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인식위원

나는 벗들과 새벽 우포늪 길을 걸을 때 가장 행복하다.

3-4 시간을 걷고, 마을식당에서 밥을 먹고, 우포자연도서관에서 차한잔 나누며 세상을 향하여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다. 일본과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조차 지역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젊은 시절 민주화라는 명제에 열정과 분노로 맞섰던 사람이다.

세월이 흘러 자신의 가치를 명예롭게 간직하기 위해 애쓰는 제주 올레 길의 서명숙이사장도 그런 사람이고, 일본 이사하야만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고인이 된 야마시다선생과 내 친구 호리변호사도 그랬다. 조만간 제주 동백동산에서 열릴 한중일환경교류회도 그런 벗들이 많다.

나라가 민주화 되면 이제 남은 일은 고향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지키는데 시간을 보낼 때이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지역주민들과 협력하여 고령사회로 인구가 줄어드는 마을들을 다시 되살리는 재생사업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도시는 빈 껍질일 뿐이다. 시나브로 고향마을로 돌아와서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에 나서기를 빌어본다.

우포늪의 동식물들도 서로 공생하고 있다.

여름철새 물꿩

심지어 멧돼지가 늪을 파헤친 자리와 삵과 너구리 등이 싸 놓은 똥에는 나비를 비롯한 각가지 곤충들이 그곳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곳곳에 쓰러진 나무들과 가을에 떨어지는 나뭇잎들은 겨울을 나는 곤충들의 집이 되고 먹이가 되는 것이다. 간 혹 물속에서 물풀들을 먹는 고라니(물사슴)을 본다. 그리고 한 여름이 되면 가시연잎을 디디고 서서 물고기를 잡는 백로들을 매일 관찰한다. 한마디로 자연은 서로 공생하면서 물속에 산소를 공급하기도 하고, 그곳을 통해 먹이를 찾는 아름다운 자연마을의 공동체를 보는 것이 좋다.

우리는 학교에서 숲 속 나무들은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오래된 나무가 죽으면 숲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우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무들은 서로의 뿌리를 연결해, 부족한 양분을 공유하는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설령 아기 나무가 햇빛을 받지 못하더라도 양분이 충분한 엄마 나무들이 뿌리 네트워크를 통해 탄소를 보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시로 열리는 우포자연학교에 참가한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프로그램이 쓰러진 왕버들 나뭇가지를 따라 걸어보는 것이다.

때로는 나뭇가지에 기대어 숲속에 둥지를 튼 흰눈썹황금새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거나 조용히 나무뿌리 근처에서 사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태풍에 쓰러진 왕버들의 가지가 흙에 묻혀 다시 줄기를 세워내는 모습에 아이들은 신기해하면, 만지기도 하고, 관찰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무들은 산새와 물새들의 집이 되기도 한다. 한편 오래된 큰 나무가 쓰러지면 먼저 빈 공간으로 들어온 햇빛을 받고 어린나무들이 쑥쑥 자라는 기회가 된다.

또 사람, 코끼리, 개미 등 전 세계에는 140만 종의 동물들이 사는데, 그 중 12.5%인 20만 종의 딱정벌레가 죽은 나무를 집으로 사용한다고 하니, 생을 다하고 죽은 큰 나무 덕분에 딱정벌레를 비롯한 숱한 생명들의 집이 되고, 먹이 터가 되어 숲속 곤충마을이 되는 것이다. 숲이야말로 건강한 숲이라는 이야기다. 랍니다. 이렇게 나무는 쓰러져 죽어서도 아주 오랫동안 수많은 동식물에 덕을 베푸는 셈이다. 우리도 나무처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마지막까지 베푸는 모습을 보인다면 좋을 것 같다.

우포늪의 여름은 가시연꽃이 장관이다.

백로의 날개짓

연일 폭염 속에서도 쑥쑥 잘 자라는 물속식물들을 보면 더위도 잠시 잊는다. 최근 3년 동안 우포늪을 비롯한 3개의 늪에서 가시연이 피지 않아, 걱정이 많았는데, 올해 전체 늪은 아니지만 목포와 쪽지벌 등에서 많은 가시연들이 무리를 이루면서 일주일 전부터 꽃대를 새우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주남저수지에서는 일반 연들이 저수지를 점령하면서 고유종인 노랑어리연꽃이나 어리연꽃 그리고 가시연 꽃 등이 피지 않으면서 환경단체와 지자체, 환경부 등이 이를 제거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다행히 우포늪에도 몇 년 전부터 사지포 등에서 일반 연 군락지가 발견되자, 주남저수지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까봐, 수시로 제거를 해왔는데 우포늪에는 다행히 가시연이 피어나면서 연 군락지 확산에 대한 우려를 줄일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사지포에는 여전히 연 군락지가 확산되고 있고, 특히 사지포 뒤편에 연군락지가 확산되고 있어 앞으로 제거 방안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지금 목포(나무개벌)에는 가시연꽃이 한창이다.

이른 아침 물안개 속에 눈빛처럼 하얀 백로들이 가시연 위에 두 발을 딛고 아침먹이 사냥에 나서고 있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비추면 청자(靑紫)색 가시연꽃의 꽃망울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가시연꽃은 수련과(Nymphaeaceae)에 속하는 일년생 수생식물로서 잎이 무척 크고 넓으며 가시가 많이 달려 있다.

우포늪에 자라는 가시연을 관찰하면 7~9개의 잎을 물 위에 띄워 잎이 완전히 펴졌을 때 지름이 1m 정도가 되는 것은 보통이고, 때로는 2m에 이르기도 한다. 줄기는 물론 잎의 윗면과 아랫면 모두에 손을 댈 수도 없게 사나운 가시가 돋아 있다.

꽃잎을 뚫고 올라오는 가시연꽃 향도 그윽하다

가시연꽃

가시연은 7~8월에 꽃을 피우고자 꽃대는 잎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워야 해서 잎보다 훨씬 강한 가시로 뒤덮여 있다. 꽃은 청자색 보라 빛깔이며, 크기는 5㎝ 정도다. 아침 일찍 벌어지기 시작해 오전에 피어나 해가 질 무렵이면 꽃 대부분은 이슬람 사원의 지붕 같은 모습으로 다시 오므린다. 잎은 녹색이며 가시가 돋아나 있다. 가시연꽃의 장관은 꽃이 피는 한여름에 볼 수 있다.

꽃이 지고 나면 꽃이 피어 있던 자리 아래에 있는 타원형의 씨방이 터지면서 열매가 쏟아진다. 밤톨 크기의 열매를 주민들은 '지모구'라 부른다. 씨는 감실이라고 하는데,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주민들은 가을에 채취하여 일본에 수출하기도 하고 한방에서 강장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날카로운 가시와 잎을 가진 수생식물이지만 장마가 길어지고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물 위로 잎과 꽃을 띄우지 못해 다른 수생식물과는 달리 생명을 다하고 만다.

가시연은 수련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대형 수생 식물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1속 1종밖에 없는 식물이다. 뿌리는 물밑 땅에다 내리고 잎은 수면 위에 띄우고 살아가는 부엽식물로 다 자란 성체의 잎의 지름이 20Cm에서 큰 것은 2M에 이르는 거대한 식물체로 과거에는 전국 각지에 많이 분포하였으나 최근에는 그 서식지가 많이 감소하여 남부지방의 비교적 오래된 저수지나 강배후성 습지에 주로 서식하며 우리나라 최대서식지는 창녕군의 우포늪이다.

이러한 귀중한 자연자산을 지키는 일은 주기적인 낙동강의 범람과 토평천 상류의 오염을 차단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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