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독한 형벌 파가저택(破家瀦宅)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 한다.

블랙 투어리즘(Black Tourism) 또는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이라고도 하며, 국립국어원에서는 ‘역사교훈여행’으로 우리말 다듬기를 하였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잘못된 역사는 철저히 드러내어 반성하여 교훈으로 삼아야 하고, 잘되고 훌륭한 역사는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잘못되고 비극적인 역사는 숨기려 하고, 잘된 역사만 드러내려는 경향이 많다. 부끄럽고 불편하지만 잘못되고 비극적인 역사일수록 철저히 반성하여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숨기면 숨길수록 역사는 되풀이되기 쉽다.

우리 창녕군에도 비극의 현장이 여러곳 있다.

조민수장군의 대합면 신당(神堂), 편조대사 신돈스님의 창녕읍 옥천리 옥천사지(玉泉寺址), 이징옥장군의 계성면 계성리 지동(池洞), 공호겸의 영산면 신제(新堤) 새못와 부곡면 부곡리 가적지(加敵池), 6.25 전쟁시 미군 학살현장인 창녕읍 여초리 초막골, 미공군 폭격의 도천면 논리 니미리둑, 보도연맹학살 현장인 창녕읍 송현동고분군, 인혁당사건의 대합면 신당리의 서도원과 이방면 내동의 하재완등이다.

파가저택(破家瀦宅), 집을 부수고 그 터에 물을 대어 연못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역사적 용어로서 중죄인의 집을 헐어 없애고 그 터를 파서 물을 대어 못을 만들던 가혹한 형벌이다.

파가저택 형벌의 뿌리는 춘추시대 주루국(婁國)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루국의 정공(定公) 때 아비를 시해한 자가 있었다. 정공은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고, 아들이 아비를 죽이면 용서 없이 죽인 뒤 그 집을 허물고 집터를 파서 연못으로 만든다’고 했다.”(<예기> ‘단궁 하’)

‘주루국’은 동이계(東夷系)였던 산둥성(山東省)에 존재했다. 주루국이 있었던 추(鄒)와 노(魯) 땅은 공자와 맹자가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다. 그래서 예와 학문을 중시하는 고을을 ‘추로지향’이라 했다. 정공은 바로 그 ‘강상죄인(綱常罪人)’을 엄벌에 처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반역(反逆) 죄인에 대한 극형(極刑)이나 연좌(緣坐)율의 적용은 『대명률』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 왕조에서는 그 외에도 파가저택(破家瀦宅)이라고 하여 이러한 죄를 범한 자들이 살던 집을 헐고 그 곳에 못을 만드는 형벌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백성들이 감사(監司)와 수령(守領)을 업신여기는 것을 강상(綱常)에 위반하는 것으로 보아 해당 죄인을 고을에서 추방시키고 파가저택하게 한 사례들이 많다.

그런데 조선중기 이후가 되면 파가저택이 적용되는 사례는 이전과는 달리, 국가에 대한 반역(反逆) 죄인, 부모를 살해한 비속(卑屬, 자녀, 손자, 증손), 주인을 살해한 노비(奴婢) 등을 처벌하는 사례가 있다.

파가저택에 중국에서도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거나 자식이 아비를 시해한 경우에만 적용되었고 『대명률(大明律)』에도 관련 법규가 없으나 조선에서는 『속대전』 「형전(刑典)」 추단조(推斷條)에 실려 있다.

역모(逆謀)와 모반(謀反)의 반역(反逆)죄인, 부모와 남편을 살해하는 패륜죄인, 노비가 주인을 살해하거나, 관노(官奴)가 관장(官長)을 살해한 경우에는 죄인을 사형에 처하고, 처와 자녀는 노비가 되게 하며, 죄인이 살던 집을 파가저택하며 읍호를 강등(降等)하며 수령을 파직할 것을 정해두고 있다. 또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훼손한 전패작변(殿牌作變) 죄인, 수령 등 상급 관리를 범하거나 모욕한 죄인, 남편을 죽인 아내 역시 강상(綱常)죄인으로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처럼 조선후기에 등장하는 강상(綱常)죄를 범한 자에 대한 연좌 처벌이나, 파가저택과 같은 처벌은 조선 왕조에서 반역(反逆)죄나 삼강오륜(三綱五倫)의 강상(綱常)죄를 범한 자를 매우 엄격하게 처벌했음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 특히 대역죄는 능지처참(陵遲處斬)하고 파가저택이 되는 경우가 많다.

○ 대합 구신당과 조민수장군

대합면 신당마을 서편 골짜기를 구 신당(舊 神堂)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지금 창녕 조씨의 재실이 들어선 근처에 옛 신당 마을이 있었다 한다.

