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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식문화관광해설사의 숨은 문화재를 찾아서백정의 딸을 정경부인 삼은 의리의 사나이 이장곤(李長坤)
비사벌뉴스 | 승인 2018.08.10 22:00

우포늪에 여름이 한창이다. 강렬한 태양에너지가 물풀 융단위에 쏟아져 내리고 있다. 우포늪 생명길을 걷노라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언제나 버드나무가 동행한다.

봄날엔 초록구름을 만들고, 여름날엔 매미소리 시원한 그늘을 선물한다.

옛 농촌마을앞 시냇가와 논 주변을 늘어선 버드나무는 고전 문학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다. 여성을 상징하며, 사랑과 이별의 정을 표현한다.

농촌마을 우물가에는 어김없이 버드나무가 드리워져 있다.

버드나무는 잔뿌리가 발달하여 물을 깨끗이 걸러주고, 물 깃고 밥 짓는 아낙네에게 그늘을 내어주며, 그 자태는 농촌마을 풍경을 빛나게 한다.

고려와 조선의 역사에서 우물가 버드나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 태조 왕건과 나주(羅州)의 완사천(浣紗泉)에서 장화왕후와 만남, 조선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와 인연은 우물가 버드나무와 관련이 있다. 왕이 되기 전 장군이었을 때의 일이다. 이동 중 목이 말라 우물가에 처녀에게 물을 청하자 바가지 물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건넨다. 체하지 않게 천천히 마시라는 배려다. 아리따운 처녀의 마음 씀씀이에 반해 결혼하게 되고 훗날 왕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창녕군 대합면 대동리에 묘가 있는 이장곤은 도망 길에 우물가에서 물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주는 처녀와 인연이 되었고 결혼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금헌 이장곤(琴軒 李長坤)

조선시대를 통틀어 이장곤만큼 다이내믹한 인생을 살다간 선비는 드물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이장곤에 대한 기록에 보면 원문 334건, 국역 341건에 이를 만큼 방대하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을 갔으며, 탈출하여 함경도에서 양수척의 집에 의지하며 딸과 결혼하고, 중종반정 후 복권되어 천한 아내를 정경부인으로 삼을 만큼 의리 있고 로맨틱한 대장부였다. 문무를 겸비하여 북방을 지키며 여진족을 격퇴하였다.

그 후 다시 기묘사회에 연루되어 삭탈관직 당하였다 복직되는 등 우여곡절을 많이 겼는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다.

이장곤(李長坤 1474∼?)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성종, 연산군, 중종 3임금을 모셨다.

이장곤의 자는 희강(希剛), 호는 금헌(琴軒), 성주(星州) 사람이다.

벽진이씨(碧珍李氏)의 18세손으로 김종직(金宗直), 정여창(鄭汝昌) 등과 친교가 있던 진사 이승언(李承彦)의 5형제 중 넷째 아들이며 김굉필의 문인이다.

1495년 22세에 생원시에 장원 합격하여 태학에 유학하였으며, 29세 때인 1502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504년 31세 때 홍문관 교리로서 연산군(燕山君)의 뜻을 거슬러 거제에 유배되었다. 연산군은 그가 문무의 재능을 지니고 있어 난을 일으킬 웅지가 있다고 의심하였다.

그는 억울하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바다를 건너 달아나 함경도에 이르렀다. 연산군은

나라 안에 명령을 내리기를 “금헌을 잡아 현(縣)의 관리에게 알리는 자가 있으면 금 1천 냥과 벼슬 3품을 내리겠다.”라고 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그는 천한 양수척(楊水尺)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연산을 몰아낸 중종반정 후 1508년(중종 3) 박원종(朴元宗)의 추천으로 홍문관 부교리, 교리, 사헌부장령을 거쳐 동부승지를 역임하였으며, 학문과 무예를 겸비한 인물로 중종의 신임을 받았다.

1519년 북방에 여진족 침입이 있었는데, 중종이 특명으로 금헌을 북도절도사(北道節度使)에 임명하여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이어서 평안도병마절도사, 이조참판, 예조참판 등을 거쳤다. 15년 대사헌이 되고 이듬해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가 함경도관찰사로 교체되었다.

18년 이조판서가 되고 19년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남곤, 심정 등이 주도한 기묘사화에 참여하였으나 조광조등 사화에 연루된 사림들의 처형에는 반대하다가 심정(沈貞)등의 미움을 사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

22년 복관되었으나, 여강(驪江: 지금의 여주)과 경상도 창녕에서 은거하다, 45세 나이로 죽었다.

