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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이러한 정치운영 방식은 국왕의 전제적 통치를 추구한 그의 정치적 지향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원개혁 성공 이후 측근세력을 중심으로 한 공민왕의 정국운영은 공민왕 10년 대규모의 홍건적 침입으로 위기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때가 1차 침입으로 15만 명 정도가 쳐 내려와서 공민왕은 서울을 버리고 복주(福州), 곧 지금의 안동까지 피난가게 됩니다. 안동에 가 보신 분은 보셨겠지만 태사 묘에 공민왕이 내린 교지가 있는데, 이때 작성한 것이죠.

아무튼 공민왕은 이때 국내외적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안으로는 국왕으로서의 권위가 실추된 데다 정권쟁탈 와중에서 주요한 측근세력이 모두 제거되어 버렸고, 바깥으로는 원나라가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충선왕의 서자인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바람에 국왕으로서의 정동성에 도전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홍건적과 원나라의 간섭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무장들의 입지가 강해졌고, 측근세력을 상실한 공민왕의 정국주도력은 크게 약해졌습니다.

또 공민왕 13년에는 흥왕사(興王寺)의 난이라고 하여, 공민왕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안동으로 피난한 지 1년 3개월 만에 환도하여 우선 임시로 흥왕사에 거처를 정했는데, 김용이란 자가 은밀히 사람들을 보내어 공민왕을 암살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홍언박이라고 공민왕의 측근이 공민왕을 대신해서 죽었는데, 그는 공민왕의 외삼촌이기도 합니다.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친 뒤에는 무장 세력이 점점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최영이나 이성계가 그때 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와중에 정세운, 안우, 김득배등 공민왕의 측근세력은 서로간의 암투에 의해 죽고, 또 모함을 당해 공민왕에게 처형을 당합니다. 이때 공민왕은 정국전환을 모색하게 됩니다. 자신의 왕권을 강화해 주고 일반민의 고통을 분담해 줄 수 있는 인물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관심사였지요. 다음의 내용이 이를 말해 줍니다.

왕이 제위한 지 오래 됐는데 제상들이 뜻에 맞지 않으므로 일찍이 말하기를 세신대족(世臣大族)은 친당이 뿌리처럼 이어져 있어 서로 허물을 가려주고, 초야신진(草野新進)은 감정을 감추고 행동을 꾸며 명망을 담하다가 귀현해지면 집안이 한미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대족과 혼인하여 처음의 뜻을 다 버리며, 유생(儒生)은 유약하여 강직함이 적고, 또 문생․좌주.동년이라 칭하면서 당을 만들고 사정을 따르니 이 셋은 모두 쓰지 못하겠다. 세상을 떠나 초연한사람을 얻어 크게 써서 머뭇거리며 고치지 않는 폐단을 개혁하려고 생각했다(「고려사」권132, 열전 반역6 신돈전)

공민왕은 정치를 주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신대족, 초야신진, 유생을 꼽고 있습니다. 당시 세신대족은 친당이 뿌리처럼 이어져 있어 서로 허물을 가려주고, 초야신진은 감정을 감추고 행동을 꾸며 명망을 탐하다가 지위가 높아지면 집안이 한미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이름 있는 집안과 혼인하여 처음의 뜻을 다 버리고, 유생은 유약하여 강직함이 적고 또 문생. 좌주. 동년이라 칭하면서 당을 만들고 사사로운 정을 따른다고 할 정도로 서로가 얽혀 있었습니다. 공민왕은 이 모두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쓸 것인가 ? 이들과 전혀 거리가 먼 사람, 개혁 정책을 앞장서서 집행할 수 있는 사람, 곧 ‘이세독립지인(離世獨立之人)’을 세워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이런 사람이 누구냐 했을 때 공민왕은 신돈을 생각하게 됩니다.

공민왕은 신돈을 내세워 그에게 일반 정치에 관한 한 거의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신돈은 지방의 이름 없는 승려 출신이었기 때문에 기성 정치세력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었어요. 또 일가붙이가 있거나 토지와 종을 거느린 부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개혁에 주저할 필요도 없었어요. 고려 사회를 전반적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공민왕에게는 이렇게 속세에 물들지 않은 신돈이야말로 자신의 정치를 일선에서 대신해줄 인물로 비쳤던 겁니다.

신돈의 등용은 이와 같이 국왕권이 약화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색된 것입니다. 신돈은 정권을 잡은 후 곧 최영을 비롯한 주요 무장 세력들을 제거하고 공민왕의 측근 인물들을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했는데, 그것은 바로 공민왕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주요 측근이 제거되고 외적 퇴치와 내란 수습을 통해 신흥 무장들이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공민왕은 아무런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던 신돈을 새로운 측근으로 만든 후 그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계변화를 이루려 했던 것입니다.

공민왕의 절대적인 후원 하에 국왕의 대행자로 자처하던 신돈은 이전의 측근세력과는 구별될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지만, 국왕의 결단에 의해 하루아침에 제거될 수밖에 없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국왕의 의지를 대행하는 측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돈 집권기에 중요 요직을 담당했던 사람들 공민왕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신돈이 제거되고 공민왕이 친정(親政)하게 된 후에도 계속 정권의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신돈 집권기는 본질적으로 국왕 측근세력이 중심이 되어 정국을 운영한 시기로서 초기 이후 공민왕의 정국운영 형태와 비슷하였습니다. 그래서 신돈을 등용하여 곧바로 무려 48자에 해당하는 직위를 주어 관할권을 주었습니다. 신돈으로서는 거리낄 것이 없었어요. 신돈은 제거해야 할 대상,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제일 먼저 세신대족을 꼽았습니다. 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 개혁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유배가게 되는데, 대표적인 경우로 무장인 최영은 이때 경주로 좌천당해 갔습니다. 이러한 결정들은 신돈의 등용을 통해 기존의 정치세력을 억누르고 측근세력을 통해 정국운용을 도모하려는 공민왕의 의도였습니다. 왕 자신은 일단 뒤로 빠져 있는 상태에서 세신대족들의 원망을 피해하고 그 대리인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켜 나갔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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