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의 국민대 강사

이제 신돈의 개혁은 어떤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신돈 개혁에서 우리는 어떠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12, 13세기 이후 고려사회에는 농민항쟁에서 비롯된 사회 경제적 모순이 있습니다. 권문세족에 의한 토지탈점, 압량위천(壓良爲賤, 양인을 노비화 하는 것)이 있었고, 몽고침입 이후 원 간섭기에는 민족모순이 발생하여 원의 지배와 간섭, 압박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의식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14세기에는 이 두 가지 모순이 중첩되어 나타났습니다. 공민왕은 지정 연호와 정동행정이문소를 혁파하고, 원의 관복과 의복을 없애고, 변발을 혁파하는 등의 반원개혁을 단행하여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려 했지만, 결국 반발세력의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다하게 되고, 결국 개혁은 실패로 끝납니다.

신돈의 개혁은 어떤 개혁보다도 일반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신돈의 개혁은 공민왕의 의지에 의해, 또 왕권 강화라는 측면에서 시행된 개혁이라는 점에서 지배층의 일시적인 대응논리에 불과했다는 한계를 지닙니다. 특히 신돈의 개혁에 참여했던 이인임, 이춘부 등 실무자들조차 개혁 의지와는 동떨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개혁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밑에서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개혁 의지가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겁니다. 이인임 자신이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었고, 집안 대대로 권세와부를 누려온 부류였어요. 그런 사람들이 개혁의 실무 담당자였으니 그 개혁은 제대로 될 리 없었겠죠. 일반민의 기대와 호응이 있다 하더라도 개혁의 실무 층이 모순구조 속에 있었기 때문에 호응 역시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앞서 얘기했지만 신돈은 초야신진들을 규합해서 상균관을 중용하고, 과거제도를 바꾸어 새로이 발굴되는 초야신진들을 개혁세력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결국 그들이 신돈 제거에 앞장서게 됩니다. 그들은 신돈의 정치제력도 추종세력도 아니었습니다. 신돈에게 자신의 정치세력이 없었다는 것도 개혁 실패의 한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 승려 출신이었다는 것, 유학적 소양이 적었다는 것은 당시의 정치운영 논리와 이념이 풍부하지 못했다는 뜻이죠. 다만 신돈은 공민왕의 개혁을 대신 담당하여 추진했던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 경륜과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 신돈의 개혁은 실패했다고 파악됩니다.

흔히 역사에서 개혁의 길은 두 가지로 이야기됩니다.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개혁입니다. 위로부터의 개혁은 신돈처럼 지배층의 입장에서 행하는 것이고,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일반민의 입장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든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든, 그 개혁이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공민왕 이전 충선왕, 충숙왕, 충목왕의 개혁정치도 지배층의 입장에서 행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왕위가 바뀔 때마다 측근세력을 끌어들여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당면과제였기 때문에 개량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돈 같은 경우는 아무리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하더라도, 부정적 측면에서 보면 그것 역시 지배층의 현실이해 관계에 따른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이미 개혁의 본질을 상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대적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매번 일반민의 저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저항 이후의 변화들은 항상 굴절된 형태로 나타났는데, 한국사에서 보이는 3대 농민항쟁도 그러한 예입니다. 9세기 신라 하대의 농민항쟁, 12~13세기의 농민항쟁, 19세기의 농민항쟁도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운 만중들에게 오히려 억압과 수탈구조만 더욱 강화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민들은 사회모순이 존재할 때 항상 앞장서서 싸워왔습니다. 1894년 농민전쟁은 그러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분제적 억압과 수탈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일반민이 전근대 한국사회의 지배층에게 개혁의 당위성을 보여주었다면, 지배층 내부의 개혁세력들은 그것을 담보해내야 했을까요. 아니면 “언 발에 뜨거운 물 붓기”식의 미봉책을 강구해야 했을까요 ?

제가 볼 때 신돈의 개혁은 지도층의 개혁이었지만, 어쨌든 새로운 정치세력들을 만들어냈고, 부분적이나마 일반민의 입장에서 개혁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본받아야 할 개혁의 참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고, 이렇게 일반민과 결합된 개혁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로써 강의를 끝맺겠습니다.

홍영의교수의 실패한 개혁의 역사는 오늘부로 종결합니다. 그 동안 집필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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