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의 교수

신돈은 공민왕 8년에 김원명(金元命)의 천거로 공민왕과 만나게 되는데, 김원명은 주기철공신(誅奇轍功臣), 수복경성 일등공신(收復京城 一等功臣), 신축호종 이등공신(辛丑扈從 二等功臣)에 책록된 사람으로 신돈을 천거했지만 나중에는 오인택(吳仁澤)과 공모하여 신돈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죽임을 당하게 되지요. 아무튼 그는 이때 신돈을 천거한 공으로 병권을 장악합니다.

신돈은 처음에는 얼굴만 살짝 보이는 정도였습니다만, 점차 공민왕과 가까워지면서 보우를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화엄종 계열인 천희(千熙)를 국사로 삼고, 선현(禪顯)을 왕사로 삼아 불교계를 혁신하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신돈의 법명인 편조(遍照)는 광명편조(光明遍照)라는 불교용어를 줄인 말로서 ‘무한한 빛이 널리 비춘다’는 뜻으로 비로자나불을 일컫는 산스크리트어의 비로카나(Vairocana)를 의역한 것이고, 불교의 진신, 부처의 진신을 뜻하는 칭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은 화엄종에서 주존 불을 모시는 부처인데, 신돈은 당시‘문수(文殊)의 후신(後身)’으로 칭송되고 있었고, 자신의 원찰(願刹)인 개경의 낙산사(洛山寺)에 자주 행차하거나, 화엄법회인 문수회(文殊會)를 8회나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봤을 때 신돈은 선종과 대립되는 화엄계의 승려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신돈 개혁의 본질

이제 신돈 개혁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신돈 개혁의 본질을 ‘삶의 질’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삶의 질이라는 했을 때, 그 질적 차이가 무엇이냐가 문제가 되겠죠. 권세가의 입장에서 개혁을 추진한 것이냐, 일반인의 입장에서 개혁을 추진한 것이냐? 개혁을 실시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것을 효과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과연 어느 쪽이냐 했을 때, 신돈의 개혁은 일반민을 대상을 개혁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돈이 집권하는 동안 정치·사회·경제 모든 부분에서 개혁 작업을 착수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토지의 소유주를 밝히고 사람의 신분을 바로잡기 위하여 실시한 전민변정(田民辯正)사업입니다. 이것을 추진하기 위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했습니다.

당시 권세가들은 넓은 토지를 차지하고 거기다 사람을 끌어 모아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힘없는 평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의 땅을 몰래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또 국가에 세금으로 내야 할 조세를 내지 않고, 못사는 백성들에게 본전의 1/3까지 받는 고리대를 받는 등의 수탈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토지를 경작할 인력을 끌어 모을 때는 일반 평민들까지 강제로 노비로 삼는 경우가 허다하여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 유랑하게 되고, 세금을 거둘 토지와 농민이 줄어들어 국가의 재정은 고갈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권세가 개개인은 부유해졌으나 국가는 점점 가난해져 갔습니다. 런 상황에서 왕권을 행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빼앗긴 토지를 되돌려주고 불법으로 노비가 된 사람들을 조사하여 원래의 신분으로 되돌려 놓아 국가의 공민(公民)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전민변정사업의 내용입니다.

이러한 개혁은 신돈이 집권하기 전 충숙왕, 충목왕 때도 시도되었지만, 개혁의 대상이 바로 권세가이고, 그것을 실시했던 사람도 권세가였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순의 주체에게 그 모순을 해결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신돈은 절에서 온 사람이라 땅이 있을 리 없고, 재산이 있을 리 없으니 개혁을 추진하는 데 거리낄 것이 없었죠. 신돈이 중심이 되어 추진한 개혁에서는 기존의 권세가를 배제했지 때문에 철저히 시행될 수 있었고, 그 성과도 전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신돈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고려사』편찬자들조차도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개혁의 성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명령이 발표되자, 권세가들이 많이 빼앗은 땅과 백성들을 그 주인에게 돌려주므로 온 나라가 기뻐했다. 신돈이 겉으로는 공평한 척 꾸미면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사고자 무릇 천한 사람들이 양인 되기를 호소하면 한결같이 양인으로 해주었다. 그러나 노비로서 주인을 배신한 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성인이 나왔다’라고 했다(『고려사』권132 열전 반역6 신돈전)

이 기록은 신돈을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에서 쓴 것으로, 뇌물과 아첨 그리고 여자를 좋아하고, 신하로서 법도를 무시하고 호화주택을 과다하게 보유한 것들만을 지적했을 뿐, 토지나 노비와 관련해서는 어떤 비리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돈이 토지나 노비를 축적했다는 흔적은 어느 사료에서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신돈은 적어도 자신이 추진한 전민추정사업에 비교적 열성적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전민변정사업에서는 불법적으로 노비가 되 경우나 불법적으로 빼앗을 토지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개혁이라 하더라도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토지나 노비를 빼앗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성인이 나왔다고 칭송했다는 거죠.

그런데 『고려사』 임박전(林樸傳)에는 이러한 평가와는 달리 해석된 내용이 나옵니다.

신돈에게 명하여 제조(提調)로 삼고 임박을 사(使)로 삼았는데, 임박은 평결(評決)한 바가 많았으나 신돈은 편청(偏聽)하여 변정(辯正)하지 못했다. 때문에 원굴(寃屈)한 사람이 파다(頗多)했다.

이 내용은 신돈전의 ‘중외흔영(中外欣然)’이란 기록과는 판이하게 다르지요. 여기서 임박의 ‘평결’은 양측, 즉 천인과 권호측을 공평하게 판결했다는 뜻이고, 신돈의 ‘편청’은 천인의 입장에서 제소를 처리했음을 뜻합니다. 이렇게 볼 때 ‘원굴파다’한 이들은 신돈의 그런 행위에 불만을 가진 권호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점은 공민왕 14년 5월에서 설치된 ‘형인추정도감(刑人推整都監)’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형인추정도감은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의 발생을 계기로 설치된 것입니다. 공민왕과 신돈은 형인들이 억울함을 씻어주기 위해 이를 설치한다고 이유를 밝히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가뭄에 수반한 기근으로 동요된 민심을 안정시키고, 형인 즉 권문의 노비로 전락한 일반민을 추쇄하여 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데 있었습니다. 추정사업을 시작한 지 4개월 후에 공민왕은 부처 앞에 꿇어앉아 “금년의 풍작은 실로 첨의(僉議)가 음양을 고르게 다스린 데 연유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개혁사업은 실지로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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