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8

결국 신돈의 등용과 그를 통한 개혁은 공민왕이 의도한 것이었으므로 정치적인 면에서 볼 때 신돈의 개혁은 공민왕이 신돈을 통해 행한 측근정치의 한 변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개혁은 신돈의 개혁이라기보다 공민왕에 의한 개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신돈의 등용과 그의 개혁이 바로 공민왕에 의해 주도되고 추진되었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신돈에 의해 추진된 개혁들은 당시로서는, 또는 현재에서 봐서도 모든 국면에 걸친 대대적이고 포괄적인 개혁 조처였습니다. 특히 대표적인 개혁이라 할 수 있는 전민변정도감을 통한 전민변정사업은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급진적인 것이었습니다. 특히 신돈의 판결은 일반민의 입장에서 처리되었기 때문에 토지나 노비를 빼앗긴 권문세족들의 불만과 원성이 엄청났습니다. 개혁이 가속화됨에 따라 권문세족들은 점차 정치 일선에서 밀려났고 불법적으로 취한 토지와 노비가 몰수되어 정치적 혹은 경제적 기반이 상실되어 갑니다. 그래서 이들은 신돈을 제거해야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돈에 대한 반대세력은 권문세족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국왕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유학자들, 즉 신진사대부들도 신돈이 정치를 주관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승려 출신이 무슨 정치를 하느냐는 식의 반감이었죠. 이런 내부의 갈등이 공민왕과 신돈의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게끔 하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신돈 집권기가 동안에 계속된 가뭄과 한발, 홍수 등 자연재해도 갈들의 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뜻이 인간 세상에 반영된다고 믿었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자연재해란 위정자의 실정으로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훌륭한 통치자는 하늘의 뜻을 중재하고 이것을 인간들 사이에서 잘 다스려 농사를 편안히 짓게 하고 피해를 없애주어야 하는데 자연재해가 계속 발생하니, 왕이 잘못하여 천도불순(天道不順)이 일어난다는 공격을 받기 십상이었죠. 이것은 신돈이 정치를 잘못 하고 있다는 공격의 좋은 빌미가 되었습니다. 48자나 되는 신돈의 직위에서 처음 나오는 겸판서운관사(兼判書雲館事)란 요즘 말로 하면 기상청이에요. 신돈이 기상청의 장으로 있었으니 가뭄이라든가 홍수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겠지요.

또 중국을 통일하면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명나라가 간섭 해오기 시작합니다. 명의 홍무제가 원을 북으로 내쫓고 본격적으로 고려의 내정간섭하기 시작합니다. 왜구 때문에 해안가를 경작도 못하고 있는데 빨리 경작해서 백성들을 편하게 하라거나, 왜 공민왕이 보평청(報平廳)에 나가 정무를 보지 않고 신돈에게 청치를 맡기느냐는 등의 간섭을 하게 됩니다.

공민왕으로서는 권문세족, 신진관료, 유학자들에게 시달리고, 자연재해가 연 이어 발생하고, 명에서조차 간섭해오는 등 안팎으로 당하는 셈이어서 당연히 신돈을 제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어쨌든 간에 신돈에 의해 추진된 개혁들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고 왕권도 강화되었단 말이죠. 그래서 공민왕으로서는 이제 더 이상 신돈과 같은 대행자가 필요치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신돈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공민왕의 심경 변화는 이제 신돈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신돈은 왕의 마음을 읽고 정계에서 물러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공민왕 19년 12월에 “왕이 신돈의 집에 행차하여 문병했다”는 내용과 20년 윤3월조의 시중(侍中) 이하로부터 산관에 이르기까지 각 품이 모두 참여하여 2백 명이 모인 자리를 ‘첨의전송(僉議餞送)’이라고 한 점. 그리고 4월조에 신돈을 위한 잔치에서도 신돈이 불안하게 여겨 대청으로 옮기고 왕을 청하여 이를 구경했다는 내용 등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이후 신돈의 움직임은 그가 제거되는 7월까지 『고려사』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신돈을 제거한 표면적인 이유는 20년 3월에 “신돈이 스스로 폭위(暴威)를 떨침이 너무 심함을 알고 왕이 자기를 꺼릴까 두려워하여 드디어 반역을 도모했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신돈 제거의 구실은 모반을 꾀한다는 투서에 의거한 것이었습니다. 다음의 내용이 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선부의랑(選部議郞) 이인이 신돈이 반역을 모의한 것을 알고 성명을 숨겨 한거거사(寒居居士)라 일컫고 글을 써 남에 재상 김속명의 집에 보냈다. 김속명이 아뢰니, 왕이 명하여 신돈의 당(黨)인 기오 등을 잡아 모두 목 베었다(『고려사절요』권29 공민왕 20년 7월)

이 기사의 내용으로 보면, 신돈의 제거는 이인이 김속명에게 보낸 투서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속명은 명덕태후(明德太后) 홍 씨의 외척으로 궁중 일을 전담한 왼팔로서 1차 신돈 제거 모의 때 축출된 김원명의 아우입니다. 그는 태후와 연결되어 반 신돈 계열의 선두에 서서 신돈을 제거하여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태후는 신돈과 사이가 좋지 못했어요. 공민왕 15년 8월에 있었던 연회에서 태후와 신돈의 대립은 결국 태후가 신돈 집권의 책임을 공민왕에게 힐책하는 데까지 이른 것으로 보아 신돈과는 강력한 대립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이인이라는 자가 한거거사라는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김선명의 집에 투서합니다. 살생부를 던진 거죠. 이를 본 김선명은 공민왕에게 달려가서 “신돈이 모반을 꾀한다”고 고발하고, 공민왕은 여기서 신돈 제거의 빌미를 찾았습니다. 이때 신돈을 비롯하여 35명의 무리가 제거되지요. 신돈은 이틀 동안 감금되었다가 곧 수원으로 유배되고 그 이틀 뒤에 살해됩니다. 그의 처첩들은 관비로 삼습니다. 사료에 보면 신돈에게는 처와 첩 이외에 이복동생으로 강을성(姜乙成)이라는 자와 두 살 난 아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신돈을 등용하면서 공민왕은 “스승은 나를 구원하고 나는 스승을 구원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의 말을 듣고 의혹을 품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손수 써서 신돈에게 주었습니다. 절대적으로 신임한다는 뜻이죠. 그러나 공민왕은 자신에게 미칠 정치적 위기가 두려워 신돈을 제거하게 됩니다.

신돈이 처형되고 나자 정치 분위기는 일변했습니다. 공민왕 즉위 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오던 개혁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고, 그로부터 4년 뒤 공민왕 자신도 홍기라는 자에 의해 의문의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지만 이미 권력은 이전의 권세가들 손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로부터 18년 뒤 고려는 멸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신돈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조선의 건국이 가능했을까요 ? 아마 신돈의 개혁이 완벽하게 추진되고, 그 개혁이 성공했다면 조선이란 나라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비사벌뉴스  bsb2718@hanmail.net

<저작권자 © 비사벌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