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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비사벌뉴스 | 승인 2018.06.24 19:34

제42화 좋고 좋도다(好哉好哉)

매우 나이 들어가는 귀가 먹은 재상(宰相)이 있었다.

어느 달 밝은 여름밤, 잠이 오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사방을 돌아다녔다.

이때 후원 평상위에 한 동비(童婢)가 발가벗은 채 혼곤히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조용히 그 용모와 하문(下門)을 살피니 천하일색이었다.

이 여종은 손자며느리의 교전비(轎前婢)였다.

이튿날부터 노재상은 그 여종을 보기만 하여도 흠모하고 사랑하는 정이 샘솟아 누가 봐도 그 좋아하는 정도를 눈치 챌 수 있게 되었다.

아들 내외가 이를 알고 서로 상의했다,

"부친께서 그 여종만 보면 그와 같이 귀여워하고 사랑하시니, 그 아이로 하여금 하룻밤 수청을 들게 하여 위로해 드리는 것도 효성을 다하는 길이 아니겠소?" 그래서 그 여종에게 분부하였다.

"너는 오늘 저녁에 대감마님을 모시고 수청 들라."

그 날 밤 아들 내외가 노재상을 걱정하여 창밖에서 방안 동정을 살피고 있었더니 재상과 여종이 말하는 것이 들렸다.

"들어갔느냐 ?" "들어가지 않았사옵니다.",

잠시 후 또 들렸다."들어가느냐 ?"

"들어가지 않사옵니다." 아들이 이를 답답히 여겨서 소리를 낮추어 분부하였다.

"이번에 물으시면 들어갔다고 하라."

잠시 후 들렸다. "들어가느냐 ?"

"들어갑니다.", "좋고 좋도다 !"

제43화 이웃집 김 서방은 잘만 하더라

(越家金書房)

어떤 여인이 있었는데 음모(陰毛)가 심히 길어서 마치 말갈기와 같았다.

그래서 남편이 방사를 할 때마다 손가락으로 음모를 갈라 헤친 후에야 가능하였다.

어느 날 밤 남편이 음모를 헤치다가 남편 손톱이 그만 음핵을 스쳐 찢고야 말았다.

아내는 너무나 아파서 화를 내며 두 발꿈치로 남편을 걷어 차내면서, 말했다.

"이웃집 김 서방은 털을 가르지 않고도 잘 하기만 하던데.... !"

제44화 세 사람의 마음속의 추억(三者勝地)

두 재상이 우연히 만났는데 모두 일찍이 영남의 수령방백(守令方伯)을 지낸 일이 있었다.

그 중 한사람이 진주 기생을 사랑하였으므로 촉석루를 승지강산(勝地江山)이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밀양 기생을 사랑하였으므로 영남루가 가장 좋다하며 서로 자랑하였다.

마침 그 자리에 한 낭관(郎官)이 이르러, 두 재상의 말을 듣고 말하였다.

"영남루와 촉석루가 비록 승지다운 데가 있기는 하오나 제가 보기로는 모두 상주(尙州)의 송원(松院) 같지는 못하옵니다."

두 재상이 놀라며 말하였다.

"송원으로 말하면 거친 언덕이 끊어져 후미진 사이에 있고, 논과 밭두렁 위에 있으니 먼 산과 넓은 들을 볼 수 없고, 대나무와 저녁연기의 멋이 없을 것이니 올라가 바라보아도 흥을 돋우기 어려울 것이다.

그대의 말 속에 이 어떤 별다른 이야기라도 있는가?"

이에 낭관이 말하기를, "소생이 남쪽에서 상주 기생에게 정을 주었다가,

마침 돌아오는 길에 감히 헤어지지 못하고 함께 서쪽으로 가서 송원에 도달하니 해는 이미 져서 어두워져 허물어진 집에 들어가 베개를 나란히 하여 누워 운우지정(雲雨之情)은 깊어 가기만 하는데, 가을비는 하늘에 뿌리고 미풍은 나뭇잎 사이에 불어 와 온전히 잠들지를 못하였습니다. 그토록 좋은 밤이 쉽게 밝아 새벽이 되니 서로 이별할 때가 되어 끊어진 골짜기를 열 걸음에 아홉 번이나 뒤돌아보다가 고개를 넘은 후로 날이 가기를 이미 여러 달 지냈는데 그 쓸쓸한 황야의 정경이 지금에 이르도록 새록새록 눈앞에 아롱거릴 따름입니다.

그러나 일찍이 소생이 구경하였던 촉석루와 영남루는 꿈에도 한번 나타나지 않으니 어찌 송원(松院)의 승경을 촉석루나 영남루에 비교 하겠사옵니까?"

두 재상이 배꼽을 잡으며 말하기를 탄식하였다.

"그러니 송원은 곧 그대 낭관의 승지강산이요, 촉석루와 영남루는 우리 두 사람의 승지강산이로다."

 

제45화 손가락이 바뀌었다(彼指則是此指則非也)

관서에 비지촌(非指村)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떤 사람이 누에를 치는데 뽕잎을 먹일 때가 되어 사방으로 뽕잎을 구하러 다니던 중 어떤 곳에 당도하여 보니 뽕나무가 무성한 곳에 부잣집이 보였다.

조용히 뽕나무 밑으로 들어가서 사방을 살펴보니 사람이 놀았던 자리가 있었다. 큰 뽕나무 위에 올라가서 뽕을 따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한 남자가 급히 달려와서는 뽕나무 밑에서 얼마동안 방황하더니 길게 휘파람 소리를 몇 번 내었다.

그러자 20여세 가량의 아름다운 여인이 술 한 주전자와 한 보시기의 안주를 가지고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 남자는 술과 안주를 먹을 생각은 않고 그 여인을 끌어안고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여인과 남자가 서로 턱을 맞대고 앉아 사랑을 소곤거리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주고받는 처지가 되었으니 서로 폐부(肺腑)를 털어 보여야 합니다.

우선 내가 먼저 당신의 옥경(玉莖)을 빨겠으니 당신도 나의 옥문(玉門)을 빨겠소?"

"그것 좋은 일이요."잠시 후 여인은 남자의 옥경을 빨고 나서 자신의 옥문을 남자 앞에 드러내어 보였다.

남자는 그것을 보면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옥문은 옥경과 달라서 움푹 들어가 있으니 빨기가 거북하오. 그러니 내 긴 손가락을 옥문에 넣은 다음 그 손가락을 빨면 되지 않겠소?"

"그렇게 하여도 좋소."

남자는 곧 긴 손가락을 넣어 보았으나 음액(陰液)이 손가락에 묻어 나와 빨기에 더러웠다.

그리하여 그 손가락을 감추고 다른 손가락을 빨았다.

그러자 여인은, "당신은 왜 나처럼 하지 않아요 ?

이 손가락이 아니지 않아요 ?" 하고 비난하였다.

이렇게 이 손가락이다 아니다 하고 다투게 되었는데 이 때 뽕나무 위에 있던 사람이 "그 손가락이 옳고 저 손가락은 옳지 않소!"

하고 판단을 내려 주었다.

그러자 놀란 남자는 엉겁결에 도망을 가버렸다.

뽕나무 위에 있던 사람이 곧 나무에서 내려와 그 여인과 마음껏 놀아난 후에 그녀가 가지고 왔던 술과 안주를 먹고서 뽕 한 짐을 잔뜩 지고 돌아왔다.

그 후부터 이 마을은 "그 손가락이 아니다.

"라는 뜻의 "비지촌(非指村)"이라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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