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찾아가니 숲이 만든 버릇이 떠오른다. ‘버릇’이나 ‘습관’이란 말은 때에 따라서 괜찮거나

대봉늪 버드나무 군락

나쁜 무엇으로 읽힌다. 좋거나 나쁜 것은 독자 몫으로 미루고, 진작 몸에 스민 ‘버릇’을 드러내야겠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생겼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그때 걸음으로 1시간은 걸은 것 같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경북 영천 보현산 밑 ‘오리장림’이라는 숲을 지나다녔다. 500년이나 되었으니 나무는 또 얼마나 우람한지. 마을 앞 왕버드나무 한 그루는 또래 조무래기와 송아지, 강아지, 매미, 까치, 직박구리를 비롯하여 여러 생명을 길렀다. 어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마도 어릴 적 내 절반은 이 나무가 키웠겠다.

“새가 나무에 앉아있으니 잘 어울린다.”

어머니가 내가 담은 새 사진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말 나온 김에 내 버릇 한 장면 소개해야겠다.

늦은 밤, 불빛을 찾아오는 곤충을 기다리는데, 문득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체로키는 숲에서 일어난 일로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는다.’라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찔했다.

초등학교 때, 나는 결석을 참 많이 했다.

숲길로 학교에 가다가, 새가 벌레를 물고 둥지로 들어가거나 사슴벌레와 말벌이 참나무 수액을 두고 다투거나 두더지가 흙을 불쑥불쑥 밀어 올리는 것을 보면, 고목 뒤에 숨어서 친구들을 따돌리고 학교를 빼먹고 숲에서 놀았다.

친구들은 하굣길에 어머니한테 내 만행을 일러바쳤고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늘, 학교 안 갔다메?”

“…….”

“배는 안 고프더나?”

어머니는 꾸지람 대신 늦은 밥상을 차려주었다.

그 뒤로도 결석은 계속 이어졌다.

친구들이 세 번째 이르던 날, 어머니는 친구를 타일렀다.

“앞으로, 무호 학교 안 갔다고 이르지 마라!”

그날 밤 잠자리에서 어머니가 물었다.

“니는 숲에서 노는 게 그래 재밌나?”

오늘도, 그때 하신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산골 어머니와 인디언 체로키의 교육관이 어쩌면 이리 닮았을까.

어머니 덕에 나는 당당한 로드스쿨러가 되었다.

잠시 곁가지 하나 친다.

대봉늪 입구 쓰레기 소각 모습

해마다 이맘때 즐기는 풍경이 있다. 연둣빛 뭉게구름인 듯 물이 오른 버드나무를 만나러 간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낙동강하구에서 출발하여 강을 따라 오르면 어디서나 맘껏 자라는 버드나무 군락이 흔했다. 삼랑진에서 밀양강을 따라가도 좋고 낙동강을 계속 올라도 좋았다. 길곡에서 남지 사이에 펼쳐진 백사장에서 개미귀신과 꼬마길앞잡이를 만나면 그만 그 자리가 놀이터였고 교실이었다.

발칙한 표현 같지만, ‘학교 빼고 다 학교다.’라고 하면, 혀를 차는 이도 있겠으나 강변에서 이들과 놀아본 이는 ‘그럼, 그럼’하겠다. 그러나 이제 흔해서 값진 풍경도 학교도 놀이터도 다 잃어버렸다. 그저 한낱 벽돌재료로 여기는 파렴치한들이 앗아갔다. 모래는 그보다 더 작은 생명들이 깃들어 사는 집 아닌가. 또 흐리고 탁한 것, 독한 것을 거르는 거름망 아닌가.

며칠 전, 버드나무를 보려고 남지 근처 대봉늪에 갔다.

대봉늪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늪을 나올 때까지 욕이 나왔다. 제방에는 건축자재

태운 쓰레기 뿌린 모습1

를 버렸고 도랑에는 냉장고를 비롯한 소파가 나뒹굴었다. 제방 너머 논 언저리 공터와 늪 가운데쯤 공터에 콜타르 같은 것을 뿌려놓았다. 아스팔트를 까는가 하고 생각했다. 폐기물을 소각한 잔재에 기름이 섞여 있었다. 오물에는 타다만 전선과 구리선이 있었다. 플라스틱에 박힌 금속이나 구리를 빼내려고 태웠겠고 잔재를 공터에 깔았다. 여유와 대담함이 돋보인다. 오래전 낙동강하구 둔치도 입구 고물상에서 이런 짓 하는 것을 보았다. 태운 재가 산더미를 이루었으나 단속은 없었다. 직원은 늘 이렇게 해서 금속을 분리한다고 당연한 듯 말했다.

버드나무 숲 여기저기서 오색딱따구리 드러밍(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이 들렸다. 늪에는 잉어가 산란하고 있었다. 논에는 마늘과 양파가 가득했다. 늪을 지나서 대봉리 마을 앞에 다다라 또 입이 벌어졌다. 한쪽에는 낚시를 하는 중이었고 마을 앞 늪 가장자리에는 쓰레기가 타고 있었다. 시골에 사는 사람은 그들만의 치외 법권(治外法權)이라도 있는가?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까? 그저 눈살 한 번 찌푸리고 말 일인가? 올해 버드나무 연두구름 기행은 먹구름이었다.

머잖아 자운영 꽃구름을 만나러 또 올 거다. 그때는 눈과 귀가 맑아지는 숲의 노래를 듣고 싶

태운 쓰레기 뿌린 모습2(전기선)

다. 누군가 먼저 지나간 숲속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면 노래가 나온다. 풀과 나무는 순진해서 깡통, 쓰레기 발자국까지 덮거나 숨겨준다. 하지만 겨울바람이 술래처럼 찾아낼 때는 노래가 아니라 욕이 나온다. 함께 간 아이들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그늘도 자산(資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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