이곳 북쪽 골짜기를 마사곡이라 부르는데 이 마사곡일대에 창녕 조씨들이 살았는데 하룻밤사이에 큰못이 생겨 새못이란 뜻으로 신당(新塘)이라 했다.

큰 못이 생기고 보니 조씨들이 살수가 없어 이 마을을 떠났다 한다.

이 사건으로 조선 태조이성계의 핍박을 피해 전남 고창군, 화순군으로 창녕 조씨들이 집단으로 이주했다.

일제 강점기에 “新塘”을 “神堂”으로 개칭하였다고 하지만, 조선 정조 13(1789년)에 만들어진「호구총수」에 “神堂”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오래 전부터 “神堂”으로 사용하였다.

이 신당 마사곡에는 창녕 조씨들의 세거지로 고려 말 이성계와 쌍벽을 이루며 고려 왕조를 지키려한 조민수장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성계가 정권을 잡게 되자 이곳 창녕 조씨들의 생활이 어려웠을 것이고, 조민수를 죽이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으며, 결국 유배된 지 1년 후인 1390년에 이곳에서 죽었으니 하룻밤 사이에 동리에 못이 생길만큼 역적으로 몰려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추측된다.

따라서 “하룻밤 사이에 큰 못이 생겼다” 함은 흔히 재산을 몰수하고 집을 허물고 그 집터에 못을 파버리던 파가저택이란 형벌이 가해 졌을 것이다.

조민수장군의 재산을 몰수하고 집터는 못을 파게하니 이곳에서는 살수가 없어 조씨들이 구신당(舊神堂)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 이징옥장군과 계성 못골

창녕군 계성면 계성리 못골(池洞), 현 계성저수지 계성북쪽으로 들을 건너 태백산 아래에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세조 등극과 함께 김종서가 비명횡사 할 때 반기를 들고 서울로 처들어 오기보다는 말머리를 북쪽으로 돌려 대금황재(大金皇帝)를 자칭하고 만주 땅을 무대로 웅도(雄圖)를 펼치려 하였던 이징옥(李澄玉)의 집터가 있었다는 곳이다. 이징옥장군이 반역으로 몰려 그의 재산은 몰수되고, 집이 헐리고 그 터는 못을 파는 저택(瀦宅)이 되었다.

못골은 이런 역사를 지닌 곳으로 그 이후 못을 판 마을이라 하여 못골로 불리어졌다. 못골에서 북쪽으로 산을 넘어면 장군골이 있는데 그 곳에는 이징옥의 할아버지 이만영(李萬英), 아버지 이전생(李全生)의 묘가 있고, 유리지석묘가 있는 별암마을 뒷산 자락에 동생 이징규(李澄圭)의 묘가 있다. 장군골의 이름도 거기서 나왔다. 그의 형인 이징석(李澄石)의 묘는 양산시 명곡동에 있다.

○ 공효겸(孔好謙) 영산 신제, 부곡 가적지

영산면 신제(新堤)마을을 새둑 또는 새못이라 한다. 새못은 신제 동편에 있는데 공호겸(孔好謙)의 집터였다.

공호겸은 임진왜란 때 왜군의 앞잡이가 되어 서울까지 길을 안내한 자로 스스로 경상감사라 하며 영산을 점령당했을 때 영산현민을 괴롭혔다.

의병장 곽재우장군 명령으로 영산현 의병 신초장군의 계교로 공호겸을 계성에서 사로잡아 목을치고 재산을 몰수하고 집을 헐고 그의 집터는 못을 파니 바로 “새못”이다. 부곡면 부곡리에 첩의 집도 부수고 못을 파니 적을 “가적지(加適池)”라 불리었다. 후에 저수지로 구실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 가재골저수지로 불린다.

역사의 현장은 멀리있는게 아니라 우리 곁에 있다. 그 현장을 알아버린 이상, 어두운 시대에 새겨진 시간(時間)의 지문(指紋)이 없어지기 전 후손들에게 알려 반성과 교훈의 기회를 주어야 의무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쩌다 어른이 되긴하였지만 그렇다고 어린애는 아니므로 어른 흉내는 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말한다. 권력투쟁에서 이긴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다는 말이다. 승리한 사람들이 유리하게 기록했다는 말일 것이다.

패배한 사람들은 죽고 말이 없으니 기록을 믿을 수 밖에 없지만, 행간(行間)을 살피고 그 시대의 정치·사회상황을 잘 이해하여 다양한 합리적인 상황을 유추해보는 것도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경치좋고 훌륭한 문화재를 찾아 답사여행을 해왔다. 이제 잠시 눈을 돌려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는 역사교훈여행을 떠나보시는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아픈 역사, 쓰디쓴 역사일수록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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