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4

글 홍영희교수

다음에는 세신대족, 초야신진, 유생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정국개편 작업을 시도합니다. 특히 세신대족에 대해서는 대규모의 인사개편을 통해 관직을 삭탈하거나 축출하는 조처들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무장을 대신하여 신돈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합니다. 이리하여 공민왕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집단의 개편은 일단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존 체제에서 한 발 떨어진 신돈이 집권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개혁을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방향에 동의하고 그것을 밀어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앞서 가는 한 명의 선구자가 전체 사회의 개혁을 가져올 수는 없는 일이지요. 수백 년간 지배세력으로서 부와 지위를 자손대대로 물려가며 누려온 자들이 정권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이것이 대세려니’하고 가만히 있을 리 없겠죠. 더군다나 축출된 자들이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무장들인 경우엔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혁추진 세력의 형성이 가장 절실한 과제이겠죠. 기성 정치세력을 완전히 부정하고 다른 정치세력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기성 정치세력과 사회적, 경제적 기반이 다르고 새로운 정치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신돈이 명에 따라 죽기 살기를 각오하는 그런 추진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신돈은 절간에서 생활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속세로 나왔지만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없었겠죠. 어차피 있는 세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세신대족, 유생, 초야신진 셋 중에 어느 부류를 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 신도의 고민이었습니다.

신돈은 이 중에서 초야신진을 선택합니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관료들을 등용시켜 자신의 개혁에 동참시키려 했던 것이지요.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과거제도를 재편한다든가 공민왕 16년에 성균관 중용을 통해 많은 학자들이 등장하는데, 우리가 익히 들은 바 있는 이색, 정몽주, 정도전, 박상충, 이승인 등이 그들입니다.

공민왕대에 신돈의 개혁에 동참했던 이들 젊은 유학자를 역사용어로 신진사대부라 부릅니다. 이들은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기반이 거의 비슷한 사람들로 권문세가, 권세가와는 다른 부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신돈 정권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차차 성장하여 일부는 고려의 충신으로, 일부는 조선의 공신으로 제각기 정치적인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 신돈은 어떤 인물인가

신돈은 영산 사람으로 그 어머니는 계성 현에 있는 옥천사(玉泉寺)의 여자종이었다. 어려서 중이 되었으며 법명은 편조(遍照)라 하고, 자(字)를 요공(耀空)이라 했다. 어머니가 천했기 때문에 같은 무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산방에 거처했다.

이것은 『고려사』권 132 열전 반역6 신돈 전에 실린 기록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절의 종으로서 천한 신분이라는 점만 강조되어 있을 뿐,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와 있지 않아요. 『고려사』편찬자들이 신돈을 부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아버지 쪽의 가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쓰지 않았는데, 사실 신돈의 부계 쪽 가문은 흠잡을 수 없는 가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머니가 절의 비(婢)였다는 점만 강조해서 쓸 수도 있겠지요. 또 『고려사』에는 신돈의 아버지 묘가 창녕에 있다는 것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창녕 화왕산(火王山)에는 옥천사가 있었는데, 신돈이 몰락한 뒤 폐사되었다는 기록도 나와 있습니다. 이 두 기록으로 신돈이 창녕 사람이라는 것과 유력한 가문이었을 것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고려사회에는 몇 가지 금령이 있었는데, 그 중 인종 13년(1135)의 것으로 노비는 중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정종 5년(1039)에는 천자수모법(賤子隨母法)이 나오는데, 어머니가 천하면 그 자식도 천하다는 내용이에요. 그리고 충렬왕 26년에 제정된 일천즉천법(一賤則賤法)은,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천하면 그 소생은 영원히 천하다는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신돈이 천한 신분이었다면 당연히 중이 될 수 없었겠죠. 어머니가 절의 종이었는데도 신돈이 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영산 즉 창녕의 아버지가 그 고을에서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신돈의 학식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 『고려사』에는 “글을 모른 사람”이라고 야박스럽게 표현하고 있으나 어느 정도 학문적 소양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절간에서 승려생활을 했기 때문에 당시의 지배사상인 유학적 소양은 원숙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반 성리학자들과 같이 취급될 수 있는 정도의 정치적, 학문적 소양을 갖추었을 리는 없었겠죠. 그러나 『고려사』에 “총명하고 자혜로웠으면서 매사를 명백하게 논증했고, 스스로 도통했다”고 씌어 있고, 국사(國事)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에게 “국사를 망령되게 쓰지 말라. 내가 장차 살펴보리라”는 말을 하는 등의 행정력을 볼 때, 신돈은 학문적 소양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대해 일정 정도의 식견이 있었다고 짐작됩니다.

그러면 신돈은 어떤 계통의 불교 성향을 지닌 승려였을까요 ? 먼저 당시 불교 일반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14세기 전반에서부터 후반까지 불교계는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14세기 초 원간섭기의 불교계는 무신집권기와는 달리 라마교와 제휴한 천태종과 유가종의 종세(宗勢)가 강화되어 두 종파가 국사(國師), 왕사(王師)를 독점하면서 승정권(僧政權)까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임제종의 양기파(楊岐派)와 황룡파(黃龍派)와 교류해오던 조계종이나 무신집권 이래 계속 타격을 받아오던 화엄종은 크게 종세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것이 14세기 후반기에 들어 원의 쇠퇴에 힘입어 남중국에서 전통불교와 민간신앙, 그리고 한인(漢人)의 불만이 결합된 결사불교(結社佛敎)가 민중불교로 연결되고, 임제종이 부흥되자 공민왕도 조계종 계통의 승려인 원증국사(圓證國師) 보우(普愚)를 왕사에 책봉하고 원융부(圓融府)를 설치하여 반원정책에 따른 불교계의 정비와 이에 따른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공민왕 초기에는 조계종세가 확장되었고 천태종이나 유가종은 그 이전과는 판이하게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더구나 이때 중국에서는 남쪽에서 명나라가 흥기하여 원이 북으로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공민왕 개혁의 한 배경이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상황들이 맞아떨어지면서 보우를 왕사로 초빙하고 불교개편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원정책 이후 보우와 공민왕의 밀착관계는 신돈이 중앙에 등장하면서 점차 소원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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