만년에는 창녕으로 돌아와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조리고 주연을 베풀며 한가롭게 지내다 세상을 마쳤다. 부용정에서 멀지 않는 성산면사무소앞 운봉천변 바위에 낚시하며 시름을 달래던 금헌조대(琴軒釣臺) 명문이 남아있다.

○ 야담, 양수척의 양반 사위 이장곤, 유기장이의 딸을 정부인으로 삼은 내력

드라마 <대장금>의 배경이 되는 중종 때. 조정은 백정의 딸을 양반의 정실부인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로 한바탕 시끄러웠다.

결국 중종이 어려운 시절에 동고동락한 천민의 딸을 양반의 정식 아내로 인정하라는 윤허를 내린다.

이 사건은, 조선 전체가 들썩거렸던 백정의 딸 양씨 스캔들이다. 폭군 연산군은 예쁜 여자라면 유부녀건 처녀건 가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연산군은 이장곤이라는 관리의 아내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여자로 만든다.

이에 격분한 이장곤은 홧김에 아내를 죽이고 함경도로 도망친다.

그때 함흥 어느 산골길에서 하도 목이 말라 길가 우물을 찾아 물 긷는 처녀에게 물을 청했다. 처녀는 수양버들 잎을 띄운 물바가지를 내민 총명한 행동에 그는 감탄했다. 물을 급하게 마실까 염려했던 처녀는 그의 몰골을 동정하여 자기 집으로 데려갔는데, 이장곤은 피신을 위해 이 처녀와 결혼하여 은거하게 되었다.

처녀의 집은 고기나 잡아 파는 양수척 즉 천민의 집으로 양반과는 인연이 먼 집안이었다.

이장곤은 할 일 없이 늘 빈둥빈둥 놀았으나, 아내의 기지로 장인 장모의 구박을 피해가며 살았다. 수년 후(1506) 중종반정으로 살게 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잘 아는 사람에게 옷과 갓을 빌려 함흥 부중으로 가서 쪽지를 같이 간 사람을 통하여 관찰영의 심부름꾼에게 전해주니 관찰사와 여러 관원들이 이장곤을 알아보고 도로 관계로 돌아오게 되었다.

도망자 생활 몇 년 만에 중종의 즉위로 조정으로 돌아온 이장곤은 그 동안 양씨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고동락한 아내를 버릴 수 없어 조정에 선처를 부탁한다. 결국 부인 양씨는 정경부인이 되고 친정은 모두 천민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야담으로 총명하고 사람 볼 줄 아는 양수척 딸의 재치로 이루어낸 양반과 상놈의 거리를 뛰어넘어 이룬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역사의 향기로 전한다.

이장곤 모시는 금호제와 묘소

금호제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62호이며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로 중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이장곤(李長坤)을 모시는 재실(齋室)이다.

이장곤은 1695년(숙종 21)에 이승언ㆍ성안의(成安義)와 같이 연암서원에 배향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시에 연암서원이 없어졌다.

금호제에서 북동쪽으로 1㎞ 정도 떨어진 야산 기슭에는 그의 묘소와 함께 창녕 대동리 금헌묘석상(昌寧大同里琴軒墓石像:경남유형문화재 296)이 있다.

이장곤 조부, 부친 모신 부곡제(釜谷齊)와 묘소

유어면 부곡리 내부곡마을에 벽진이씨 제실 부곡제가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내부곡마을은 예전에는 벌소리가 났다는 의미의 봉명(蜂鳴)이라 불렀다.

이장곤 할아버지 묘를 쓸 때의 일이다. 묏자리를 팔때 삼각형으로된 돌이 나와 관을 넣기가 어려웠다. 유명한 풍수(지관)가 돌을 빼지 말고 그대로 두고 관을 안치하라 했지만 인부들이 불편하다하여 돌을 들어내니 커다란 왕벌이 나와서 그 풍수를 쏘아 풍수가 죽었다고 하며 그때부터 마을이름을 봉명이라 하였다.

금헌 이장곤선생이 부모님 성묘하고 돌아오면서 지은 다음과 같은 시가 부곡제앞에 있다.

이장곤 성묘시

병진년 정사년은 그 어느 해이런가

통곡하며 잔드린지 이십년이 되었구나

조정의 높은 벼슬 부모 적선덕분인데

늙음에 세 번 쫒겨나니 나의 허물 많음이여

가없는 소나무 두 무덤을 에웠음에

구천이 가로막아 지척이 아득하네잔드리고 돌아올제 서산에 해저문데

형제 함께 동구밖에 눈물뿌려 우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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