정, 군사적 기능을 가진 성곽도시를 기본으로 했다.

지방 읍치에는 객사(客舍), 아사(衙舍), 향청(鄕廳)이 가장 중요한 핵심시설이다. 왕을 상징하는 객사가 읍성의 가장 중요한 위치, 즉 진산을 배경으로 중앙 또는 북단(北端)에 있고, 동헌 또는 향청이 나란히 배치하든지 또는 아래에 둔다.

이외에 관아 건물들은 동서로 나뉘어 문관이 서쪽, 무관이 근무하는 훈련원, 군기고 등은 동쪽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읍성의 외에는 공교육 장이었던 향교(문묘, 명륜당), 사교육 장이던 서원이 있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유교적인 통치이념을 내세워, 중앙과 지방에 종교화된 여러 종류의 제사제도를 마련해 시행했는데, 관아에서 지내는 공식 제사였다. 지방 제례시설은 삼단일묘(三壇一廟)다. 즉 문묘文廟(鄕校), 성황단城隍壇(城隍祠), 사직단社稷壇, 여단勵壇(勵祭壇)이다.

이중 문묘를 가장 중시했으며, 그 다음이 社稷壇 → 城隍壇 → 勵壇 순서다. 한양이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의 좌묘우사(左廟右社)라는 원칙에 따라 궁궐을 중심으로 종묘와 사직을 배치한 것처럼, 지방에서도 역시 왕을 상징하는 객사를 중심으로 배치하고 있지만, 각 지방의 입지나 지형적 특성 등으로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대체적으로 문묘 즉 향교는 고을의 동쪽, 사직단은 서쪽, 성황단은 남쪽, 여단은 북쪽에 있었다.

삼단일묘(三壇一廟)에는 매년 정해진 날짜에 제례를 올렸으며, 부임하는 고을 수령은 오리정에서 제례 복을 갈아입고 문묘-사직단-성황단-여단순서로 제사를 지냈다.

현재 전국 230여개의 향교(문묘)는 정부의 꾸준한 지원과 유림의 활동으로 교육기능은 쇠퇴하고 제사기능만 남아 현재도 잘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사직단(社稷壇)·성황단(城隍壇)·여단(勵壇)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행인 것은 창녕사직단은 복원되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성황단과 여단은 세월에 풍화되어 희미한 터만 남아있을 뿐이다.

다른 지역은 도시화로 흔적마저 없어졌으나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성황단과 여단은 전문가의 고증과 발굴을 거쳐 복원하면 또 하나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성황단과 여단의 역사는 어림잡아도 천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누가 감히 미신(迷信)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소중한 선조들의 정신문화 유산이다. 길이 보존해야 할 것이다.

 

향교대성전(鄕校大成殿)

유교를 창시한 위대한 성인을 모시는 궁전

대성전은 유교의 창시자 공자의 위패(位牌)를 모시는 궁전에 해당하는 전각(殿閣)을 말한다.

오성(五成)을 모신 대궐을 뜻하는 전(殿)을, 송조사현(宋朝四賢)등 제현과 우리나라의 18현을 모시는 동․서무는 행랑을 뜻하는 무(廡)를 사용하였다.

또 지면으로부터 높낮이도 다르게 하여 우선 시각적으로 위계를 나타냈으며, 재료 사용에 있어서도 대성전에는 둥근 기둥을 사용한 반면 동.서무에는 네모난 기둥을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공포(栱包)의 구성도 대성전이 익공(翼工)양식인 반면 동, 서무는 일반 주택과 같은 민도리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경건함과 엄숙함을 자아내는 맞배지붕에 칸수는 음양의 원리에 따라 3칸·5칸 등 기수(홀수)로 하며, 정면에 개방된 툇간을 만들어 의례시 편리하도록 만들었다.

