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태 신돈사상연구회 회장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그 추종세력인 정도전등이 우왕과 창왕은 왕씨가 아니고 신돈의 자손이라는 우창비왕설을 내세워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운다. 얼마 뒤 공양왕의 선양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다. 이들이 주장한 우창비왕설의 자료는 『고려사』권 133, 열전 46, 신우(辛禑)이다. 신우의 아명은 모니노이니 신돈의 비첩 반야의 소생이다.

․․․․공민왕이 항상 아들 없음을 근심하던 차에 하루는 미행으로 신돈의 집에 가니 신돈이 그 아이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원컨대 전하께서는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아서 뒤를 이으소서”라고 하였다. 이때 왕이 아이를 곁눈으로 보고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이에 동의하였던 것이다. 신돈은 그의 도당을 은밀히 시켜 소원문을 써가지고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 가서 기도하게 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원컨대 당신의 제자 신돈의 혈육인 모니노가 수명과 복록을 가지고 이 나라에 살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 후 신돈을 수원으로 귀양 보내게 되었는데 왕이 근신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신돈의 집에 갔을 때에 그 집 여종과 내통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 아이를 경동시키지 말고 잘 보호하라”고 하였으며 신돈을 죽인 후 왕은 모니노를 데려다가 명덕 태후의 궁전에 두고 수시중 이인임에게 이르기를 ”맏아들이 있으니 나는 근심 없다“라고 하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신돈의 집에 아름다운 여자가 있는데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가까이 하였더니 이 아이를 낳았다“라고 하였다.

공민왕의 뒤를 이은 우왕에 대한 기사다. 그런데 우왕이 공민왕이 아닌 신돈의 자식이라며 ‘辛禑’라 했다. 당연히 우왕의 아들 창왕은 ‘辛昌’이 된다. 왕씨가 아니면서 왕의 자리를 차지한 두 왕은 『고려사』<世家>에서 제외되어 <열전>에 올라있다. 우창비왕설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역사학계의 동향은 우창비왕설은 이성계의 집권 시나리오에 불과하고 ‘우와 창은 공민왕의 자손이 맞다’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첫째 우창비왕설이 처음 제기된 시점이다.

우왕이 1374년 9월에 왕위에 올랐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직후인 1388년 6월에 쫓겨난다. 이성계가 정권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요동 정벌을 주도한 우왕과 최영을 축출한 것이다.

뒤를 이어 우왕의 아들 창왕이 즉위한다. 창왕이 즉위한 해 11월 이른바 ‘김저 사건’이 일어난다. 쫓겨난 우왕이 김저 등을 부추겨 이성계 암살을 시도했다는 게 사건의 내용이다. 이성계 일파는 창왕마저 내쫓는다. 이때 우창비왕설이 처음 등장한다.

우창비왕설은 우왕, 창왕을 죽이는 명분이었다. “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廢假立眞)”고 했다.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으로 이어진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우창비왕설은 이성계 일파의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제기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저 사건 역시 처리 과정을 볼 때 조작의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이성계의 정권 장악, 나아가 조선 창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과 맞물려 우왕과 창왕의 정통성을 부정했다.

둘째, 우창비왕설의 근거가 될 만한 정황이 이전에는 없고, 우왕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근거들이 많다.

무엇보다 『고려사』에서 보듯이 공민왕이 직접 우왕이 자기 아들임을 밝히고 있다. 신돈을 제거하고 난 뒤에도 우왕의 보호를 신하들에게 당부했다. 대군 시절 당대의 학자인 백문보, 전녹생 등을 스승으로 붙여 후계자로 길렀다. 신돈이 우왕의 아비라는 의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신돈을 죽 후 공민왕의 태도가 설명이 안 된다.

조정 내부에서도 우왕의 혈통은 의심받지 않았다. 공민왕 사후 이인임의 주도로 우왕이 즉위할 때 일부 반대가 있기는 했지만 논쟁은 격하지 않았다. 우왕은 공민왕이 죽고 3일 만에 즉위했다. 이는 우왕이 정통성을 가진 후계자라는 조정내부의 합가 있었다는 점을 알려준다.

더욱이 이성계 일파가 우왕의 씨를 의심했다면 자신들이 직접 관여한 창왕 즉위에 맥없이 조민수, 이색 등에게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쫓겨난 우왕이 선왕으로서 충분한 예우를 받았다는 점, 죽기 불과 5개월 전에는 이성계까지 직접 우왕의 거처에서 잔치를 베풀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우창비왕설이 사실이라면 왕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당시로선 경천동지할 이 주장이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솟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셋째, 우창비왕설을 기록한 『고려사』의 성격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 일파가 당면한 과제 중 하나는 500년 고려를 대신할 조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런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 중의 하나가 고려 멸망의 당위성을 부각하는 것이다. 『고려사』가 고려 전기에 후하고, 고려 후기에 박한 평가는 당연한 귀결이다. 우창비왕설은 고려 후기의 혼란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왕위의 정통성 훼손시키며 왕조의 근간을 흔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이성계의 정권 장악과 조선의 건국은 정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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