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은 「고려사」열전에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탐욕스럽고 음탕하여 뇌물을 문이 미어지도록 받아들이고, 집에 있을 때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마음대로 성색(聲色)을 하다가도 왕 앞에서는 청담(淸談)만 하고 음식은 채소, 과일, 차만 만들었다”고 표현된 인물을 공민왕은 사부로 삼고 진평후(眞平侯)로 봉하며, 수정이순논도섭리보세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영도첨의사사 판감찰사사 취성부원군 제조승록사사 겸판서운관사로 임명하여 최고의 직위를 주면서까지 등용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명함을 새긴다면 48자나 되는 길고긴 직함이 들어가기나 할까요. 물론 이 직위는 공민왕이 부여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자질을 갖고 있던 신돈을 왜 공민왕이 등용했을까요?

또 무슨 이유로 개혁에 앞장 세웠을까 하는 것이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돈의 등용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려 말 14세기 사회가 어떠했는가를 우선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고려 말의 정치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고려 말기에는 공민왕 이전에 이미 충선왕의 개혁이 있었고, 충숙왕의 개혁(변리변정도감)이 있었고, 충목왕의 개혁(정치도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민왕 원년, 5년, 11년, 20년 등 네 차례에 걸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때의 개혁은 요즘의 개혁과는 달리 하나의 정국전환 논리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때는 원 간섭기(충렬왕에서 공민왕 이전까지를 원 간섭기라 함)로서 그로 인한 민족모순과 사회경제적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개혁의 일차적인 목표였습니다.

공민왕은 충숙왕이 즉위할 무렵에 열두 살의 나이로 원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충정왕이 원에 의해 폐위당하고 강화도로 유배간 사이에 즉위합니다. 열두 살에 원으로 건너갔다가 스물세 살 때, 그러니까 10년 만에 고려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10년 동안 원에 머물러야 했던 공민왕으로서는 연저수종공신(燕邸隨從功臣)과 일부 인척을 중심으로 한 측근세력을 중용하고 그들에게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민왕 즉위 당시의 정계 구성은 그 이전의 원간섭기 국왕들이 즉위할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새로 즉위하는 국왕과 국내 관료세력과 직접적인 유대관계가 미약했던 전시기와는 달리 공민왕은 당시 국내의 주요 정치세력인 이제현(李齊賢) 중심의 개혁 지향적 관료들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들 개혁 관료세력은 충목왕 대에 개혁을 주장하며 정계의 주요 세력으로 등장했는데 자신들이 지향하는 개혁의 완성을 위해 일찍부터 공민왕의 즉위에 관여했습니다.

따라서 공민왕이 원으로부터 왕위 계승을 허락받은 뒤 곧바로 이제현을 수상에 임명하여 자신이 귀국할 때까지 고려의 정계를 정리하도록 한 것은 당시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공민왕 귀국 이후에도 그들 개혁세력이 공민왕의 협력을 얻어 개혁을 주도하리라고 예상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민왕은 이러한 기대와 달리 귀국 이후 전대의 국왕들과 마찬가지로 연저수종공신들을 비롯한 측극세력을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조일신(趙日新)을 대표로 하는 측근세력에 의해 정국이 운영되면서 공민왕 즉위 직후 정국을 주도할 듯했던 개혁관료들의 영향력은 미약해져 갔습니다. 공민왕 귀국 후 얼마 되지 않아 이제현이 수상직을 사임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공민왕의 후견인으로서 그의 즉위를 위해 노력했던 윤택(尹澤) 역시 국정운영에 대해 건의했다가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은퇴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공민왕은 충혜왕, 충정왕과 두 차례의 왕위계승 경쟁에서 패배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올랐지만 즉위 후에도 여러 차례의 고비를 맞이했습니다.

원년과 5년, 12년, 20년 등 네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반포된 개혁정책들은 그러한 고비를 넘기는 방법이었고, 그때마다 정계는 급속하게 변화합니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는 상당부분 공민왕의 정치운영방식에 의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공민왕은 원간섭기 국왕들의 일반적인 정치운영 방식인 측근 중심의 정치운영을 계승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린 나이에 원나라에 건너가 숙위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국내 정치세력과 단절된 가운데 숙위 수종(隨從)세력을 중심으로 한 일부 측근으로 자신의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려 한 원간섭기 국왕들의 일반적인 통치행태를 공민왕 역시 답습했기 때문입니다.

공민왕은 고려의 왕위 계승자를 원나라가 결정하던 당시 왕위 계승에서 두 번이나 밀려나는 어려움을 겪은 끝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에 즉위하자마자 곧바로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격적으로 반원개혁을 단행하여 성공합니다. 호복과 변발을 하지 말자는 것 외에 우선 눈에 보이는 문제들, 부분적인 문제들을 시정해 갑니다. 당시는 원의 세력을 등에 업은 권문세족의 횡포가 아주 심했습니다.

고래대가 이중 삼중으로 늘어나고, 토지가 권세가에 의해 탈점되었기 때문에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모순이 극대화되어 있어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측근세력을 이용합니다. 충숙왕, 충정왕이 측근세력을 동원해서 왕권 강화와 인정을 도모했는데, 공민왕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공민왕이 이전의 왕과 달랐던 점은 국내의 정치적 기반과 관료들은 자신의 정치기반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려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왕이 되고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됩니다.

결국 공민왕은 즉위 직후 당시 사회적 모순의 주체였던 친원세력을 중심으로 한 권문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한 개혁을 시도하고자 측근세력만을 이용했지만, 조일신의 난으로 실패하였고, 그 결과 오히려 그들을 재등장시켜면서 왕권을 위축시켰습니다. 공민왕 5년에 단행된 본격적인 반윈 개혁과 친원세력의 제거 역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단행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원개혁 직후 개혁관료의 대표 격인 이제현을 다시 수상에 임명했지만 국왕 측근세력이 중심이 되어 공민왕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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