대성전 주위에는 정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담장을 둘러 엄숙한 참례의 공간을 만들며, 앞면과 옆면에는 손을 씻는 관수대와 축문을 태울 수 있는 망료대(望燎臺)와 뜰을 밝히는 정료대(庭燎臺)를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성전에 모시는 위패는 공자인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을 중앙에 모시고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등 4성(聖)을 좌우에 합사(合祀)한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는 정이(程頤)․정호(程顥)․주희(朱熹)․주돈이(周惇頤)등 송조 4현(宋朝四賢)과 우리나라 동국18현(東國十八賢) 설총(薛聰)·최치원(崔致遠)·안유(安裕)·정몽주(鄭夢周)·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이이(李珥)·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박세채(朴世采)·조헌(趙憲)·김집(金集)·김인후(金麟厚) 등이다.

창녕향교에는 공자를 위시하여 27성현들을 모셨다.

대성전에 5성현, 동서무에 각각 11성현을 모셨는데 9분은 중국성현, 18분은 우리나라 성현들이다. 신라 2분, 고려 2분, 조선 14분이다.

대성전의 석전제례(釋奠祭禮)는 춘추향사(春秋享祀)라 해서 매년 정해진 날에 열린다. 성균관과 234개 향교에서 지역유림들이 모여 매년 봄(음력 2월)과 가을(8월 상정일)에 성대히 치러진다.

요즘은 향교에서 교육관을 지어 붓글씨, 다례교육, 한문교육, 청소년예절교육등 유교교육에 많은 노력을 쏟으며 교육기능 회복에 힘쓰고 있다.

 

사직단(社稷壇)

사직(社稷) 신이여, 국태민안(國泰民安) 이루게 하소서

고대 농경사회에서 국토와 곡식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었다. 사직은 토지신인 국사신(國社神)과 곡물신인 국직신(國稷神), 두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 사직단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사직단(社稷壇)의 역사를 살펴보면, 『삼국사기』와 『문헌비고(文獻備考)』에 고구려는 391년(고국양왕 9)에 국사(國社)를 세웠고, 신라는 783년(선덕왕 4)에 사직단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판단할 때,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직단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사직단에 대해서는 『고려사』를 통하여 991년(성종 10) 처음으로 도성인 개경 서쪽에 사직단을 만들었고, 그 후 사직단을 수축하거나 사직단에서 행한 제례를 정비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조선시대에도 한양과 지방 고을에도 설치되어 그 전통을 이어갔다.

조선왕조실록에 사직단에 관한 기록은 57회다.

태조실록 7권, 태조 4년 1월 29일 태조 이성계는 사직단(社稷壇)을 영조(營造, 건립함)하였다.

“『주례』에 따르면 종묘는 관아의 동쪽에, 사직은 관아의 서쪽에 둔다는 원칙에 따라 세워졌다. 지방관은 왕을 대신해 토지신과 곡식 신에게 매년 두 차례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가뭄이 들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도 때때로 올렸다.”

제례는 문묘(文廟)와 종묘의 예에 따르고 2월과 8월 및 동지와 제석(除夕, 섣달그믐날 밤)에 행하였다. 그 밖에도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의 제례와 가뭄에 비를 비는 기우제(祈雨祭)와 풍년을 비는 기곡제(祈穀祭), 장마가 그치고 날씨가 맑아지기를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 나라에서 기원할 일이 있을 때 지내던 기고제(祈告祭)등을 여기에서 지냈다.

사직단의 제사는 통감부가 1908년 칙령으로 향사에 관한 시설을 대부분 철폐시킴에 따라 폐지되었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비사벌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신문사소개고충처리제도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인터넷신문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만길 18  |  대표전화 : 055)532-0505  |  팩스: 055)532-0473
사업자등록번호 : 608-81-87983  |  등록번호 : 경남 아02351  |  등록일자 : 2015. 7. 2 (최초발행일자 : 2015. 7. 2)  |  발행일자 : 2017. 7. 24
발행인 : 조지영  |  편집인 : 오종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종식
편집부 : 055)532-0505  |   취재본부 : 055)532-0505  |  광고부 : 055)532-0505  |  이메일 : bsb2718@hanmail.net
Copyright © 2019 비사벌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